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는 일

내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너를 보내는 일

by 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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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 해의 1/6이 지났다. 쓸쓸하고 어두웠던 겨울이 지나고, 풀이 죽었던 죽었던 식물들이 다시금 고개를 드는 계절이 돌아왔다. 그 사이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내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했던 녀석이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났다.


만 22년 중14년을 꼬박 함께한 녀석이라 집안 곳곳에 흔적이 깊게 남아있었다. 몇 년 새 녀석이 지병을 앓게 되면서, 우리 집엔 성가신 규칙들이 몇 가지 더 생겨났다. 현관문에는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 달라는 메모가 붙었고, 예정에 없던 손님이 오는 날엔 녀석이 놀랠까 발이 불이 나게 뛰어 다녔다. 뿐만 아니라, 오전 8시, 오후 8시엔 각종 영양제와 눈, 관절에 좋은 오메가3, 매주 병원에서 받아오는 약을 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은 예고 없이, 더 자주 병원에 갔다. 하루 2번 주던 약이 하루 3번이 되었다. 오전 9시 ,오후 4시 ,밤 12시마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녀석의 흥분을 막기 위해 몇 번이고 목소리를 줄였고 청소기를 돌리거나 음악을 틀 땐, 녀석이 자는 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들은 끊임없이 배송되었으며, 원 없이 먹게 해줬다. 추운 날엔, 우리 집에서 가장 두꺼운 담요로 녀석을 둘둘 싼 다음 품에 안고 꽉 끌어안은 채로 바깥 공기를 맞게 해줬다. 시간마다 호흡수와 I/O를 체크하는 건 기본이었다.


어느 때처럼, 예고 없이, 이 녀석은 병원에 가게 되었다. 폐에 조금 물이 찼다고 했다. 처방해준 약을 먹으니, 바로 다음 날 상태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런 일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번에도 말끔히 나을 꺼라 생각하며, 걱정 없이 외식을 하고 왔고 녀석은 그 사이 사고를 쳤다. 녀석은 작은 병원에 다시 갇히게 되었고, 그 다음엔 더 큰 병원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랑이를 다시 봤을 때, 랑이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녀석에게 몇 번의 미안한 일들이 있었고, 의사는 우리를 불렀다. 랑이를 마지막으로 마주했을 땐, 녀석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우리 집은 회색이 되었다. 큰 집이 텅텅 비었다. 하루, 이틀, 사흘. 머리가 깨질 때까지 눈물을 토했다. 랑이가 떠난 바로 다음 날, 이상기후마냥 날이 따듯해졌다. 하루만 더 있다가 갔으면 좋았으려만, 랑이는 이미 설레는 맘으로 여행길에 오른 모양이다. 날이 너무 좋아서, 먼저 출발한 모양이다. 따듯하게 떠났으면 됐다.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고, 꽃 내음 맡으면서 천천히 가렴. 무지개의 끝에 다달으면 조금 쉬다가 안부 전해주렴.


가다가 도저히 못 가겠는 날엔 도로 돌아와도 좋다. 모른 척 예전처럼 같이 살 수 있게 아직 다 그대로 남겨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