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o Jony

<호주생활> Go, Jony - 일곱번째

Pauric

by Jony

셔츠 단추를 잠근다. 한국에서 많은 옷가지를 챙겨오진 않았지만, 레쥬메 들고 영업점 방문할 때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셔츠와 정장바지 정도는 챙겨왔다. 그랜트는 그런 나를 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다.

그랜트와 침대에 마주 앉았다.

"그랜트, 나 오늘 에이전시 가는데 조언 좀 해 줘."

"오오... 일을 구하는구나... 음... 가장 중요한 건... 정직이야."

"정직?"

"그래 정직. 책임을... 회피하려고... 거짓말을 쳤다간.... 당신... 집으로 가시오!"

그랜트는 엄숙한 표정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 일 하고 싶은 열정! 열정을... 드러내야 해...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말은... 좋지 않아."

"할 말만 하라는 거지?"

"그렇지...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나머지는 조용히 있어야 돼... 사람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너무 좋아해.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의 품격을 낮추는 거야..."

다 맞는 말이다. 새겨 들었다.

그랜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린 그는 두 번 이혼했고, 전 재산 오백만 달러를 모두 탕진했다.

"그러니까... 주로 "라오" 에 있었지. "메홍 강"..."

""라오스"하고 "메콩 강" 말하는 거야?"

갑자기 그랜트는 정색을 하며 다시 똑똑히 말했다.

"라오.... 메홍 리버. 니가 만약 라오에 가서 라오스라고 했다간... 그건 극심한 모욕이야."

이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불어로 "라오스", "메콩 강" 이라 부르던 명칭이 그대로 굳혀진 것.

"아... 미안. 몰랐어."

"수웨이 마크마크."

"뭐라고?"

"수웨이 마크마크."

"그게 무슨 뜻이야?"

"아름답다. 정말 정말."

그랜트는 씩 웃었다.


20160422_104717.jpg 그랜트.

"저거 보이나? 칼굴리 교도소다. 오만 범죄자들이 저기 갇혀있는기라. 도둑놈, 강간범, 살인범, 와 저런 놈들한테 밥을 줄꼬? 씨발(Fuck)."

패우릭은 운전 내내 길가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악센트도 악센트지만 중간 중간에 Fuck 을 연발해댄다. 그는 성격도 한국인 뺨칠 만큼 급하다."

"미친놈의 새끼 아이가! 씨발놈이 왜 끼어들고 지랄이고."

운전하면서 욕하는 건 전 세계 공통인 듯 하다.

"거의 다 와 간다. 저 에이전시가 칼굴리 보울더 통틀어서 최고로 크다. 니 텍스파일넘버(Tax File Number. TFN. 호주 정부에 납세 의무가 있는 모든 사람은 호주 국세청 ATO 에 TFN으로 등록된다. 인터넷으로 신청 가능.)는 있제?

"아직 안 만들었는데."

패우릭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아이고 문디자슥아. 그라믄 우리 아침 내내 헛짓거리했다 임마. TFN도 없는 놈을 어느 미친 회사가 고용시켜주노. TFN 없는 놈을 고용했다가는 회사가 세금 폭탄을 맞는다고."

"나도 알아. 근데 아직까지 확정된 주소가 없어서 지원 안 했었다고."

패우릭은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일단은 내가 물어보고 올 테니까 가만히 있으래이."

그는 에이전시 안으로 들어가 약 10 분 후 돌아왔다.

"안된다카노. 일단은 신청서 받으래이. 두 개 챙겨왔다. 나중에 TFN 나오면 바로 지원하고. 암튼 TFN 우편으로 받기 전까지 놀 생각은 아니겠제?"

"응... 뭐.. 그렇지."

패우릭이 운전하는 차는 칼굴리 시내로 다시 들어섰다.

"요 근처에 도미노나 맥도날드 가면 드라이버 구할꺼거든? 그거는 당장 TFN 제출 안 해도 될끼다 아마. 일단 거기서 드라이버라도 해라. 호주 물가 비싼 건 니도 알제? 하루빨리 알바라도 구해야된다이. 운전면허는 있나?"

