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빠른 게 미덕이라고요?

말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 침묵의 압력

by 백서

말하지 않아도 알라는 사회, 언제까지?


“눈치 좀 있어라.”

한국 사회에서 정말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왜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할까?
왜 그걸 알아채지 못하면 “예의가 없다”, “센스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


눈치는 때때로 초능력처럼 여겨진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감정, 의도, 위계를 정확히 읽어내는 사람은
“눈치 빠르다”, “센스 있다”고 칭찬받는다.
반면, 그런 걸 놓치는 사람은 쉽게 “무례하다”, “둔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 ‘눈치’라는 감각은 단순한 센스가 아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자기검열과 상호 감시, 그리고 억압의 메커니즘이다.




눈치는 어떻게 ‘미덕’이 되었는가


한국 사회는 긴 시간 동안 말보다 분위기, 감정보다 위계,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해왔다. 이 흐름의 근간에는 유교적 질서, 식민지 시기의 억압 체제, 그리고 압축 성장 시대의 위계적 산업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제강점기엔 말을 아끼고 표정을 감추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다.

군부 시절엔 침묵과 복종이 ‘충성’의 미덕이 되었고,

IMF 이후엔 누구도 조직을 지켜주지 않게 되며,

실수를 피하기 위한 눈치 경쟁이 격화됐다.


그렇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감정지능일까, 아니면 감정 억제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눈치는 배려다.”
“눈치 없는 사람이 문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진짜 감정지능은 묻고, 듣고, 말하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을 직접 물어보고, 서로 확인하며 풀어나가는 것.

반면 눈치는 확인하지 않고 추측하고, 말하지 않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건 배려가 아니라 불안에 가까운 행동이다.


“이 말을 했다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이 분위기에서 저건 안 되는 행동 아닐까?”
“이걸 해석 못 하면 내가 센스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 우리는 소통이 아닌 검열의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원래 눈치를 안 보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원래 하고 싶은 말은 직접 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눈치껏 알아서 행동하라’는 문화가 늘 불편했다.
그건 너무 많은 걸 말없이 요구하는 사회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고,

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읽어야 하고,

못 알아들으면 무례한 사람이 된다.


말을 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뭔가를 알아채주길 바라는 태도.

그게 나는 납득되지 않았다.
왜 말을 안 하면서 원하는 건 많은 걸까?
왜 표현하지 않은 걸 몰랐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까?


눈치는 어느 순간, 상대에게 기대하는 감정 노동의 형태가 되었다.
서로를 향한 공감이나 배려가 아니라,
불확실한 규범을 강요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눈치 문화는 편함이 아니라, 무언의 강압이다


눈치는 갈등을 줄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갈등을 미루고 묻어두는 방식이다.

질문을 꺼리고, 오해를 두려워하며,
직접적인 표현 대신 정서적 기류만을 읽게 만든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묻지 않고 감정만 눌러두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회사 회의에서 침묵하는 직원들,
가족 모임에서 공통의 정서를 해치지 않기 위해 말을 삼키는 사람들,
친구 사이에서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결국 말하지 않고 넘기는 상황들.


눈치는 사회를 조용히 유지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조용함은 표현의 부재, 감정의 정지, 관계의 단절이 되기도 한다.




눈치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눈치를 강요하는 게 문제다


눈치 없는 사람이 무례하다는 말은
실은 말하지 않고도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이자 회피다.


그 기대는 표현의 다양성을 틀로 가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는 전제는,
‘내 방식만이 맞다’는 강요가 되기 쉽다.


그렇게 우리는 말 잘하는 사람보다 눈치 빠른 사람이 살아남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직한 말보다 묵인이, 표현보다 암묵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나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짜 소통은 추측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되고,
진짜 배려는 침묵이 아니라 말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는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눈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 예의 없는 일이 아닌,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사회.


그런 사회라면,
서로를 탓하기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언어가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눈치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들어줄 수 있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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