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지 같은 고산 숲 선봉령
첫 번째 탐사지인 조양천 꽃동산을 뒤로하고 이도백하 숙소로 가는 중 잠깐 들른 곳은 선봉령이라 불리는 지역의 숲이었다. 버스는 평범한 시골 도로 옆 공터에 주차를 했고 우리는 진행팀의 안내와 지시에 따라 야생화 탐사를 시작했다. 도로에서 평평하게 이어지는 숲이었지만 도로 자체의 해발 고도가 높아서 사실상 선봉령 고산지대였던 것이다.
숲으로 발걸음을 들여놓으며 바로 눈에 띈 건 분홍바늘꽃이었다. 불과 10일쯤 전 힘들게 대덕산 뒤편의 군락지를 찾아가 감탄을 하며 몇 시간을 보냈던 바로 그 꽃이 아주 쉽게 눈에 들어왔다. 다음엔 선투구꽃 군락이 풍성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작년 두문동재에서 딱 한 개체를 만나 선투구꽃으로 동정하며 기뻐했던 그 꽃이었다. 우리는 감탄을 연발하며 다양한 앵글로 선투구꽃을 사진에 담았다. 도깨비엉겅퀴와 산각시취도 내게는 처음 보는 꽃이었다. 흔하지 않은 야생 우엉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우리를 반기는 다양한 야생화들에 정신이 팔려 나는 반바지 차림의 종아리가 풀섶에 긁히는 것은 아랑곳 않고 벌이 되고 나비가 되어 숲 속을 누볐다. 저녁시간을 맞춰야 한다며 안내자가 재촉을 하는 바람에 서둘러야 했다. 말나리와 동의나물이 여기저기서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보다는 다른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느라 내 눈동자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안내자가 가리키는 나무 밑동의 호노루발과 주걱노루발을 서둘러 담고 숲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뭐가 호이고 뭐가 주걱인지는 나중에 확인하면 될 테니까.
평범해 보이면서도 특별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내 키를 훌쩍 넘는 큰박쥐나물, 이 녀석은 줄기에서 잎줄기가 나오는 모습이 귀박쥐나물과 같았지만 키의 크기 등으로 인해 따로 분류되는가 보다. 나는 양치식물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두메개고사리라는 식물은 잎의 모양과 조직이 아주 섬세해서 참 아름다웠다. 꽃은 일반 어수리랑 다를 바 없지만 잎 모양이 구별점이 되는 좁은잎어수리도 만났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돌바늘꽃, 그리고 쥐털이슬인지 개털이슬인지 구분 포인트가 여전히 헷갈리는 털이슬 종류의 꽃 군락이 나무 밑동을 감싸고 있기도 했다. 가는잎쐐기풀을 사진에 담으며 쐐기풀에 스쳐서 종아리가 부풀어 올라 고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안내자의 재촉에 숲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저 멀리 투구꽃 몇 개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큰박쥐나물 못지않게 키가 훤칠하게 큰 투구꽃 종류였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가는돌쩌귀라고 외쳤다. 나중에 함께 동정하는 과정에서 이 식물은 실바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식물학자들 간에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야생화 중 하나인 듯하다. 어쨌거나, 그저 멋지고 아름다운 이들을 서둘러 담고 도로변으로 나오면서 물레나물을 보고 터리풀도 보고 산골무꽃도 보았다. 들어갈 때 서둘러 담았던 호노루발과 주걱노루발을 다시 담아 봤는데 꽃색이 녹색이라서인지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버스가 주차해 있는 공터로 나와 보니 아직 많은 분들이 숲 안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분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터 주변에서 가는잎소리쟁이, 족제비쑥, 인가목, 달구지풀, 개황기를 담았다. 들어갈 때 이미 보았던 털향유 흰색을 붙들고 더 잘 담으려 애를 쓰고 있는데 버스가 출발하려 시동을거는 소리가 들렸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시간에 쫓겨 숲 속 깊숙이까지 탐사하지 못한 게 아쉬움을 넘어 섭섭하기도 했다. 탐사여행 일정을 짜고 그에 따라 인도를 하는 진행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쉬운 마음은 쉬이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래, 나중에, 다음 언젠가에 다시 오면 되지 뭐, 보다 자유롭게 개별 탐사여행을 한번 계획해 보지 뭐. 그때는 저녁을 제대로 못 먹더라도, 비스킷 몇 개 조물 거리며 숲 속 깊숙이 들어가 보고야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