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우거진 5월에 산악회 산행계획이 나왔다. 속리산이다. 속리산은 그 위치가 거의 한반도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속리산 주변은 법주사를 비롯하여 자연경관이 훌륭하여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법주사에는 유명 문화재가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고, 최근에는 속리산 외곽에 테마파크를 개발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산악회에서 예고한 등산코스는 법주사를 지나 세심정을 지나 문장대로 오르는 코스를 택하였다. 세심정 까지 오르는 길은 자동차도 주행할 정도로 평탄하게 잘 닦아 놓았다.
이 옆길에 세조길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조선 7대 국왕 세조가 이 길을 자주 애용하였다고 한다. 세조임금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뒤로하고, 우리는 정상을 향하여 나아갔다. 세심정에서 문장대 까지는 계속 심한 오르막길이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야만 했다.
1058m 문장대 정상에 오르면 멋지게 생긴 바위들이 줄지어 서서 등산객을 맞이한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이런 풍광은 등산으로 인한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하다.
점심을 먹고 약간의 휴식을 하면서 기력 재충전을 하였다. 이제부터 하산하여야 하는데, 휴식은 대단히 중요한 절차이다. 항상 하산 중에 사고가 나는 이유는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서 실수하기 때문이다. 회원들과 나눈 정상에서의 커피 한잔은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 모은다.
하산 길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게 되었을 때 세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실 세조는 임금의 자리를 조카로부터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형인 문종이 병으로 죽고, 아들 단종이 즉위하자, 1453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 권신 등을 주살하고 정권을 잡았다. 1455년에 그의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왕이 되기 전에는 수양대군으로 불리며 왕에 대한 야심은 전혀 없는 것처럼 궐 밖에서만 서성거렸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한명회, 신숙주, 정인지 등과 인맥을 형성해 나아가며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고 한다.
단종의 즉위는 10세이고, 지금의 영월군 청룡포에서 사약을 받은 나이가 16세였다고 한다. 예전에 영월을 지나다가 청령포를 우연히 방문하였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 의미도 모르고 지나쳤지만은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남자나이 14세라면 이제 겨우 어린아이 테를 벗어나는 나이인데, 그런 단종에게 왕권에 대한 무슨 욕심이 있었겠는가.
단종이 귀양을 간 청령포는 강원도 영월에서도 첩첩산중이다. 지금 자동차도로를 타고 가도 한참을 가는 장소이다. 예전에는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꿈도 못 꿀 장소이다. 그런 곳으로 귀양 보냈으면 되었지, 그런 소년을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종의 죽음에 대한 일화가 시중에 많이 떠도는 것은, 백성들도 모두 그의 죽음을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해서 일 것이다. 궐에서 나온 단종의 유배 길에는 곳곳에서 백성들이 몰려나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사실 단종은 조선시대의 정통성을 물려받은 유일한 적장자 출신으로 조선의 적장자 정통성은 단종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 후 역사적인 사실로는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조정의 충신들 (사육신)도 모두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세조가 아무리 치세를 잘한다 하여도 정통성을 무너뜨린 그에게는 항상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야기가 돌아다닐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조의 꿈에 밤마다 단종의 모친이 나타나 세조를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뒷골이 땅긴 세조가 속리산 골짜기를 찾아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곳이 세조가 자주 찾았던 길 세조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