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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야 Mar 21. 2022

우리동네 사람들

#01 머리하는 날

경남 양산 중부동 아르떼헤어

 오늘은 오랜만에 다니던 헤어숍에 갔다. 밝은 컬러로 염색을 했었던 나는 헤어샾 의자에 꼿꼿이 앉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 지루하고 괴로워 차일피일 미루다 본연의 내 머리카락이 10센티 가까이나 자랄 때까지 내버려 두었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미용 가운을 걸치고 편안해 보이는 거울 앞 의자에 앉았다. 


 문득 20년도 훌쩍 지난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예정에 없었던 용돈을 10만 원이나 주시면서 교통카드를 충전하라고 하셨다. 당시 짜장면이 2천 원을 넘지 않았던 걸 보면 학생에게는 큰돈이었다. 나는 “네~”하면서도 곧바로 신이 나서 미용실에 가서 펌을 했다. 그땐 지지고, 볶고, 염색하고 머리카락을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으니, 외모에 꽤나 관심이 많았었나 보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아도 한창 예쁠 나이인데도 말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일하시는 직원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최소한 비슷하게 느껴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직원분들이 손님에게 서비스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언제 내가 갑자기 중년이 되어가는 나이가 됐지?’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긴 머리의 헤어디자이너가 나에게 다가왔다. 

 “염색하러 오셨죠? 왜 이렇게 오랜만이세요?” 

 “네. 하하” 

 나이를 물어보는 건 실례인 줄 알면서도 나는 궁금해졌다. 

 “여기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아.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곧바로 취직했고 여기가 첫 직장이에요. 벌써 2년 반이나 되었네요. 미용에 관심이 많아서 미용기술을 배우게 되었는데요, 손님들하고 대화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이 너무 재밌어요. 제 적성에도 딱 맞는 것 같아요.” 하면서 상냥하게 웃는다. 어린 나이라도 벌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데다 또 일이 재미있다고 하니 신기했다.


 “늘 서서 일을 해서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아요?” 

 “처음 한 달은 다리가 퉁퉁 붓고 너무너무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주 가끔씩 짜증 섞인 말투와 태도로 저를 대하는 손님들이 있어 그땐 기운 빠져요. 그리고 밤에 마치는 데다 오프날이 많지 않아 친구들과 자주 놀지 못해서 아쉬워요. 그런데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에요? 다들 절제하시면서 사시더라고요.” 

  하며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나의 대학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미 어른 같아 보였다. 나의 20대 초반은 진로에 대한 치열한 고민보다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 궁리만 했었던 것 같은데….


 “자신들이 가지고 싶어 했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지 8%뿐”이라는 것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그 8%에 오늘 만난 헤어디자이너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사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다는 것과 그것을 직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헤어 트렌드가 자주 바뀌어 공부도 늘 해야 한다는 그녀는 열심히 배워서 자기 헤어숍을 차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을 대하는 감정노동자이기도 할 텐데, 손님 하나하나 기억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헤어숍을 나서면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나가는 어린 헤어디자이너를 보니 기분이 좋았고, 내 머리 색깔이 예쁘게 나와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단지, 머리를 예쁘게 했고 토요일이지만 아무 약속이 없어 그냥 집으로 들어온 것만 빼고는 말이다. 대학 친구들에게 미리 연락이라도 해 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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