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침

by TJ

2147-03-12 00:19


창고 B-12의 비상 조명이 주황빛으로 깜박였다.


하린은 단말 화면을 끄지 않았다. KRONOS 출력 마지막 줄이 눈앞에 고정된 채였다.


*뭔가 응답하고 있다.*


44.7초. 89.4의 정확히 절반. 자연 감쇠 패턴도 아니고, 장비 오류도 아니고, 열역학적 주기 변동도 아니다. KRONOS가 모든 항목을 하나씩 지웠다. 남은 건 분류 불가.


하린은 단말을 내려놓았다.


분류 불가라는 건 KRONOS의 어휘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모른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시스템이었다. 확률을 붙이거나, 데이터 부족 태그를 달거나, 추가 수집 권고를 출력하거나. 셋 중 하나였다.


오늘 밤, KRONOS는 분류 불가라고 썼다.


그 뒤에 자유 텍스트를 달았다.


하린은 산소 탱크 더미 뒤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굳었다. 엎드린 채 단말을 손에 쥔 채 있던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먼저였다.


탐침이 없었다.


서진우가 삭제한 건 데이터만이 아니었다. 발사 로그, 경로 파라미터, 원본 보정 파일. 탐침을 다시 만들려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갈릴레오가 1995년에 22 bar에서 찌그러진 이후로, 목성 대류권 하층에 탐침을 넣은 사례는 두 번뿐이었다. 두 번 다 ARIA 스테이션 기록에 있었다. 두 번 다 서진우가 데이터를 "정리"했다.


단말에 KRONOS 출력이 떴다.


[KRONOS]

보안팀 현재 위치: A구역 — F구역 반대 방향.


하린은 격납고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2147-03-12 01:04


격납고 F-구역은 잠겨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 잠겨 있어야 했다. 보안팀이 연구실을 포기하고 한수인의 전체 방송 쪽으로 이동했을 때, 잠금 재확인 루틴이 실행되지 않았다. 허점이라면 허점이고,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철제 선반이 천장까지 늘어선 공간이었다. 탐침 잔해는 맨 끝 열에 쌓였다. 서진우가 발사 데이터를 지운 탐침들. 지워도 잔해 자체를 버릴 수는 없었다. 장비 폐기에는 폐기 보고서가 필요하고, 폐기 보고서는 기록으로 남는다.


하린은 선반 앞에 섰다.


알루미늄 케이싱이 납작하게 찌그러진 것 세 개. 열 차폐 패널 두 장. 스러스터 케이싱 하나 — 추진 노즐 부분은 손상됐지만 본체는 살아 있었다. 압력 센서 배선 묶음. 타이타늄 볼트 여섯 개.


*이걸로 가능한가.*


하린은 잔해를 바닥에 꺼내 놓기 시작했다. 하나씩.


갈릴레오는 22 bar에서 찌그러졌다. 1995년, 탐침이 목성 대기에 진입한 지 58분 후였다. 그 탐침은 당시 최고의 공학 기술로 만들어졌다. 2014년 ARIA 초기 탐침은 31 bar까지 버텼다. 현재 ARIA 기존 탐침 설계 한계는 35 bar. 세 번의 발사 중 두 번은 35 bar 이전에 손실됐다.


목표는 50 bar였다.


대류권 하층—troposphere lower layer, 목성 구름층 아래 고압 구간—에 진입해야 신호 발원지에 닿는다. 50 bar 구간은 지구 해수면 기압의 50배. 그 압력에서 작동하는 탐침을 ARIA 스테이션은 공식적으로 보유하지 않았다.


비공식적으로도.


*35에서 50. 차이는 15 bar다. 퍼센트로 치면 약 43%. 그 43%를 찌그러진 알루미늄 튜브 세 개로 채워야 한다.*


하린은 알루미늄 케이싱 하나를 집어 한 손으로 들어봤다. 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아니, 생각보다 — 처음부터 아무 생각 없이 든 것이다. 공황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오 기지 훈련에서는 이 상태를 '유효 집중' 단계라고 불렀다.


선반 옆에 있는 워크스테이션 단말을 켰다.


설계를 시작해야 했다.




2147-03-12 01:31


튜브 표면이 차가웠다. 손가락 끝에 금속 결이 잡혔다.


알루미늄 6061-T6. 항복 강도(yield strength)—재료가 영구 변형을 시작하는 응력 한계—276 MPa. 현재 35 bar 설계 기준 안전 계수 2.1.


50 bar를 버티려면 안전 계수를 유지하면서 내압을 43% 높여야 했다.


단순 계산이었다. 두께를 늘리면 된다.


