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읽고

생선 눈을 마주 본 후, 나는 인간임을 의심했다

by 백서

생선을 굽다 말고, 나는 눈을 피했다.

두 마리 붙은 채 냉동되었던 생선 중 하나를 해동해서 굽고 있었는데, 나머지 한 마리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얗게 부풀어오른 눈. 비어 있는데 살아 있는 듯한 그 시선.

나는 고기를 잘 먹는 사람이다. 고기를 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기에는 얼굴이 없다.

포장되고 절단된 그것은, 나에게 누군가의 살이 아닌 “재료”로 다가온다.


그런데 생선은 다르다.

머리도, 꼬리도, 눈도 있다.

나는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존재를 굽고 있다는 사실과, 그 잔혹함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아마 이 감정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난 이후부터 더 예민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점점 더 아무것도 먹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는 식물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하며, 말 그대로 투명한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그녀는,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살육과 섭취의 사슬을 거부한다.


살아 있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먹어야만 하는 그 구조 자체에, 침묵으로 반항한다.

그건 단순히 채식주의를 넘어선, 존재론적 저항이다.


나는 영혜가 완전히 이해되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이후로 고기를 살 때마다 생각하게 되었다.




이걸 누가 죽였을까.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걸까.

그걸 모르면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누군가의 생명을 먹고 있다.

그게 생선이든, 닭이든, 돼지든, 혹은 보이지 않는 다른 존재들이든.


그 모순을 인식하고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걸 거부하며 존재 자체를 희미하게 만드는 영혜는 오히려 더 인간적인 존재는 아니었을까?


그 날, 나는 생선 한 마리의 눈을 보며 그 모든 질문들을 짧은 순간에 느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눈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당신은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을 때, 무엇을 떠올렸는가?

당신의 고기에는 얼굴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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