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축제

by TJ

바람끈이 손가락을 베었다.


엘레나는 피가 맺힌 손끝을 입술로 눌렀다. 축제용 바람끈은 원래 부드러워야 했다. 아이들도 손목에 감고 뛰어다니는 흰 천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녀가 묶던 끈 한가운데에 검은 실이 섞여 있었다.


얇고, 차갑고,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실.


"엘레나! 아직도 거기 있어?"


광장 쪽에서 마라가 손을 흔들었다. 빨강과 금빛 깃발 사이로 그녀의 갈색 머리가 튀어 올랐다. 마라는 벌써 축제용 꽃관을 머리에 얹고 있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새가 딱 마라다웠다.


"곧 가!"


엘레나는 대답했지만, 손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실은 사라져 있었다.


남은 것은 피 한 방울뿐이었다. 바람끈은 처음부터 깨끗한 흰색이었던 것처럼 제단 기둥에 얌전히 묶여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아니, 바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낮은 숨이었다. 누군가 엘레나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댄 것처럼, 차가운 기척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도망쳐.


엘레나는 고개를 들었다.


스톰엔드의 광장은 축제 소리로 가득했다. 북소리, 피리 소리, 아이들이 뛰며 웃는 소리, 시장 상인들이 계피 사탕을 외치는 소리. 바람의 경고 따위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시렸다.


"너 또 그 표정이다."


마라가 어느새 다가와 엘레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무슨 표정?"


"세상이 너한테만 못된 비밀을 알려준 것 같은 표정."


엘레나는 피 묻은 손가락을 등 뒤로 숨겼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그렇게 손을 숨기지 않거든."


마라는 엘레나의 손목을 붙잡고 살폈다. 상처를 본 그녀의 눈썹이 올라갔다.


"바람끈에 베였어? 말도 안 돼. 이거 솜보다 부드러운 건데."


"내가 세게 당겼나 봐."


"거짓말이네."


마라는 짧게 말했다. 그러고는 더 캐묻지 않았다. 그게 마라의 방식이었다. 찌를 곳을 정확히 알면서도, 엘레나가 숨을 고를 틈은 남겨주었다.


"그래도 오늘은 축제야. 네가 무슨 걱정을 하든, 적어도 첫 춤은 나랑 춰야 해."


"마라, 난 춤 못 춰."


"네가 못하는 건 춤이 아니라 남들 앞에서 웃는 거야."


마라가 엘레나의 손을 잡고 광장 한복판으로 끌었다.


스톰엔드의 바람 축제는 해마다 같은 노래로 시작됐다. 오래된 제단 앞에 마을 사람들이 원을 만들고, 가장 어린 아이가 흰 리본을 공중에 던진다. 리본이 바람을 타고 제단 위에 내려앉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엘레나는 어릴 때부터 그 장면을 좋아했다.


오늘은 달랐다.


제단의 돌문양이 낯설었다. 늘 보아온 나선 무늬 사이에, 그녀가 묶은 검은 실과 닮은 선이 하나 더 들어가 있었다. 너무 가늘어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선이었다.


저 선은 어제까지 없었다.


"엘레나."


마라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또 멀리 갔다."


"제단에 무늬가..."


"무늬?"


마라가 고개를 돌렸지만, 그때 북소리가 커졌다. 마을 아이가 흰 리본을 들고 제단 앞으로 뛰어나왔다. 사람들의 환호가 광장을 덮었다.


노래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익숙한 가사였다.


바람아, 문을 닫아라.


폭풍아, 잠들어라.


우리의 집을 지나가라.


그런데 둘째 절에서 엘레나의 귀에 다른 말이 섞였다.


바람아, 문을 열어라.


폭풍아, 깨어나라.


마지막 열쇠를 데려가라.


엘레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도 가사가 바뀐 것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마라조차 신나게 박자를 맞추며 엘레나의 손을 흔들었다.


"들었어?"


"뭘?"


"방금 노래가..."


리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때 바람이 멈췄다.


피리 소리도, 사람들의 웃음도 그대로였지만, 공기만 얼어붙었다. 흰 리본은 제단 위로 떨어지지 못한 채 허공에 매달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움켜쥔 듯했다.


엘레나는 손끝으로 공기의 결을 짚었다.


없다.


바람이 없었다.


스톰엔드에서 바람이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폭풍이 약해진 날은 있어도, 창문 틈을 스치는 숨결 하나까지 사라진 적은 없었다.


아이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신호였다.


제단 아래에서 검은 바람이 솟구쳤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것을 연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은 기류는 불길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실처럼 풀려 나와 제단을 감고, 리본을 찢고, 사람들의 발목 사이를 빠르게 기어 다녔다.


"물러나!"


누군가 소리쳤다.


엘레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검은 바람이 그녀에게만 말을 걸고 있었다.


열쇠.


문.


돌아왔다.


그 단어들이 머릿속에 박혔다.


마라가 엘레나의 어깨를 밀쳤다.


"정신 차려! 뒤로 가!"


그때 제단 위 돌기둥 하나가 갈라졌다. 오래된 돌조각이 사람들 쪽으로 쏟아졌다. 마라가 엘레나를 밀어내느라 피하지 못했다.


엘레나는 마라의 이름을 부르려 했다.


목소리보다 먼저 바람이 움직였다.


멈춰.


엘레나의 손끝에서 흰 바람이 터졌다.


그녀가 부른 것이 아니었다. 붙잡은 것도 아니었다. 몸 안에 갇혀 있던 숨이 찢겨 나가듯, 바람이 그녀의 팔을 타고 광장으로 퍼졌다. 떨어지던 돌조각들이 허공에서 멈췄다.


