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언어철학 및 분석철학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던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그 철학적 함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크레타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다!"라고 어떤 크레타 사람이 말했다. 이럴 경우 "모든 크레타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다!"는 거짓말일까, 참말일까? 첫째, 참말일 수 없다. 왜냐하면모든 크레타 사람의 말은 거짓말인데, 저 말은 크레타 사람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말일 수 없다. 모든 크레타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면 적어도 어떤 말은 참말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모든 크레타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명제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이 명제 때문에 고트롭 프레게는 <산수의 기초>라는 위대한 책을 쓰다 접었으며, 버트란드 러셀 또한 화이트헤드와 공저로 써나가던 <메스메티카>를 중도에포기했다. 그렇다면 이 난공불락의 명제를 도대체 어떻게 손 써야 한단 말인가?
"'모든 크레타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다.'고 어떤 크레타 사람이 말했다"는 저 말장난 자체가 틀렸다고 인정해버리면 그만이다. 세상에 옳은 것이 분명히 있다고 말하면 저 악순환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저 언어유희가 실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핵심은 "세상에는 옳은 것이란 없다."는 극단적 회의주의이다. 그런데 배가 잔뜩 부른 냉소주의자나 회의주의자는 "세상에 옳은 것이 어디 있어? 그런 것은 없지."라고 대단히 지적이고 너그러운 듯이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거들먹거리지 않고 자신의 말에 책임지려면, 프레게와 러셀과 같은 천재들을 무릎꿇게 했던 바로 그 명제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세상에 옳은 것이 없다."는 본인의 주장은 옳은가? 본인의 주장은 절대 옳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 옳은 것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므로, 그들의 주장도 옳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하는 이는 20세기 철학사를 통째로 날려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위시한 위대한 영미 철학자들이 바로 이 문제의 해결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물론20세기 후반에는 프랑스 철학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말이다.
이는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세상에 옳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양반들이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전직 대통령을 욕하고 세상이 썩었고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세상에 옳은 것이 없다면, 전직 대통령들의 옳고 그름을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은 판별한단 말인가? 자기 자신도 감당 못할 유치한 상대주의에 기대어 살면서도, 뭔가 대단히 지적인 양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나는 너무도 꺼려진다. 정말로 자기 주장대로 세상에 옳은 것이 없다면, 자기자식이 강간당하고 부모님이 살해당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조두순 욕도 하지 말아라.
오늘날에는 극단적 상대주의가 판을 치는 까닭에, 옳고 그름을 밝혀야 할 철학이 철학사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는 집중과 토론은 사라지고, 누가 몇 년도에 태어나고 뭘 했더라, 공자나 맹자는 이렇게 말했더라 하는 평생교육원 수준 인문학이 판을 친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기존의 지식을 뇌까리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그 어느 인간도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지금 당장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들 1만개를 연도 별로 외우고 각각 1000줄 이상 설명하라면 그게 가능한 인간이 있겠는가? 하지만 인공지능에게는 껌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기존의 대학 인문교양수업이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잘하는 방식의 인문학이라면 마땅히 인공지능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주의는 인문학이 아니다. 상대주의야말로 지성을 좀먹는 독 중의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