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15분, 알람 소리가 울리면 눈을 뜬다. 알람은 최대한 조용한 소리로 설정해두었다. 이 소리에 남편과 아이가 함께 깨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용히 안방을 나와 서둘러 샤워를 한다. 짧게 자른 머리가 참 편하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샤워는 7분을 넘지 않는다.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른 뒤, 어제 미리 꺼내둔 옷을 빠르게 입는다. 독일어 교재와 안경, A5 사이즈 플래너를 챙긴다.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6시 50분쯤에는 집을 나서야 운전 시간을 한 시간 이내로 만들 수 있다. 차에서 먹을 간단한 아침거리를 챙겨 문을 닫는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그날의 최저 기온을 가장 먼저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영하 14도. 차에 올라 차가운 핸들을 잡고 운전을 시작한다. 남산 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독일어 섀도잉을 하거나, 팟캐스트를 듣는 시간으로 쓴다. 물리적으로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요즘, 분당에서 서울까지 운전하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영어를 만나는 시간이다.
한남대교에 도착할 즈음이면 하늘이 조금씩 밝아진다. 서늘한 파란색 위에 주황빛이 겹쳐진 풍경이 잠깐 스친다. 도서관 개관 시간에 맞춰 8시에 도착한다. 1층 자리에 앉아 어제 들었던 독일어 수업을 복습하고 숙제를 한다. 시간이 남으면 예습도 한다. 굳이 A5 크기의 플래너를 가지고 다닌다. 여기에 서툰 독일어로, 매 시간 내가 한 일들을 적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기록하는 감각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는 중요하다.
8시 45분쯤 도서관을 나와 길을 건너 주한독일문화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독일어 수업을 듣고 있다. 독일어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최근의 일은 아니다. 3년 전쯤부터 관심은 이어지고 있었다. 좋아하던 맥주는 독일산이었고, 여행했던 유럽 국가 중 가장 좋았던 곳도 독일이었다. 무엇보다 철학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는 독일어를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12월, 조금은 충동적으로 1월 수업을 등록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 30분까지 이어지는 수업이었다. 시간은 지금의 나에게 더없이 적절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분당으로 돌아오면 아이가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남편이 아이의 등원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았다.
사실 하루 네 시간 반 안에서 아내와 엄마로서의 의무—청소, 요리, 빨래—를 해내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공부를 이어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로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앞당겨 쓰기로 했다.
수업은 100% 독일어로 진행된다. 따라가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고, 계속 치르는 시험을 통과하려면 복습은 선택이 아니다. 수업을 마치고 바로 분당으로 돌아오면 1시 30분쯤이 된다. 일주일에 두 번은 발레나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그 외의 날에는 집 앞 카페에서 독일어를 복습하거나 철학책을 읽는다.
2시 30분, 아이가 하원하고 나면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9시쯤 아이를 재운 뒤에야 다시 책을 펼치거나, 함께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 시간을 쓸 수 있는 폭이 좁아질수록, 오히려 최선을 다하게 된다.
어쩌다 생겨난 이 시간들은 너무 귀하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하의 날씨에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나는 분명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루를 길게 사는 삶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앞당겨서라도 나에게 남겨둔 네 시간 반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하루는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나는 시간을 살지 못하고,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