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o Jony

<호주생활> Go, Jony - 여섯번째

Irish man

by Jony


Thr.21.Apr.16
이 곳이 깨끗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백팩커 매니저인 패우릭 때문이다. 그의 청결은 거의 결벽증 수준이다. 아일랜드인 패우릭은 악센트가 아주 독특한 영어를 중저음으로 내뱉는다. 사투리로 표현하면 어울릴까.
“이기 머꼬. 또 누가 개판을 칫노. 드릅다 드러워.”
그는 오만 불평을 다 쏟아내며 비질을 시작했다.

쉐어를 알아보러 30분 전에 도착했다. 일단 가격자체가 $110으로 어마어마하게 싼 편인데, 그만큼 시설은 많이 낙후되었다. 마스터는 필리핀 부인인데 독채에 따로 떨어져 살고, 본채는 3명이 쉐어하며, 중국인 학생 남성 한 명, 마이너 한 명이 살고 있다. 저렴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시설은 불편해도 아무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조금 비싸더라도 사람 많은 현지인 쉐어에 살고 싶다.
백팩커에 돌아오니 패우릭과 제이콥이라는 뉴질랜드 친구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이걸 이리 해가… 아… 어렵노. 마. 니 한국에서 왔다캤제?”
패우릭이 나를 보며 말했다.
“왜?”
“니네 나라 IT 강국이다 아이가. 일마가 유심칩 받은걸로 개통을 해야되는데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겄다.”
“도와줘 조니.”
제이콥은 어깨를 으쓱하며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의자에 앉아 설명서를 자세히 봤다. 영어가 좀 복잡하긴 하지만 난 한 때 유플러스 영업사원이었다. 대충 이런 뜻이겠거니 생각하고 필요한 정보를 기입하니, 모바일 플랜을 결정하라는 칸이 나왔다. 한국 통신사나 호주 통신사나 체계 자체는 크게 틀린 게 없어 보이나, 호주는 미리 선불해서 그 만큼 쓰는 프리페이드라는 요금제가 따로 있어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무튼 제이콥의 월간 전화, 국제전화, 문자, 데이터 사용량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요금제로 개통을 눌렀으나 페이지에서 안내한 10분이 지나도 개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작은 글씨로 최대 4시간 이상 소요될 수 있음 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럴 경우 고객이 해야 할 행동은 통신사를 조지는 것이다. 난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이보세요. 안내페이지에서는 10분이면 개통된다는데 왜 30분이 지나도 개통이 안 되는 겁니까.”
- 고객님, 저희도 이해합니다만, 최대 몇 시간 소요될 수 있습니다. 일단 확실히 개통하셨는지요.
“개통 버튼 확실히 눌렀어요. 일단 기다리라는 말 같은데 내 친구는 당신 회사를 정말 신뢰하고 있습니다. 옵터스 같은 메이저 통신사를 선택하지 않고 당신네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거기 있다고요. 그 기대에 실망을 주진 않겠죠?
- 당연히 아니죠. 긴급히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러고 조금 기다리니 휴대폰은 정상적으로 개통되었다. 제이콥은 고마웠는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왔다.
“야, 니 말빨 끝내주네? 마이닝 알아보지 말고 영어 좀 더 해서 고마 영업해라.”
패우릭의 칭찬에 괜히 으쓱해졌다.

어제와 오늘 아침에 이어 세번째 쉐어를 알아보러 오다. 공과금 포함 주당 $190. 비싼 편이다. 마스터 내외는 다른 곳에 살고 도심지 접근이 용이하다. 이 집의 최대 장점은 플랫메이트(쉐어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모두 원어민이고 다섯 명이 살기 때문에 영어 늘리기 좋다는 것.
모든 시설은 깔끔하고, 가구 역시 다 갖추어져 있다. 보증금은 없다. 침대도 더블베드. 1인 1실이며, 룸메이트를 구할 경우 주당 $250. 맘에 쏙 들어서 내일 입주하기로 결정하다.
집에 가는 길에 도미노피자나 먹을까 싶어 향하다. 12달러 정도에 피자 레귤러 사이즈 한 판을 살 수 있다. 직원들은 아시아인이 대부분이다. 나중에 레쥬메 들고 찾아가야겠다.
집에 돌아와 먹기 시작한 피자는 아주 맛이 없다. 한국 도미노가 그리울 정도. 특히 패우릭은 진저리를 친다.
“짜슥. 좀 좋은 것 좀 먹지. 이 동네에서 도미노가 최고로 맛 없다.”

마당 소파 밤 공기 사이에 앉다. 그랜트가 담배를 태우러 나왔다. 나를 보며 빙긋 웃는다. 약간 취한 듯 하다.
그랜트와 철학적 대화를 하다. 사막, 전쟁, 평화 분명 느리게 말하는데도 발음을 꼬고 장황하고 어눌하게 설명해 도통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먹겠지만.
“그러니까…. 조니….. 우린…. 친구지? 췬구. 사막에 가면…. 아무것도…. 없어….. 없숴……. 거기서…… 총을…… 쏘면…….. 퓍……! 아무도….. 몰라….. 킬킬킬킬킬!”
그냥 따라 웃었다. 원래 개똥철학은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니.

거실로 돌아와 기록을 정리하다. 패우릭은 오밤중 청소를 시작했다. 결벽증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조니. 이것보래이. 어느 짜슥이 또 작업화 신고 들어와가 복도가 엉망이라.”
그런 그를 가만히 보다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패우릭. 아일랜드인도 영어를 쓰니?”
“하모. 우리도 쓴다. 원래 아이리쉬라고 우리만의 언어가 있긴 한데, 아무도 안 쓴다. 니 영어 늘리고 싶으면 영화를 미친 듯이 보래이. 그라믄 퍼뜩 는다. 그나저나 일은 어찌 구했나?”
“아니, 아직 알아보지도 않았어.”
“내일 딱히 할 거 없제? 나랑 에이전시나 가보자. 니 레쥬메는 있제?”
내가 레쥬메 수정하고 확인받겠다 했다. 패우릭의 지휘 아래 레쥬메는 대폭적으로 수정되었다.
“니 레쥬메는 맥도날드에나 갔다 내야 된다. 광산은 무조건 기술이라. 니 기술 가지고 있는 거 있나? 비스무레한거라도 쥐어짜봐라.”
“음… 컴퓨터과학과 나왔고… 군대 있을 때 통신병이었고…”
“그래 그런거를 강조해야 된다고. 어짜피 광산에서 쓰는 기술하곤 코딱지만치도 안 비슷하겠지만서도 니가 그거를 강조하냐 안 하냐가 큰 차이라. 느그 나라에서는 뭐 고장나면 수리공 부를 생각만 한다아이가. 우린 아무도 안 그런다. 딱 보고 아 퓨즈가 나갔구나. 퓨즈를 갈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그리고 레쥬메가 너무 겸손하지 못하다. Upper intermediate 라 적지 말고 intermediate 라고 적고 IELTS 패스했다고 적는게 훨씬 났다. 그라고…”
패우릭은 자정이 다 되도록 잡다한 도움을 주었다.
“광산은 돈 벌면 어마어마하다. 니 광산에서 청소하면 시간당 얼만지 아나? $28 받는다! 동네 식당 청소하면 시간당 $17 정도 받겠지. 드릴링 딱 하면 맥시멈으로 $35는 받는다 이기라. 그래가 번 돈으로 니 가고 싶은 여행 맘껏 다니고 펑펑 쓰는 기라. 니 피지 가봤나? 발리는 가봤나?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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