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일

음력 생일에 떠나보낸 첫아기

by 조니

" 아... 안되는데... "



짧지만 세상에서 가장 깊은 탄식을 의사 선생님이 내뱉었다. 그리고 그 손길을 따라 올라간 초음파 화면에서 보이는 아기의 모습은 2주 전 봤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 있었다. 의료 지식이 전무한 내가 봐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흑백의 초음파 화면이지만 생기가 넘치듯 깜빡거리고 우렁차게 소리를 내고 있었던 아이의 심장 반짝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이 시기에 나는 임신 초기 8주 차 임산부였다. 약 두 달 전, 처음으로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10년간 연인으로 지내던 남편과 2년 전 결혼을 해 가족이 되었다. 어리지 않은 나이라 병원에서 산전검사를 받고 올해 본격적으로 아이를 준비하기로 하고 두 번쯤 시도했을까.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기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 달 때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동안 하던 배란테스트기도 하지 않고 잠시 쉬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그때, 거짓말처럼 갑자기 아기가 찾아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아직은 엄청 간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시기 찾아온 아기가 반갑기보다는 두려운 존재로 느껴졌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많고, 해보지 못한 것도 많고,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했는데 내가 엄마가 된다니...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임신테스트기에 비치는 연한 두 선을 보고 복잡했던 내 심정과는 달리 아무것도 모르고 여행을 계획하는 남편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확실해지면 다른 사람들처럼 이벤트를 하며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한 계획과는 달리 바로 두 줄이 희미한 임신테스트기를 남편에게 건넸다. 우리는 그렇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모가 되었다.



임신을 확인하고 아기를 처음 만나기 위한 과정은 꽤나 힘들고 애가 탔다. 두 줄만 확인하면 모든 것이 끝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임신테스트기에서 연한 두 줄을 확인하게 된 다음 임신테스트기의 결과선이 대조선을 넘어 진하게 되는 흔히 말하는 역전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 나타나는 연한 두줄로는 병원에 방문해도 피검사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 방문하게 되는 그날까지 임신테스트기를 하며 선이 점점 진해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흘러넘치는 정보 탓에 화유, 자궁 외 임신 등 무서운 이야기만 가득한 상황을 애써 무시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겨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대조선과 결과선이 비슷하게 보이는 그날, 역전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리 알아봤던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직 아기집을 보지 못할 수 있었지만 하루빨리 이 답답하고 궁금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다. 병원에서 초음파를 하자 아주 작은 0.25cm의 아기집을 발견했다. 그동안의 걱정이 한순간 사라지며 정말 내가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4주 6일 차로 추정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은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아기집을 확인한 다음에는 불안함 마음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집이 생긴다고 끝이 아닌, 아기가 아기집 안에 잘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한 난황은 생기는지 등등 끊임없는 불안과 걱정이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스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저 예비 엄마들이 모인 카페를 들락거리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2주 뒤, 예정된 병원 검진일이 되어 병원을 방문했다. 혈압을 측정하고 진료실 앞 의자에 대기하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다. 마치 일분이 한 시간인 것처럼 애타는 시간을 보낸 다음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날 처음으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게 되었다. 점처럼 굉장히 작은 태아의 모습에서 마치 별 빛이 빛나는 것처럼 반짝임이 있었는데 심장이 뛰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리고 초음파를 통해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오묘하고 신기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이 물 밀듯이 휘몰아쳤다.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근처 호수공원을 찾았다. 임신을 알게 된 이후 이상하게 자꾸만 예뻐 보이던 작은 꽃 한 다발을 구매한 다음 평화로운 호수공원을 걸었다. 그리고는 부모가 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심장소리를 듣고 2주 뒤 검진에서 아기의 심장과 성장이 6주 6일 차 정도로 멈춰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검진을 오기 전 2주간 나의 모든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너무 무리해서 일을 한 걸까?

기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한 게 문제일까?

입덧으로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그런 걸까?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도 아이가 떠난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하리보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하는 아기는 텅 빈 공허함만 느껴지는 아기집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그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 병원에서는 현재 예약 가능한 가장 빠른 소파술 일정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날은 내 음력 생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자책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임신 12주 이하의 초기 유산의 경우 염색체와 같은 어쩔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나도 분명 그 사실은 객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나에 대한 자책감으로 바뀌어만 갔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 남편은 묵묵히 나를 안아주고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생일 당일, 덤덤한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며칠의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오전 첫 수술이라 병원에 도착한 다음 간단한 검사를 하고 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수술이었다. 떠난 아기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만큼은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슬픔을 숨긴 채 밝은 모습으로 수술을 마무리하고 병원을 나설 생각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수술대에 누웠다. 수술실이 차갑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유 모를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고 곧이어 마취로 잠에 들게 되었다.



소파술은 30분 정도 걸려 무사히 그리고도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아기를 만나서 뱃속에서 함께하던 시간보다 수술로 보내주는 시간이 훨씬 더 빨랐다. 슬픈 마음을 느끼기도 전에 생리통보다 훨씬 심한 복부의 통증이 계속 느껴졌다. 마취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라 다른 진통제를 투여하기에는 어렵다고 했다. 그저 이 고통을 오롯이 스스로 참아내야만 했다.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기를 잃은 것도 속상한데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한다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절대 울지는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휴대폰으로 밝은 유튜브 영상만 골라서 계속해서 재생했다.



'흑... 흐흐흑.... 흐...'



조용하던 병실의 옆 침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억지로 참으려고 하지만 입술 사이로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슬픈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의 눈물이었다. 울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그렇게 병실 안에서는 한참 동안 작은 흐느낌 소리만 가득 울려 퍼졌다. 이렇게 나의 음력 생일날 첫아기와 이별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그날, 아기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었다.



그날 밤하늘의 보름달은 크고 굉장히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환한 보름달이 비추는 태몽과 함께 찾아온 아기가 나에게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밝은 달을 보면 떠난 아기가 그립겠지만 나는 다시 만날 아기를 위해 또다시 일상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아기가 나를 찾아오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시 와줘서 고마워. 이번에는 꼭 엄마가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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