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붙잡는 공부
분당에서 출발해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으려면 적어도 7시 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아이 등원 전에 혼자 집을 나선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밀착된 엄마의 몸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귀신같이 눈을 뜨던 아이는, 이제 매일 아침 엄마가 공부하러 나가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덕분에 내가 옆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깨지 않는다.
6시 50분쯤 집을 나서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 느낌이 좋다. 한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이다. 조금 일찍 나온 날에는 집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사 간다. 아직 어둑한 시간인데도 카페 안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다. 유난히 활기차게 인사해 주는 직원들을 보며, 그들에게도 지금 이 시간이 하루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차 안에서는 독일어 팟캐스트를 듣는다. 속도를 줄이거나 일부러 느리게 말하는 채널을 골라 틀어둔다. 처음에는 그저 수업에 익숙해지기 위해 배경음처럼 틀어놓았을 뿐인데, 한 달쯤 지나자 점점 들리는 표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은 따라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루 중 가장 머리가 맑은 시간에 운전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깝기도 했지만, 이 시간만큼은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공부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7시 전에 출발하는 이유는 조금 더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다. 이 시간에 운전을 시작하면 전체 이동 시간을 한 시간 안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수업 시작 한 시간 전인 8시에 남산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다. 동절기 도서관 개관 시간은 8시다. 문을 열기 전, 입구에 줄을 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늘 귀하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일찍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나도 조용히 섞인다.
2층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전날 배웠던 내용을 다시 훑어본다. 틀렸던 문제를 체크하고, 명사의 성을 외운다. 그리고 A5 플래너를 꺼내 서툰 독일어로 오늘의 목표를 적는다. 대단한 계획은 아니다. 다만 내 일상을 다른 언어로 적어 내려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감각이 든다.
수업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방을 챙겨 괴테인스티튜트로 향한다. 1시간 30분 수업, 30분 휴식, 다시 1시간 30분 수업.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만 하는 방식은 아니다. 같은 조에 앉은 사람들과 작문을 하고, 그날 배운 표현으로 게임을 하듯 대화를 나눈다. 나이도, 처지도 모두 다르지만 독일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라 묘한 친근감이 생긴다.
3시간 30분의 수업이 끝나면 이상하게도 더 잘하고 싶고,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진다. 몸은 피곤한데 발걸음은 가볍다. 오늘도 새로운 것을 배웠고, 어제보다 조금 더 넓어진 언어의 지평 위에 서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마로서의 하루’가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하루’를 살았다는 감각이 나를 지탱해 준다.
1월 한 달, 정말 심하게 아팠던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에 빠지지 않았다. 궂은 날씨도, 피곤한 몸도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 위에 몸을 올려두기로 했고, 그 선택 앞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내가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고른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