문제는 두께를 늘리면 무게가 늘어나고, 무게가 늘어나면 스러스터 출력이 모자라진다. 손상된 스러스터 케이싱으로는 여유가 없었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하린은 알루미늄 튜브를 손으로 들어 조도 아래서 돌려봤다. 단면이 원형이었다. 원형 단면은 균일 하중 분포가 유리하다. 단점은 접합부. 튜브 세 개를 직렬 연결할 때 연결부가 약점이 된다.


연결부 보강에 타이타늄 볼트 여섯 개를 배분하면—


*잠깐.*


온도를 빠뜨렸다.


50 bar 환경의 예상 온도는 약 250°C였다. 알루미늄 용융점은 660°C. 마진이 410°C. 구조 강도 계산 기준인데 열 처리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하린은 손을 멈췄다.


*마진 410도.*


410도. 숨이 내려갔다. 마진이 넉넉했다.


*다행이다. 불행히도 이게 유일하게 좋은 소식이다.*


열 차폐가 없으면 250°C 환경이 외벽 알루미늄을 가열하면서 구조 강도가 25~30% 떨어진다. 알루미늄은 온도 상승과 함께 항복 강도가 급감한다. 660°C 용융점이 있어도 200°C에서 이미 강도가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다.


열 차폐 없이 50 bar를 견딘다는 계산은 틀렸다.


하린은 열 차폐 소재 목록을 열었다. 선반에서 발견한 패널 두 장. 세라믹 섬유 복합재. 단열 성능 양호. 하지만 두 장으로는 외벽 전체를 덮을 수 없었다.


3중 레이어가 필요했다.


열 차폐 레이어 1: 세라믹 패널 절단 — 전면 열 부하 구간 집중 커버.

열 차폐 레이어 2: 스러스터 케이싱에서 분리한 단열재 — 측면.

열 차폐 레이어 3: 압력 센서 배선 피복 재활용 — 후면 최소 커버.


3중 레이어가 완성되면 외벽 알루미늄이 받는 온도를 100°C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그 온도에서 알루미늄 강도 저하는 7% 이내. 안전 계수 유지 가능.


*이론상 가능하다.*


손이 단말 위에서 잠시 멈췄다.


이론상. 항상 이 단어가 걸렸다.




2147-03-12 02:19


진동이 문제였다.


하린은 계산을 세 번째 검토하다가 숫자가 맞지 않는 지점을 발견했다. 목성 대류권 하층 진입 시, 바람이다. 풍속 430~680 km/h. 탐침이 강하 과정에서 대기류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진동이 케이싱 전체에 공진 주파수를 만든다.


3개 튜브 연결부.


그 연결부가 공진 주파수와 일치하면 금속 피로 파괴가 시작된다. 단순 압력이 아니라 반복 응력이다. 50 bar에서 버티더라도 진동 누적으로 연결부가 먼저 나간다.


워크스테이션 화면에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2분 후 결과가 나왔다.


연결부 피로 파괴 예상 시점: 목성 대기 진입 후 4분 12초.


갈릴레오는 58분 버텼다. 공식 기록상 ARIA 탐침은 최소 23분 운용이 필요했다. 4분 12초는 허용 불가였다.


*틀렸다.*


하린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고친다.*


연결부 구조를 바꾸면 됐다. 직렬 연결에서 나선형 보강재(helical stiffener)—나선 형태로 감겨 비틀림과 진동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구조 부재—를 추가하면 공진 주파수 자체가 달라진다. 나선형 구조는 진동 에너지를 비틀림 운동으로 전환해 피로 파괴를 늦춘다.


보강재 소재는 — 압력 센서 배선 묶음 안의 스테인리스 와이어. 직경 2mm. 연성이 충분했다.


손으로 구부러지는지 시험해봤다. 됐다.


나선형 보강재를 연결부마다 각 2회전 감아 타이타늄 볼트로 고정하면, 피로 파괴 예상 시점이—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렸다.


3분 28초.


*더 나빠졌다.*


하린은 단말 모서리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렸다.


감는 방향이 문제였다. 나선 방향이 대기류 방향과 일치하면 공진을 유도한다. 반대 방향으로 감아야 한다.


시뮬레이션 파라미터를 수정했다. 나선 방향 반전.


결과: 피로 파괴 예상 시점 — 34분 7초.


*계속한다.*


안전 마진을 확보하려면 최소 30분 운용이 필요했다. 34분 7초는 마진이 4분뿐이었다. 부족했다. 보강재를 2회전에서 3회전으로 늘리면 — 시뮬레이션 — 41분 19초.


충분했다.


