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앞에 소 심장이 있을 때

대학원생 실험 준비

by 치킨무

박사생으로 삼 년을 지내며 힘줄이니 연구용 돼지 피부 같은 것들을 많이 쓰긴 하지만, 모두 가공되어서 쓰기 좋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나에게 오지 내가 직접 돼지 껍질을 벗기거나 힘줄을 분리해 내거나 이럴일은 없었다. 없는 게 당연하다. 나는 화학 공대생이지 수의대나 의대생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쓴 심장 조직은 달랐다. 사실 이것도 다른 연구실의 학부 인턴인 마리아가 준비해줘서, 이것 또한 가공품을 사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리아의 졸업이 다가옴에 따라 인수인계를 받으러 갔는데, 연구실에 들어서자 책상에 올려진 거대한 비닐봉지가 보였고 거기서는 아주 구리구리한 철 냄새가 났었다.




(!! 심장 사진 주의!!)




KakaoTalk_Photo_2022-03-12-16-33-00.jpeg 해체 전 심장. 가장 덜 징그러운 사진으로 골라봤다



놀란 내 등 뒤에서 마리아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가 쓰던 심장, 동네 정육점에서 예약 주문해서 받은 거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쓰던 잘 가공된 샘플은, 마리아와 다른 인턴들이 정육점에서 심장을 통째로 사 와서 실험실에서 해부하고 닦고 잘라내 얻어진 샘플이라는 이야기다. 다른 말로, 마리아가 졸업하고 나면, 이젠 내가 그 심장을 사 와서 비닐을 깔고 해부하고 다듬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직의 특징 때문인지 뭔지 마리아가 저장을 위해 냉동 후 해동도 해봤는데, 썩 상태가 좋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즉, 나는 매 실험하다 이 짓을 반복해야 된다는 거지. 오 마이 갓...


거기다가 우리는 심장 안 쪽으로 들어가는 두꺼운 혈관 부위 (aortic arch)를 쓰기 때문에 심장의 많은 부분은 쓰지 못하고 버려야 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때론 실험할 샘플이 많을 땐 심장 두 개를 해부한다고 했다. 이날도 우리에게 할당된 양은 심장 두 개였다. 마리아가 오월에 졸업하고 나면, 혼자서 외롭게 심장 두 개를 해부하고 있을 내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나와버리는 와중에 그러면 남은 심장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심장은 정육점에서 산거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food grade란 뜻이다. 혹시 마리아가 남은 부위를 먹어 봤을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당연히' 먹어봤다고 했다. 올리브유 조금 두르고 후추랑 소금 쳐서 먹어봤다고. 아주 질기고 철 맛이 났다고 했다. 중국식으로 향신료 많이 넣고 마라 양념으로 볶아서 요리하면 조금 곱창 같을까? 마리아와 나는 진작에 남은 심장 조직으로 디너파티를 열지 않았던 것을 조금 후회했다.


일 년 간 소 심장과 싸우며 나의 실험을 도와주고 테스팅 셋업 설계를 도와주었던 대학생 인턴들 마리아와 마틴. 둘 다 이번 연도에 졸업을 하고 캘리포니아 전기차 회사에 취업을 한다고 한다. 뭔가 의아스럽지만, 둘은 원래 기계공학이었다. 마리아가 인터뷰 도중에 이 소 심장을 보여주며, 이 조직을 사용하는 셋업 설계에 대해 발표했다고 한다. 그때 봤던 인터뷰어들의 황당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고. 둘 다 대학생 답지 않게 너무 열심히 도와줘서 졸업 후 일이 잘 풀리는 게 내 일 같이 기쁘다. 이런 바이오 메케닉/소재 쪽에 남지 않는 게 아쉽지만, 전기차는 너무 좋은 취업시장이기에 이 분야는 특이한 소 심장 맛을 알게 해 준 기회 정도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 둘이 떠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실험실에 남아 혈관 샘플을 준비하고 계획된 실험을 이어가고 결과를 분석하고 때때로 마리아가 가던 정육점에 가서 심장 프리오더를 넣겠지. 이번에는 심장을 보고 놀랐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면 곧 늘 하는 일상이 될 것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기 전에, 나도 해체한 심장 일부를 집으로 가져가서 중국식으로 요리해 보고 싶다. 소금과 후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준 마리아에게 감사하며.


KakaoTalk_Photo_2022-03-12-16-34-38.jpeg 잘 다듬어진 심장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 그만 쓰고 싶어요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