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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샤워 명상

저는 오늘 아침, 오전 6시에 기상해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이불속에서 뒹굴거렸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고를 처음 접했던 어떤 출판업자는 "다 큰 남성이 이불속에서 꾸무덕대는 광경을 처음 몇십 페이지나 묘사하는 소설을 이해할 수 없다"라며 원고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워커홀릭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개운하게 기상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이불속에서 미적거리고 싶어 합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유영하던 기억 때문일까요? 호텔의 베겟입에서 풍겨오는 청량한 섬유유연제의 향기도 좋지만, 나의 내음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가 배어 있는 자기 잠자리가 더욱 아늑합니다. 체인스모커스(Chain smokers)의 명곡인 <더 가까이 Closer>에는 "Pull the sheets right off the corner/ Of the mattress that you stole /From your roommate back in Boulder/ We ain't ever getting older."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남자 주인공의 사랑스럽고 가난한 여자 친구는 부자 동네 대학에 다니는 룸메이트로부터 매트리스를 슬쩍했던 모양입니다. 역시 가난뱅이 남자 친구는 매트리스 구석에 놓여있던 시트를 당겨 두 사람의 벗은 몸을 덮습니다. 전체 가사의 흐름으로 봐서는 지금부터 사랑을 나눌 모양입니다. 그들은 말하죠. "우리는 영원히 철이 들지 않을 거야. 우리는 영원히 늙지 않을 거야." 참 좋을 때입니다.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쉬런(Ed Sheeran)의 메가 히트곡인 <Shape of you>에는 "Last night you were in my room, and now my bed sheets smell like you(어제 너는 내 방에 있었지. 이제 내 이불에는 너의 향기가 나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요? 남자는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워 전날 밤의 기억과 이불보의 향기를 만끽합니다. 마들렌 쿠키 한 조각이 마르셀 프루스트로부터 과거의 모든 기억을 끌어내었다면, 에드 쉬런은 침대보에서 전 날밤의 추억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오감과 결합된 기억은 영영 사라진 듯하면서도, 한 순간 놀라울 정도의 디테일을 지니면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곤 합니다.   


눈을 뜨자마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루의 시작이 바로 그 첫 생각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더럽고 불만스러운 상태가 되면, 그와 같은 부정적 모드가 하루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알람 소리에 총 맞은 사슴처럼 벌떡 일어났다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해대며 다시 이불속에 파고드는 것 자체가 하루의 시작을 망치는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개운하게 일어나지 않으면 긍정적이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운하게 일어나고 나서도, 신나고 긍정적인 생각이나 상상을 즐겨야 합니다.

이제 적당히 뒹굴거렸으면, 그 기분을 이어가기 위해 천천히 샤워를 하러 발걸음을 옮깁니다. 수면 시에 떨어졌던 체온은 기상함에 따라서 천천히 상승합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은 체온의 상승을 돕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아침에 찬 물로 샤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아침에 찬 물을 몸에 끼얹는 것일까요? 잠이 덜 깨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누가 봐도 개운하게 일어나서 기분 좋게 샤워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편이 훨씬 기분 좋지 않습니까? 냉수마찰이 건강에 좋다는 것도 저는 재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리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체온과 가장 비슷한 온도의 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냉수를 마시는 것도 건강에 해롭습니다. 상온의 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는 제일 좋지요. 저는 피부를 놀라게 하는 지나치게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물이 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여하튼 저는 쩔쩔 끓는 열탕에 들어가서 퍼져 버리는 것도, 이가 와들와들 떨릴 정도로 차가운 냉탕에 들어가서 머릿 털이 쭈뼛 서는 것도 모두 즐기지 않습니다. 샤워는 기분 좋을 정도로 따뜻한 물에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샤워 명상 또한 가능하지요.


아침에 침대 위에서 노닥거리다가 어슬렁어슬렁 발걸음을 옮겨 샤워실에 갑니다. 옷을 벗어서 잘 개어둔 뒤, 수건을 옆에 챙겨둡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에 맞춘 물이 샤워기 헤드로부터 부드럽게 쏟아져 내립니다. 마치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을 겪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런 조급함 없이 느긋하게 온 몸에 바디샴푸를 문지르다 보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상들이 떠오릅니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한 여러 아이디어들이 샤워실을 가득 메운 수증기 속을 떠다닙니다. 물값이 저렴한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저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따뜻한 물방울들이 뇌를 톡톡 건드리며 아이디어를 탁탁 터뜨리는 순간을 즐깁니다. 제가 말한 진정한 휴식(rest, letting-go)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휴식은 수면, 샤워, 걷기 등을 통한 멍 때리기 명상에서 이루어집니다. 샤워 밸브를 잠그고 나서가 제게는 더욱 중요합니다. 화장실에는 따뜻한 수증기가 가득합니다. 저는 물이 뚝뚝 떨어진 채로 서서, 수증기가 어느 정도 가실 때까지 계속 상상력을 높이거나 생각을 정리합니다. 제가 상상력이나 창의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고 해서, 제가 뭐 대단히 창조적인 정신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제 글만 봐도 평범하지 않습니까. 다만 저는 제가 이전에 하지 못했고 꿈꾸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내고 꿈꿔내는 것이 기쁠 따름입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을 다 거쳐도 20분 내외면 끝납니다. 빡빡머리인 저는 머리를 말리거나 가꾸는 시간조차 필요 없습니다. 만약 머리숱이 풍성했다면, 헤어 드라이 명상도 해 볼만 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어릴 때는 머리를 말리거나 만지면서도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킥킥대었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샤워하는 방식이나 소요 시간 또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아침이 아닌 저녁 샤워 또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슬로 라이프의 일상에서 아침 샤워가 갖는 비중이 적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상해서 기분 좋게 뒹굴거린 뒤에 기분 좋게 샤워를 끝내면, 하루를 매우 긍정적인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분명히 기대 이상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나를 치유하는 아침 글쓰기'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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