체크리스트를 다시 정렬했다.


*구조 강화: 완료. 열 차폐 3중 레이어: 완료. 나선형 보강재 반전 방향 3회전: 완료. 스러스터 출력 마진 12%. 배선 기능 유지.*


조립에 들어갔다.




2147-03-12 03:47


완성된 탐침은 기존 탐침과 달랐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았다. 세라믹 패널 이음새가 보였고, 와이어 보강재가 연결부마다 은색 나선으로 드러났다. 스테이션 공식 탐침과 비교하면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손으로 만든 물건이 맞았다.


하린은 탐침을 워크벤치 위에 세워 놓고 한 발 물러섰다.


달성 확률 계산. 구조 강도 73.2%. 열 차폐 효율 81.4%. 진동 내성 68.9%. 스러스터 출력 여유 12.4%. 각 항목에 가중치를 곱하고 실패 확률을 뺐다.


73%.


세 번 계산해도 73이 나왔다.


*나쁘지 않다.*


27%는 실패 확률이었다. 실패하면 탐침은 50 bar 이전 어딘가에서 파괴된다. 대체 탐침은 없었다. 이 탐침 하나가 지금 하린이 가진 전부였다.


*나쁘지 않다고 27번 말해도 더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탐침의 측면을 손으로 한 번 두드렸다.


금속음이 작게 났다.


"갈릴레오 탐침은 22 bar에서 찌그러졌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나는 너한테 50 bar를 부탁한다. 미안하다."


탐침이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하린은 체크리스트를 한 번 더 확인했다. 73%. 이건 '허용 가능한 위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치였다. 공식 문서에서는 70% 이상이면 발사 승인 기준을 충족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73이 좋아 보였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발사 준비를 시작했다.




2147-03-12 04:11


발사 통제 패널은 격납고 중앙부에 있었다.


하린은 탐침을 발사관에 장착했다. 체결 토크 확인. 좌표 입력. 목표 지점: 대류권 하층 50 bar 구간, 공명 신호 추정 발원 좌표.


KRONOS 경로 최적화 실행.


[KRONOS]

탐침 ID: TRB-17 (임시 지정)

목표 좌표: 대적점 아이 - 대류권 하층 추정 발원 구간

발사 창: 09분 14초 후

─────────────────────────

경로 최적화 실행 중...


화면이 1.2초 멈췄다.


표준 응답 시간은 0.3~0.5초였다. 하린은 단말 측면에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화면으로 가져왔다.


경로 최적화 완료.

─────────────────────────

[표준 경로 A] 사용 불가 — 간섭 검출

[대체 경로 B] 권고

효율: 표준 대비 −18%

도달 확률: +6%

예상 진입 시간: +4분 33초


*비효율 경로.*


하린은 두 경로를 비교했다. 대체 경로 B는 목성 자기장 구간을 우회했다. 경로 자체가 표준보다 31% 길었다. 스러스터 연료 소모가 늘었다. 도달 확률은 6% 높아졌지만, 경로 비효율 31%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KRONOS는 왜 표준 경로를 포기했나.


하린은 입력했다.


표준 경로 A 간섭 원인 분류


응답이 0.8초 후에 나왔다.


0.8초. KRONOS의 어휘로는 경악 수준의 지연이었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출력하기 직전, KRONOS는 항상 조금 더 오래 생각했다.


[KRONOS]

표준 경로 분석 결과:

간섭 구간: 좌표 J-4471 ~ J-4483

간섭 유형: 주기성 신호 — 자연 대기 현상 해당 없음

─────────────────────────

간섭원: 인공 신호.

─────────────────────────

(비표준 자유 텍스트 — 응답 지연 0.8초)

이 신호는 3년 전부터 있었다.


하린은 화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인공 신호.


목성 대적점 안에. 3년 전부터.


갈릴레오가 탐침을 쏜 지 150년이 지났다. 그 아래층을 인류가 들여다본 적은 단 두 번뿐이었다. 대기 조성 측정이 목적이었다. 인류가 신호를 거기에 설치할 방법이 없었다. 생존할 수도 없었다.


3년 전이라는 건 — KRONOS가 가동된 시점이었다.


카이가 실종된 시점이었다.


하린은 단말을 들지 않았다. 화면이 깜박이며 발사 창 카운트다운을 표시했다.


발사 창: 07분 02초


인공 신호가 3년 전부터 존재한다는 건 —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대류권 하층에 그것을 만든 무언가가 있거나, 누군가가 먼저 그 아래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발사 창 숫자가 줄어들었다.


하린은 KRONOS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


*3년 전부터. 3년 전은 카이가 실종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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