마라가 눈을 크게 떴다.


"엘레나...?"


돌조각은 멈췄지만, 검은 바람도 같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엘레나를 알아본 듯 방향을 틀었다. 제단을 감고 있던 실들이 일제히 그녀 쪽으로 뻗었다.


엘레나는 물러섰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러나 광장은 이미 그녀의 바람 안에 있었다. 깃발이 찢어질 듯 펄럭이고, 천막이 뜯겨 올라가고,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부딪쳤다. 그녀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돌조각이 흔들렸다.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바람의 칼날이 광장 바닥을 긁었다.


그녀는 마라를 보았다.


마라가 겁먹은 얼굴로 엘레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았다. 소매를 붙잡던 손이 이번에는 허공을 더듬었다. 엘레나에게 닿으려는 손이었다.


"엘레나, 나 봐."


마라의 목소리가 바람 사이로 찢겨 들어왔다.


"나 여기 있어."


그 말에 엘레나는 겨우 숨을 내쉬었다.


바람의 결이 손끝에 닿았다.


처음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은 하나의 힘이 아니었다. 광장 안에는 수백 개의 흐름이 있었다. 도망치려는 사람들의 숨, 울음을 삼키는 아이의 목, 제단 아래에서 올라오는 검은 실, 마라를 감싸려는 자신의 흰 바람.


엘레나는 그중 하나를 골랐다.


마라에게 향하는 돌조각.


그녀는 손을 움켜쥐었다.


돌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라의 발치에서 부서진 돌가루가 흩어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신음들이 연달아 터졌다.


엘레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검은 바람을 보았다.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모양을 한 상처였다. 제단 밑에서 오래 갇혀 있다가 누군가의 피 냄새를 맡고 깨어난 것.


누군가의 피.


엘레나는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바람끈에 베인 자리에서 피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 바람이 웃었다.


소리는 없었지만 엘레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만."


낯선 목소리가 광장을 갈랐다.


엘레나의 바람이 한순간에 무릎을 꿇었다.


은빛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여자가 제단 앞으로 걸어 나왔다. 축제복도, 마을 사람의 옷도 아니었다. 짙은 남색 로브 끝에 별자리 같은 문양이 박혀 있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광장 바닥의 먼지가 둥글게 밀려났다.


여자는 엘레나를 보지 않았다.


제단을 보았다.


"누가 봉인을 건드렸지?"


그 말에 마을의 노인들이 굳었다. 방금 전까지 엘레나를 보고 수군거리던 사람들조차 입을 다물었다.

여자가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바람개비 모양의 오래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문장이 푸르게 빛나자 검은 바람이 제단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기 전, 검은 실 하나가 엘레나의 발목을 스쳤다.


차가운 감각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문이 열린다.


엘레나는 휘청였다.


마라가 달려와 그녀를 붙잡았다.


"엘레나! 괜찮아? 대답해!"


"나..."


엘레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축제의 환호는 사라졌다. 광장에는 찢어진 리본, 부서진 돌, 흩어진 꽃잎, 그리고 그녀를 피해 한 걸음 물러난 사람들만 남았다.


아까까지 그녀와 함께 노래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질문이 있었다.


경계도 있었다.


여자가 그제야 엘레나에게 다가왔다.


"이름이 뭐니?"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런데 엘레나는 그 목소리 안쪽에서 더 단단한 것을 들었다. 안도. 경계. 그리고 죄책감.


"엘레나..."


"성은?"


엘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스톰엔드에서는 성을 묻지 않았다. 바람이 거세고 땅이 척박한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집과 얼굴로 충분했다.


여자는 엘레나의 침묵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이요라다. 스카이 아카데미의 마스터."


스카이 아카데미.


그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 사이에서 더 큰 술렁임이 번졌다. 하늘의 첨탑, 왕국의 마법사들, 정령을 다루는 자들이 모인 곳. 엘레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옛날 노래처럼만 들어왔다.


이요라가 엘레나의 피 묻은 손을 보았다.


"오늘 밤 네가 한 일은 사고가 아니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엘레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전 그냥... 마라를..."


"그래. 그래서 더 위험하다."


마라가 엘레나를 감싸듯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위험하다니요? 엘레나는 우리를 구했어요."


이요라는 마라를 보았다. 차갑지는 않았지만, 그 시선은 마라를 지나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구한 것과 열어버린 것은 다르단다."


엘레나는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실이 닿았던 자리에는 가느다란 문양이 남아 있었다. 바람끈에 섞여 있던 바로 그 선. 제단의 나선 안에 숨어 있던 그 선.


그것이 이제 그녀의 피부 위에 있었다.


"저게 뭐예요?"


이요라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빈틈 때문에 엘레나는 손끝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대답해 주세요."


이요라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오래된 주문 문양을 더듬듯 자신의 손등을 쓸었다.


"봉인의 표식이다."


"왜 제게..."


광장 끝에서 바람이 다시 불었다.


이번에는 차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섞인 목소리는 분명했다.


열쇠를 찾았다.


엘레나는 숨을 멈췄다.


이요라도 들은 듯 손끝으로 오래된 주문 문양을 더듬었다.


그녀는 엘레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길은 조심스러웠지만, 피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스톰엔드의 봉인이 깨어났다. 그리고 네가 그것에 대답했다."


마라가 엘레나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이요라가 광장 한가운데 무너진 제단을 바라보았다.


"윈드콜러가 돌아왔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멎었다.


하지만 바람은 그녀에게 다른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돌아온 게 아니야.


열린 거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