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 부르던 불안을 놓아 보내며
다시, 나는 자유가 되었다.
'역마살'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나는 또 이 불안함을 운명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 마음 속 동요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모두
운명적이라는 허울 속에 가두고
이제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 해방감을 택했다.
참, 고루하다.
반복되는 일상과
사소한 말과 몸짓 속에서
스스로 내는 생채기들은
언제나 죄책감의 얼굴로 돌아온다.
이상하게 보는 눈빛.
이해받지 못하는 침묵.
수년, 수십년을
익숙하다고 자위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른척 외면했던 것 뿐이었다.
나는 예민하다.
눈치는 없어도
파동은 느껴진다.
잔인할 정도로.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
숨소리의 결,
말투 하나,
조사 하나까지도
다 느껴진다.
어떻게 나를 보고 있는지,
얼마나 가볍고 저열한지.
그저 내 착각이라 여겼다.
망상이라며 덮었다.
그러나 결국
기어이 확인한 그 마음은
돌고 돌아
정답이라는 이름의 상처로 되돌아왔다.
너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흐린 말 속에서도 귀를 기울인다.
비웃음과
모순과
거짓을 걷어낸 끝에
겨우 남는 너의 진심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상처냈다.
그깟 너같은 인간 때문에
나는 오늘도 다쳤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지.
정말, 그러지 않아야지.
다짐 속에
나는
조심스레
새로운 미래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