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8일, 제주도
갑작스럽게 비가 내렸다.
분명 우도로 들어갈 때까지는 맑은 날씨였는데 말이다.
덕분에 우도 초입에 있는 가게는 우도의 관광객들로 가득 메워졌다. 작은 우산 하나 챙겨 오지 않은 우리도 그 줄에 합류해서 우비를 구입했다. 나름 예쁘게 맞춰 입고 온 터라 이왕이면 투명한 우비를 입자고 했지만, 이미 투명 우비는 앞선 사람들의 몫이었다. 우리는 그중 겨우 남아있는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분홍색 반투명 우비를 골라 입었다. 막상 입어보니 투명 우비보다도 더 귀엽고 예뻐 보였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우비를 맞춰 입어보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분홍색 우비를 맞춰 입은 우리는 못난이 인형 삼총사 같기도 했고, 세 쌍둥이 어린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2015년의 우도라고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 분홍색 우비다. 맛있었던 땅콩 아이스크림, 길 가다가 마주친 강아지, 마음이 탁 트이는 우도의 풍경보다도 분홍색 우비를 입고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제일 첫 장면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처럼 때로는 흐름에 따라 결정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돌아보면 가장 잘 한 결정일 때가 있음이다. 아마 우리의 일생에도 이런 분홍색 우비와 같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