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 스포있습니다 ㅅㄱ>
울버린, 그러니까 로건은 한 순간도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행복할 수 없었다. 일순간 행복했겠지만, 로건은 불로불사의 몸을 가진 반면에 로건의 사람들은 뮤턴트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만 했다. 사랑했던 진그레이부터 숙적이었던 매그니토와 연적이었던 사이클롭스까지 모두 그를 떠났다.
모두를 떠나보내며 슬펐던 로건은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이유는 아마 더이상 누구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겠지. 실제로 영화에서 로건은 <더 울버린>과 코믹스 <울버린의 죽음>과 <올드 맨 로건>에서 유사한 이유로 영생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로건의 유일한 가족은 자비에였다. 살인밖에 모르던 짐승에게 가족을 주고 사람임을 깨닫게 한 유일한 사람은 자비에였다. 하지만 자비에는 뇌 질환으로 인해 스스로를 망각하고 끊임없는 발작에 시달려야 했다. 모든 가족은 로건을 떠났고, 로건을 지탱해주던 자비에마저 망가졌다.
그때, 로라가 나타났다. 단 한 번도 가족을 가지지 못했던 로건에게, 로건의 피를 이어 받은 또다른 뮤턴트가 나타났다. 심지어 살인밖에 모르던 자신의 과거와 닮은 로라를 로건은 배척하지만, 끝내 손을 잡는다. 로건은 로라가 자신과 같은 운명을 걷지 않길 바라며,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자비에가 로건에게 지금의 행복을 느끼고, 보통의 일상을 즐기라며 했던 조언과 같다.
"절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마"
영화는 다방면으로 해석의 가능성을 준다. 영화 초반 로건의 차에서 "USA"를 연호하며 진상짓을 하는 캐릭터들이 백인이라는 점, 뮤턴트의 새로운 시작이 비백인 멕시코 여자 아이라는 점과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가려 하는 설정 들이 현재의 미국을 묘사한다.
흡사 트럼프 시대를 막지 못한 지금의 세대가 후대에게 보내는 미안함의 편지와 같다. 절대 시대가 바라는 대로 반동과 불온한 삶을 살지 말고, 스스로의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라는 메시지마저 조응한다.
3월 1일 종로 3가를 거닐던 내게 이 영화는 다른 의미를 준다. 한국에 태어나 여러 혜택을 자라온 나지만, 한 가지 받지 못한 혜택이 있다. 바로 보고 배울 만한 윗 세대가 없다는 점이다. 탑골공원과 보라매공원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기성세대. 전쟁과 산업화를 겪은 한국의 노년세대와 그 밑의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종로 3가 소위 애국보수 시위대는 지극히 반동적이었다.
박정희와 이승만만세를 외치며 성조기와 태극기를 몸에 휘감고 언론 분쇄와 국회 해산 그리고 탄핵 기각을 외쳣다. 그들의 주장은 민주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계엄령을 포고하고 군대가 일어나야 한다는 정체 모를 급진성을 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살아가라는, 아니 오히려 반동적으로 살아가라고 외친다. 그들의 고난한 중장년과 노년을 젊은 세대의 공간을 빼앗아 보상 받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인정투쟁은 젊은 세대와 중장년을 좌빨과 종북 그리고 전교조에 의해 세뇌된 누군가로 상정하며 이루어진다. 후대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인정하려는 치졸한 인정투쟁이다.
항상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시대가 원하는 대로, 시대에 짓눌려 살았던 세대이기에 애잔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대들에게 이러한 세상을 전달해서 미안하기는커녕 오히려 본인들이 살았던 과거로 회귀하라는 윗세대는 과연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로건은 로라에게 시대가 바라는 대로 살지 말고, 낙원에서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다. 로건의 표정엔 미안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슬픔과 사랑이 묻어난다. 로라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하나뿐인 자신의 후대의 성장과정을 바라보지 못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로라는 로건에게 같은 뮤턴트로서의 동지애와 선대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사랑을 표한다.
2017년의 한국 노년세대는 어떠한가. 2017년보다 반동적이고 불온한 본인들의 과거로 돌아가자고 당당하게 외치며, 현재 세대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사회 체제마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1970~80년대 개발독재가 낳은 괴물이 2017년의 광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 광장은 2002년의 월드컵 합성이 가득찼던 광장이요 2017년 민주주의의 촛불이 켜졌던 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