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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y Mar 07. 2018

<호주생활> Go, Jony - 서른여덟번째

중고차 구매기 1

칼굴리에 온 지도 어느덧 3개월이 넘었다. 이제 슬슬 세컨비자에 대해 고민해 볼 시기인데, 칼굴리에서 세컨을 따려면 광산에 들어가는 것 말곤 세컨 가능 잡을 찾기 힘들다. 지역이동도 해야 하고, 농장이든 공장이든 어느 곳을 가더라도 “차가 필수다” 라는 얘기는 끊임없이 들었다. 사실 지리산 근처 내 고향만 하더라도 차를 살 이유가 전혀 없을 정도로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데, 호주의 대중교통은 비싼 데다가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들은 끔찍할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며, 그건 칼굴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돈도 어느 정도 모았으므로,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지역이동도 두세 달 남았는데 벌써 차를 사는 이유는 운전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차를 산 후 지역이동 전까지 친구들로부터 운전을 익힐 생각이었다. 생각한 금액은 5천 달러 안팎. 보통 워홀러들은 3천 달러 선에서 차를 사는데 세상에 싸고 좋은 차는 없다. 차를 파는 딜러들도 바보들은 아니기에 가격이 올라갈수록 차의 성능은 당연하게 올라간다. 호주는 차량 직거래가 굉장히 활발한데,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 개인으로부터 샀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보상을 받을 수 없으므로 무상보증기간(워런티)을 제공하는 딜러에게서 구매하기로 결정, 하우스키핑 퇴근 후 칼굴리 내 딜러샵들을 방문했다. 인구 2만밖에 안 되는 동네주제에 중고차 매장만 네다섯 개 있었다. 

처음 방문한 매장은 홀덴, 토요타, 현대 등의 대리점이 뒤섞인 매장. 신차와 중고차를 함께 팔고 있었다. 

“헬로우 메이트! 차 사러 왔소?” 

“그냥 좀 보려고요.” 

“얼마 정도 생각하시오?” 

“그냥 출퇴근용으로 탈 건데, 저렴한 건 어느 정도부터 시작합니까?” 

“우리는 6천 정도부터 시작하죠. 한 번 보여 드릴까요? 이 차는 기아차 Rio 인데, 07년 식이고 가격은 세일해서 5,990 달러요. 5만 키로밖에 안 달렸소. 시승 한 번 해보시겠어요?” 

“아뇨, 오늘은 외관만 보겠습니다. 호주 차선이 반대라 좀 불안하군요.” 

난 당연히 살 생각이 없다. 다만 오늘 딜러를 통해 “연습”을 해볼 생각이다. 어제 구글을 뒤져 “좋은 중고차 고르는 법”을 찾아보았다. 딜러에게 호구로 보일수록 호구에 걸맞은 가격에 호구스러운 차량을 살 수밖에 없다. 딜러샵에 있는 차들 치고 외관 안 좋고 승차감이 영 좋지 않은 차는 흔치 않으므로 남들이 잘 안 보지만 중요한 부분들 위주로 점검을 시작했다. 

우선 머플러에 손가락을 넣어 쓱 긁어보았다. 엔진관리를 잘 한 차량일수록 묻어 나오는 게 없다. 

“엔진 상태 좋죠?” 

딜러가 나에게 물었다. 난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중고차 딜러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일즈맨들을 상대할 때 기본 원칙은 구매가 결정되기 전까지 “절대 긍정적인 단어를 말하지 말라” 이다. 

그 다음은 유리창. 차량 4개의 유리창들을 자세히 보면 유리창 “년식”이 나오는데, 하나가 다를 경우 유리를 갈았다는 뜻이므로 그 차는 사고차량이다. 

“유리를 한 번 갈았네요.” 

“아, 하하하.” 

딜러는 그저 웃었다. 

“차 내부에 잠깐 앉아봐도 될까요?” 

“물론요.” 

난 앉아서 핸드브레이크를 당겼다. 꺾이는 소리가 다섯 번에서 여섯 번 사이가 가장 좋다. 핸드브레이크는 여섯 번에서 멈췄다. 

“보닛 잠깐 봐도 될까요?” 

“그럼요.” 

보닛내부를 점검할 때는 괜히 알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살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면 호구 잡히기 딱 좋다. 보닛 양쪽은 볼트로 고정되어 있는데, 차량이 처음 출고될 때 볼트는 차량 연결부와 페인트로 덧칠해서 나온다. 만약 볼트의 색깔이 다르거나 페인트가 까져 있을 때는 사고차량이라는 증거다. 이 차량은 볼트의 색깔이 달랐다. 

“볼트 색깔이 다르네요. 큰 사고 한 번 난 것 같은데요.” 

“아하하. 손님에겐 못 당하겠군요. 사고가 나서 매각된 차량인데, 큰 사고는 아니었고, 문제가 있는 부품은 우리 쪽에서 갈았어요. 그래서 싸게 나온 겁니다.” 

“흐음.” 

난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마지막으로 엔진오일 뚜껑 점검. 엔진오일 뚜껑이 깔끔할수록 엔진 관리를 잘 한 차다. 상태가 심각한 차량일수록 뚜껑에 기름이 들러붙어있고 아주 맛있는 떡볶이 냄새가 난다. 이 차는 뚜껑이 조금 변색되었을 뿐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오지요.” 

“영 마음에 안 드시오?” 

“글쎄요. 일단은 사고차량이고……. 엔진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가격을 좀 깎아 주면 살 의향이 있습니다.” 

“얼마 정도 생각합니까?” 

“5천이요.” 

“흐음……. 그건 힘들겠는데요.”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 난 침묵을 지켰다. 침묵은 이 상황에서 어색함을 유발하고 긴장감을 흐르게 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생각을 재고하게 만든다. 

“일단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보스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딜러는 2분 정도 후에 돌아왔다. 

“일단 이 차는 세일가기 때문에 보통은 할인을 안 해드려요. 그래도 손님이라면 5,700까지는 해 드릴 수 있소.” 

당연히 거짓말이다. 한 달, 삼 개월 후에 와도 이 가격에 팔고 있을 게 뻔하다. 

“5천 7백……. 일단 생각해보고 다시 올게요.” 

“그래요.” 

나는 다른 딜러샵을 나섰다. 딜러는 나를 붙잡지 않았는데 그건 5천 7백 이하로 떨어지면 수지타산이 안 맞다는 증거다. 보통 5,990 이나 7,990 같이 끝자리를 9로 맞추는 차량은 네고가 힘들기 마련인데, 거기에서 딜러가 300을 양보했다는 건 다른 중고차 매장 방문 시 세일차량에서 300불 정도는 흔쾌히 할인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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