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그때

by 한주연

8시 30분쯤, 눈을 뜬다. 정신없이 아이 등원 준비를 한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일에는 이제 익숙해졌지만, 정해진 등원 시간에 맞춰 이 모든 걸 해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더군다나 지각을 해도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시간에 맞춰 어딘가로 출근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루는 더 쉽게 늘어진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아무도 없는 집에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 공부를 하긴 해야 하는데, 정해진 주제를 밀도 있게 붙잡기가 어렵다. 도서관에 가려고 하면 챙겨야 할 책이 너무 많아진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선순위를 적어본다. 그 목록에서 내 공부는 늘 최우선이 아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안일이다. 눈에 들어온 이상,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을 치우다 보면 구석에 머리카락과 먼지가 보인다. 세탁기에 옷을 넣으려다 보니 이미 꽉 차 있다. 이제 세탁기를 돌려야 할 때다. 건조기를 열어보면 옷이 쌓여 있다. 세탁을 하려면 건조기의 옷을 꺼내 개켜야 한다. 옷을 개키려면 바닥을 먼저 치워야 하고, 바닥을 치우려면 널브러진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단순노동이라고 하지만 집안일도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피곤함이 몰려오면,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끝내기보다는 늘어진 상태로 꾸역꾸역 하게 된다. 기분 전환을 위해 노래를 틀어본다. 아무 노래나 틀어도 될 것을, 이 시간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싶어 한참을 고른다.


청소를 하다 보면 잊고 있던 할 일들이 계속 떠오른다. 어제 사둔 고기 재료를 손질해 장조림을 만들어야 하고, 지금쯤 핏물을 빼두어야 저녁에 국을 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는 빨래와 청소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이제는 그 사이에 요리 타이밍까지 끼어든다.


그러다 문득 유치원에서 이번 주 생일 파티가 있다는 문자가 떠오른다. 여자아이 한 명, 남자아이 한 명. 얼른 스마트폰을 켠다. 다섯 살 남자아이는 뭘 좋아할까. 여자아이는 또 다를까. 선물 크기가 차이 나면 안 되고, 너무 저렴해 보여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가격이어도 안 된다. 장난감만 좋아할 나이는 지난 것 같고, 그렇다고 초등학생용을 고르기엔 아직 이르다. 차라리 현미경 같은 교구가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1인당 최대 한 개만 구매할 수 있다. 다시 고민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30분이다. 아이를 보내고 2시간 반이 지났지만 집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선물도 고르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진다. 선물은 이따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하던 청소에 다시 집중한다.


어젯밤 플래너에 적어두었던 할 일 중 하나는 노엘 캐럴의 비평철학 책을 읽는 것이었다. 오늘 그 책을 펼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바닥에 청소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의 그릇을 정리한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개키고, 막 끝난 세탁물을 다시 건조기에 넣는다. 빨래를 다 개킨 것 같지만, 또 다른 빨래 더미가 생겨난다. 끝이 없다. 화장실을 보니 구석에 물때가 생기려 한다. 청소를 시작할까 말까 고민하다 시계를 본다. 1시가 넘었다. 이제는 점심을 먹고 씻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오늘 샤워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시간을 쓰고 있었다기보다는, 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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