이코노미스트 스터디
아베가 추진한 아베노믹스는 불황으로 뒤덮인 일본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한 수였다. 미국의 명목 GDP가 20년 동안 134% 성장할 때, 일본은 거의 그대로였다. 1980년대 미국을 위협하고, 세계를 주도하던 일본의 경제성장이 멈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플라자 합의, 일본 국내 정치의 문제 등등.
안타깝게도 일본의 경제를 부활시키려는 방안은 멈춘 이유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무엇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2012년 아베노믹스의 시작은 그 많은 시도, 그러니까 '또 실패하겠지 뭐' 소리를 듣는 시도 중 하나였다.
아베노믹스는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져있다. 확장적인 통화정책, 유연한 재정정책, 그리고 구조개혁까지. 중앙은행은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정부는 돈을 푸는 동시에 구조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이 세가지 목적은 하나였다. 바로 '인플레이션'.
흔히들 인플레이션이 나쁜 놈으로만 묘사되기 쉬운데,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면 오히려 긍정적이다. 유동성이 시장에 그만큼 많다는 것이며, 소비도 어느 정도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디플레이션에 빠져있던 일본에겐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다. 디플레이션은 물가 하락과 물가가 하락하리라는 예상으로 인한 투자와 소비 위축 때문에 시장 전체를 침체시켰다. 경기 부흥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필요한 일본이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29/0200000000AKR20160729185900002.HTML
근본적으로 세계 경제의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고, 국내 경제도 경기 부진이 지속하면서 물가 하락 압력은 지속할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봤다.
김 실장은 "저물가 상황이 지속하고 기대 인플레이션율의 하락하면 경제운용과 성장 측면에서 디플레이션에 준하는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며 "디플레이션 압력을 사전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조합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돈을 안쓰고, 석유도 터지지 않으려니 결국은 정부 정책이 답이었다.
정부는 중앙은행의 금리를 제로 금리로 설정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B2B 금리가 제로 금리란 얘기다! 우리가 하나은행에 돈을 맡기듯이, 하나은행도 한국은행에 돈을 맡긴다. 금리가 0% 이상이어야 하나은행이 이자를 받기 위해 맡길 동기가 있는 건데, 이 금리를 0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그러니까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네가 갖고 있어야 하고, 어디다가 투자를 하거나 대출을 해야 하는 셈. 중앙은행 입장에선 시중에 돈을 풀어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니,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야 너네 시장에 돈 풀어라 나한테 맡기면 죽탱이" 라고 협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유동성도 공급하니 결과적으로 시장은 좀 더 활력적으로 움직였다. 시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가격은 상승했다. 32달 연속 소비자 물가지수는 올랐다. 아베노믹스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5% 물가가 낮았을 것이며 시장은 정적이었을 거란 분석이 있다.
자, 근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론적으로 시장에 유동성이 충분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풀면 기업 역시 투자를 하고 임금을 올려야 한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일본의 주주문화.
일본 기업의 주주들이 "어 시발 이거 아무리봐도 이거 투자할 곳도 없고, 정부 믿고 투자했다간 우리 개손해볼 거 같은데, 투자 ㄴㄴ하자 유보해 유보!" 시전해버리니, 아무 데에도 투자하지 않고 임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기업의 이해관계와 정부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불일치해버린 겨.
이론 : 유동성 -> 투자 -> 경기활성화 -> 임금상승 -> 오 해피해피데이
현실 : 유동성 -> 투자 -> 시즈모드 -> 망했어요
뭐 이리 되니 노동자들 입장에선 환장하는 거지.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이 오르지도 않고.
정부 입장에서 남은 건 노동시장개혁뿐. 노동유연성을 높이면서 외국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입하려는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뭐 조금이나마 경기가 활성화되니 초고령화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참가인구가 늘어났다. 근데 더 필요하니 노동유연성을 높이고 경제활동참가인구를 높이려는 목적. 한국과 일본은 역시 형제야.
https://next.ft.com/content/2c1cd964-36bf-11e6-9a05-82a9b15a8ee7
IMF는 대놓고 일본한테 '임금 올리게끔 해라'고 권고했다. 부채가 많은 일본 경제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소득이 줄어들고 경제가 위축되니 더 갚기도 힘들다. 일본의 부채가 어느 정도냐면 GDP 평균의 2.5배에 가깝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성장이 필요한데, 성장을 가로막는 임금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노동소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첫번째는 노동시장구조개혁. 대부분 일본 노동자들은 평생계약(한국으로 치면 정규직)으로 고용되고, 이때문에 이직도 거의 없다. 평생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자들은 임금에 대한 협상력이 제로에 가깝다. 이 때문에 노동소득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 만일 노동유연성이 높아지면, 노동자들은 비록 평생 고용은 아닐지언정 회사 간 이직을 통해 임금협상력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통해 노동자 전반적으로 임금이 높아질 거라는 주장.