"한국 운전면허 있는데 아직 공증 안 받았어."

"공증? 그기 뭐꼬?"

호주에 살다 보면 JP공증을 받을 일이 종종 생긴다. 각 지역마다 JP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원 사본 일치 증명을 해 주거나, 각종 법률적 서류에 증인이 되어준다. 수수료는 무료다. 호주에 처음 온 외국인이 JP와 마주칠 일은 열에 아홉 운전면허 때문이다. 우리 나라 운전면허 소지자는 제네바 협약을 통해 호주 내에서 운전이 가능하나, 그러기 위해선 공증, 즉 JP를 찾아가 운전면허 영문 번역본에 대해 확인을 받고, 다시 그걸 한국 대사관으로 보내 최종승인을 받아야 한다. 소요되는 시간은 약 일주일 정도. 이 공증 제도에 대해 패우릭에게 설명했으나 패우릭은 조소하며 일갈했다.

"니가 사장 입장이 되 봐라. 니 같으면 자국 면허 가지고 있는 사람을 드라이버로 쓰지, 남의 나라 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쓰겠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니까."

"설령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지원을 했는데 한 사람은 자국면허고 한 사람은 그 공증인가 궁중인가 받은 외국 면허라. 그라면 누굴 쓰겠냐 이기라. 그리고 호주 운전면허 받는 것도 그리 안 비싸다. 그냥 새로 받자."

"얼만데?"

"$60 정도 하나..."

"존나 비싸네."

"그 정도는 투자해야 일을 구할 꺼 아이가. 답답한 자슥. 일단 교통국으로 가자."

패우릭은 교통국에 들어가 직원에게 이러저러한 정보를 얻었다. 나의 경우, 여권 외 신원확인을 위한 두 가지 이상의 신분증, 계좌증명이라던가 통신사 영수증이라던가 등등이 필요하다.

패우릭은 오늘 하루 종일 드라이버를 자청하며 나를 데리고 통신사와 은행, 우체국 등 칼굴리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알겠나? 운전면허 없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니 같은 경우는 ID카드(주민등록증)도 없다아이가. 맨날 여권만 들고다닐끼가. 매우 매우 죠오온나게 중요한기라. 알겠나?"

"그래... 그렇지... 암...."

그는 운전 내내 면허, TFN, 일자리 등등 아까 강조했던 것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분명 고마워해야 하는 부분인데, 하도 잔소리하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된다.

이러저러한 서류를 준비해 문 닫기 10분 전 간신히 도착한 교통국은 또 다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운전면허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 업무종료시간이 다가와 시험은 못 쳤다. 패우릭은 어이없어했다. 돌아오는 길에 패우릭은 오만 불평 불만은 다 쏟아냈다.

"이기 뭐꼬. 내 오늘 하루종일 뭐 했노! 진전을 하나도 못 봤다 아이가. 허허.. 허허.."

나는 그런 그에게 내심 미안했다.

"패우릭. 진정해. 난 너한테 진짜 고맙다고. 넌 지금... 내 문제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는 거 같아."

"알지 하모. 내도 안다. 그냥 나는 진전을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일단은 도미노 가서 니가 말한 궁중인가 뭔가..."

"공증."

"그래 공증. 그걸로도 운전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어둑어둑해질 쯤 도미노에 도착했다. 패우릭은 매니저와 몇 가지 얘기를 했다. 일단 결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그거 가지고 차별을 주는 것도 아니고. 특히 도미노는 종업원 대부분이 아시아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패우릭은 나중에 스스로 레쥬메 들고 도미노 찾아가 지원하란다.

"알겠제? 들어보니까 시급 $17에 배달 한 건당 $2씩 주니까 시간당 두 개만 배달해도 $21 이라. 광산에 비하면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니가 이틀을 일하면 일주일 밥값 나오고 삼 일을 일하면 방값을 버는 기라. 알긋나!"

정말이지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주생활> Go, Jony - 여섯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