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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 받아도 절대 일 더 하지 말라

일 제대로 쪼개기가 지속적인 습관 유지의 핵심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 2016)에는 습관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켜나가는 데 대한 대가다운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장편소설을 쓸 때에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라는 원칙을 딱 정해놓은 뒤, 그보다 더 쓰지도 덜 쓰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멈추고, 작업이 잘 안 되는 날에도 20매는 무조건 채운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접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의지를 키워라!"라는 망언에 세뇌되었던 저는 작업이 잘 안 되는 날에도 억지로 의지를 발휘해 20매를 무조건 채우는 데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소위 "글빨이 나는 날"에도 글을 더 쓰지 않는 이유에 공감하기가 처음에는 어려웠습니다. 문학의 신이 강림한 날에는 쓸 수 있는 데까지 써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어봅시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든지,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든지 하면 규칙이 깨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여기서 하루키가 말한 "규칙"은 곧 "규칙적인 습관"입니다. 만약 이 습관을 어기게 될 경우, 삶의 다른 영역에 들어가야 할 힘과 시간이 그만큼 낭비되게 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삶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글쓰기 영역에도 피해가 가게 됩니다. 제가 알기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서 오전에만 글쓰기에 집중하고 오후 이후부터는 운동이나 독서, 사교 등 삶의 다른 영역에 집중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필이 와서 오후와 저녁에도 삶의 다른 영역을 돌보지 않은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또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자괴감 속에서 하루를 빈둥거린다면, 결코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지속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규칙적인 습관의 중요성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프리랜서로서, 수입은 없지만 시간은 많은 편입니다. 이럴 경우, 무언가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에 올인하느라 다른 것들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곤 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른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니 수업 준비를 해야만 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이니 가정 속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해야만 했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을 챙겨야 했고, 1년에 정기적으로 논문을 발표해야 했고 책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이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의 준비를 몰아치다 보면 논문 쓰기를 게을리하게 되었고, 논문에 꽂히면 책 쓰기를 미루게 되었고, 책 쓰기에 꽂히면 운동을 접고 가사 일에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년이 지나고 보면 바쁘기는 무지 바빴는데, 이루어놓은 것이 없어 허탈해지곤 했습니다. 아예 탱자탱자 놀았으면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 텐데, 잠을 줄여가며 달려왔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이게 무슨 끔찍한 노릇일까요. 


"일을 제대로 쪼개자!" 

그래서 저는 요즘 모든 일을 1시간 이내 분량으로 여럿 쪼개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제가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이상 주어지지 않습니다. 회사원은 물론이거니와, 프리랜서에게도 그와 같은 시간은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번 집중해서 4시간에 끝낼 수 있는 업무를 1시간 안에 완결될 수 있는 5개 분량으로 잘 쪼개는 것입니다. 아마 속상하실 것입니다. 내게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지면 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데, 자꾸 방해를 받으니 4시간으로는 부족하잖아." 하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떻게 합니까. 대신 4시간 분량 일을 1시간짜리 5개로 쪼개면, 1시간 일해서 그 분량만 완성하고 난 뒤, 외부로부터 방해받아도 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1시간 안에 완결될 수 있는 분량을 완결했으므로 그만큼의 성취감을 얻었고, 외부로부터의 방해가 끝나면 다시 1시간 내에 완결할 수 있는 두 번째 분량으로 넘어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1시간"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여유와 일의 성격에 따라 30분 단위로 쪼갤 수도 있고, 2시간 단위로 쪼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그 쪼개진 단위 안에서 일정 부분이 완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몹시 바쁜 사람이 하루 1시간 영어공부 목표를 세워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30분 이내에 방해를 받고 결국 그날 분량을 성취하지 못할 테니까요. 차라리 15분 내에 완결될 수 있도록 공부 분량을 정하고, 또 다른 삶의 영역에서 30분 안에 완결될 수 있는 일을 해치우는 편이 낫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 소소한 여러 일들을 모두 제 목표만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속한 일들을 쪼갤 수 있을 만큼 잘게 쪼갠 뒤에, 그것들을 매일매일 조금씩 성취해나가는 것이 평범한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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