First, most workers are employed under life-time contracts and hardly move jobs between companies. In exchange for life time employment, employees accept to temper wage demands, which means that tight labor markets do not translate into higher wages.
In addition, a large share of workers (37 percent) are employed under non-regular contracts, a much higher share than in comparable economies. Companies scrambled to restore competitiveness after the sharp appreciation of the yen in the 1980s by moving production offshore and hiring nearly exclusively under much lower paid non-regular wage contracts.
And at the same time, unionization declined and wage bargaining power of labor unions all but disappeared.
이뿐만은 아니다. 비정규직도 늘어나고,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고, 노조가입률도 낮아지는 등 여러 요소가 전반적인 노동 시장 저임금 문제에 영향을 줬다.
아베가 바보도 아니고, 나름 노동자들의 노동소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 노력했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우호적이었으니.
http://www.hankookilbo.com/v/1273a3a7c27d418fb7492c3804c3388b
근데 최저임금에 영향 받는 노동자 계층이 전체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라 전체 노동 시장을 보면 대마가 아니었다.
IMF가 권고하는 방안은 '기업의 조인트를 까자'. 생산성 성장률보다 2% 높게 임금을 올리게끔 하고 따르지 않는 기업에겐 '무조건' 설명하게끔 하는 방식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세제 정책으로 기업에 임금상승유인을 제공하라 했고, 심지어 세금으로 징벌까지 하라고.
The government could replicate the success of the corporate governance reform by introducing a “comply or explain” mechanism for profitable companies to ensure that they raise wages by at least 2 percent plus productivity growth.
The authorities could strengthen existing tax incentives to raise wages.
Policymakers could even go a step further by introducing tax penalties for companies not passing on excessive profit growth.
Another option is to set the example by raising public sector wages in a forward looking manner.
http://www.hankookilbo.com/v/90b082c640d8417ebf770ed69aada5b2
반면 경제활동을 통해 창출된 이익은 상대적으로 기업에 더 많이 분배되고 노동자에는 덜 돌아왔다. 2014년 기준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중 노동소득 비율)은 62.8%로 OECD 25개국 가운데 18위였다. 노동의 가격이 자본의 가격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는 의미다. 슬로베니아(77.1%) 프랑스(76.2%) 스웨덴(74.3%)은 OECD 평균(66.0%)을 훨씬 웃돌았다.
최저임금 역시 열악한 수준이다. 2014년 기준 전일제 노동자들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35.7%(OECD 평균 39.5%)로 OECD 25개국 중 19위를 기록했다. 뉴질랜드(50.8%) 프랑스(49.5%) 슬로베니아(49.4%)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 2009년 기준 한국의 전일제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35.9%)보다 오히려 후퇴한 수치다.
성별 임금격차도 OECD 22개국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기준 남녀 임금격차는 36.6%로 OECD 평균인 15.4%의 두 배에 달했고, 2위인 일본(26.6%)과도 10%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20/0200000000AKR20160720143100022.HTML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월 평균 임금은 정규직이 269만6천 원, 비정규직이 146만7천 원이었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54.4%에 불과했다. 정규직 임금에 대한 비정규직의 상대 임금도 2011년 56.4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특히 우량 중소기업이 자생하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는 중소기업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대기업-중소기업 하도급 구조다. 평상시에도 하도급 기업들에 우월한 지위를 행사하는 대기업들은 불황 때 손실을 중소기업에 떠넘기는 것이 일상화, 구조화돼 있다. 대기업들이 골목 상권까지 넘보는 판이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전체 근로자 약 1천600만 명 가운데 88%가량이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문제는 간단하다. 한국도 노동자들의 임금은 매우 낮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현 시점을 보자면 대기업-중소기업 혹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구조 때문이다. 고성장 기반의 낙수효과가 막힌 마당에 대기업만 성장하고, 전체 노동자의 90%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은 성장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지 못하며 이 때문에 성장 자체가 힘들다.
대기업-중소기업 자본의 이중구조로 인한 노동의 이중구조가 생긴 건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 사이의 권력 자체를 흔들어야 한다. 미국의 아마존이 기존 자본권력을 Unbundling한 것처럼, 한국의 자본 역시 그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가 구 체제의 마지막이라면, 동시에 신 체제의 시작이다. 신 체제의 시작이 어디서 시작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신 체제는 구 권력의 시체를 뜯어먹으며 나타났다. 혁신하지 못하는 기업, 나누지 않는 기업이 그 제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