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공부법
한국인들에게 잘 안 알려진 칼굴리에도 한인 쉐어하우스는 존재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두 채 정도다. 하지만 난 일부러 현지인 친구들과 살기로 했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1. 난 살면서 잘생겼다는 말보다 버릇없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나이 차이 조금 난다고 호주 와서까지 위아래 따지긴 싫다.
2. 현지인 친구들과 살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한다. 최대한 내 주위 환경을 영어에 노출시키고 싶다.
한국보다 유흥과 놀이문화, 인터넷마저도 덜 발달된 호주, 그 중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소도시 칼굴리 시민들의 취미는 기껏해야 퇴근 후 바(Bar)로 가서 맥주를 마시거나 집에서 FOXTEL 영화를 보는 것 정도였는데 난 남는 시간에 영어공부를 하기로 했다. 집과 직장 두 군데서 하루 종일 영어만 쓰니 듣기와 말하기보단 문법과 읽기, 쓰기에 중점을 두었다.
문법(Grammar)은 Grammar in use 하루 한 유닛씩 공부하였다. 절대 한 유닛 이상 나가지 않았는데, 그 이상 나가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유닛을 공부한 다음 날에는 복습한다는 의미로 어제 배운 문법에 관한 문장을 만들어 직장이나 집에서 써보곤 했다.
주방에 출근하자 닉키가 나에게 물었다.
“조니! 오늘 뭐하며 지냈니? (What did you do today?)
“아무것도 안 했어. (Nothing. I didn’t do anything.)”
유닛 84에 의하면, nothing은 부정적인 동사와 함께 쓰일 수 없다. 즉, I didn’t do nothing 은 잘못된 표현이며, not 은 anything/anybody 와 결합하여 nothing/nobody 의 의미를 지닌다.
읽기(Reading)를 위해 도서관을 방문하여 회원증을 만들었다.
“미즈, 책을 추천 받을 수 있을까요?”
“어떤 분야 말이죠?”
“제 영어 실력은 Intermediate 정도입니다. 지나치게 어렵진 않으면서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들은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안내해 드릴께요.”
그녀가 날 데려간 곳은 <Young Adult Room> 이었다.
“여긴 주로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들을 보관해요. 중학생 정도라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지요.”
방 안에는 마블 만화책과 판타지 소설, 일반 소설과 가벼운 느낌의 생활서 등이 있었다. 이 이상 어려워지면 영어에 흥미를 잃을지도 모르니 이 정도 수준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책은 한 번 빌리면 3주 동안 대출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쓰기(Writing). 보통 영어 일기를 쓰라곤 하는데 난 솔직히 별로다. 학창 시절에 일기를 써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국어로 쓰는데도 매일 똑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탓에 별로 쓸 게 없다. 그래서 난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첫째로, 나의 페이스북에 공지를 띄웠다.
앞으로 모든 포스트를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로 쓰겠습니다.
문법이 개판이고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넘쳐날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정이 필요한 문장 발견 시, 저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댓글 부탁 드립니다.
이 이후엔 한동안 어려웠는데, 뭘 쓰고 싶어도 저 약속 때문에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바꾼다고 한참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일기 대신 내가 좋아하는 걸 영어로 썼다. 하루 있었던 특별한 일, 특정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나의 견해, 요리법 등. 쓰고 나면 지나가는 플랫메이트들에게 교정을 부탁했다.
“딘, 이것 좀 잠깐 봐 줄 수 있어?”
“토니, 나 좀 잠깐 도와줄래?”
“후키, 안 바쁘지? 내가 찜닭 만드는 걸 영어로 써봤는데 말이야…….”
그러면 플랫메이트들도 흔쾌히 도와주곤 했다.
“이 문장에선 boil(끓이다) 가 아니라 simmer (끓이다) 를 써야 해.”
“엥? 둘 다 같은 뜻 아니야?”
“Boil은 강불로 계속 끓여대는 걸 뜻해. 만약 니가 한 시간 동안 Boil 한다면 너의 스튜는 새까맣게 타서 냄비에 눌러붙을꺼야. Simmer 는 약하게 뭉근히 끓이는 느낌이지.”
그렇게 교정을 받고 나면 페이스북에 업로드 해서 페친들에게 댓글로 재교정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영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난 한국에서 23년간 살았고 당연히 완벽하지 않은 영어를 구사할 수 밖에 없다. 내 페이스북을 보는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다섯 살배기 어린 아이조차도 내 스승이 될 수 있다. 모르면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그리고 몇 개월, 몇 년 후는 지금보다 훨씬 잘 할 거라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