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zac Day
Anzac day. Mon.25.Apr.17. Rainy.
안작데이는 우리나라의 현충일과 비슷한 날인데, 세계대전 등에 참전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오전 열 시가 되기 전까지 호주 전체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열 시가 되면 퍼레이드가 시작되며 활기찬 분위기로 바뀐다. 저녁이 되면 모두 펍에 모여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
플랫메이트들과 경마장으로 향했다. 칼굴리 경마장엔 거의 동네사람들이 다 모였다. 안작데이에 대해 묵념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며, 모든 손님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조용해졌다. 엄숙한 분위기 속 백 파이프가 연주된다.
연주가 끝나자, 칼굴리 방위군과 경찰이 마상행진을 시작했고, 이후 락밴드가 등장해 Chuck Berry 의 <Johnny B. Goode> 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조니! 니 노래다!”
매그와 아만다가 외쳤다. 우리는 일어나 트위스트를 추기 시작했다.
Deep down in Louisiana Close to New Orleans,
뉴올리언즈에 가까운 루이지애나 깊숙한
Way back up in the woods among the evergreens
상록수로 이루어진 숲 속에
There stood a log cabin made of earth and wood.
흙과 나무로만 지어진 오두막이 있었지.
Where lived a country boy named Johnny B. Goode.
Johnny B. Goode이라는 촌놈이 거기 살았는데
Who never ever learned to read or write so well,
그 놈은 읽고 쓰는 것도 못 배웠지.
But he could play a guitar just like a ringing a bell
근데 그 놈은 기타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 쳤어.
Go, Johnny, go, go
Go, Johnny, go, go
Go, Johnny, go, go
Johnny B. Goode.
"Mid Gold Beer 하나 주세요.”
주문하는 나를 보며 스틸은 영 탐탁지 않다는 듯 하다.
“조니. 남자라면 파인트 정도는 마셔줘야 되는 거야.”
경마장 내부 펍은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매그와 아만다는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외국의 펍 문화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자. 여기서 펍은 만남의 장소 같은 곳인데, 같이도 오지만 혼자 더 많이 오며,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어도 전혀 실례가 안 된다. 그렇게 하루 술잔 기울인 사람들이 그날 부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어색하게 바를 서성거렸다. 스틸이 그런 나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조니. 편하게 있어! 내 집처럼!”
나는 용기 내어 근처에 있는 인도인 둘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 나는 조니라고 해.”
“반가워. 나는 라훌, 이쪽은 산제이야.”
“난 한국에서 왔어. 어느 나라에서 왔니?”
“우린 인도에서 왔어. 난 7년, 산제이는 9년을 칼굴리에서 살았지.”
일을 구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조언을 구했다. 이 나라는 어떤 일이든 경험이 매우 중요하단다. 관련직종에 신입으로 입사하기 힘들면 다른 분야에서라도 경력을 쌓으란다. 접시닦이라도 좋으니 일단 일을 시작하고 그만둘 때 추천서를 꼭 받아두란다.
그 다음은 중년 독일인 광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에게도 역시 조언을 구했다. 그가 강조한 건, 열정보다는 안전. 제 아무리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 있어도 안전수칙을 무시하면 바로 해고당한단다.
그렇게 이리 저리 모르는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정보를 얻었다. 점차 긴장은 풀리고, 난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조니. 오늘 니 방에는 둘이 들어가야 돼. 알겠어? 아무 여자나 맘에 들면 말 걸라고.”
“스틸. 그게 제일 어려워. 한국에 있을 때야 내 마음만 먹으면 다 됐었지만.”
“니 맘대로 됐다고? 근디 와 여기서는 못혀?”
스틸과 가츠가 옆에서 바람을 한껏 넣는다.
“내 언어가 지금 완벽하지 않잔아. 난 돈도 없다고.”
스틸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조니. 언어, 돈 같은 건 개나 줘. 너 충분해!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 그나저나 니 맥주 어디 갔냐? 얼른 가서 가지고 와!”
직장도 못 구한 주인의 불쌍한 지갑은 바 안에서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까진 워킹이 아니라 홀리데이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