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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습관으로 바꾸는 법  

의지를 낮출 수 있는 데까지 낮춰라 

우리네 삶에서 가장 위험한 말들 가운데 하나가 "의지 부족, " "의지박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1달 안에 5kg를 빼겠다고 계획을 세웠는데 실패하면, "역시 나는 의지가 부족해."하고 자신을 탓합니다. 1월 1일부터 하루에 1시간씩 밖에 나가 달리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1월 24일인 지금에 와서는 벌써 실패입니다. 또다시 말합니다. "나는 의지가 박약해. 역시 나는 뭘 해도 안 될 사람이야. 내가 그렇지 뭐. 항상 이 모양 이 꼴이지, 뭐." 자기 비하가 계속 꼬리를 물고, 어느샌가 나의 취미로 바뀝니다. 이러고 보면, 모든 인간은 마조히스트 기질을 어느 정도 지닌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짐 퀵(Jim Kwik)이라는 세계적인 코치는 "너의 혼잣말을 모니터링하라(Monitor your self-talk."라고 끊임없이 주문합니다. 부정적인 언사가 내 혼잣말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가는 나 자신의 마인드셋을 체크하는 결정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지요. 타인에게는 사탕 발린 거짓말을 하기 매우 쉽습니다. 이 때문에 타인에게 하는 말을 체크해봐야 별 소용이 없습니다. 나 자신이 중얼거리듯 내뱉는 짧은 몇 마디를 체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본디 주제로 돌아가면, 우리는 이 의지 부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의지를 좀 더 강하게 만들면 해결이 될까요?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우리를 그런 식으로 압박합니다. 심지어 별로 위대하지도 않은 주변 인물들까지 아는 체를 하면서 의지를 키우라고 겁박합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그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해봤는데 도저히 안되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저 의지는 끔찍할 정도로 박약합니다. 하지만 저도 인간이고 저도 살아야 하는데, 허구한 날 제 자신을 비난하는데 온 "의지"를 쏟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희한하게도, 제 자신을 비하하는데 쓰는 의지는 항상 부족함이 없더군요. 그러면 의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면 됩니까? 아닙니다. 그런 방식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 식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래의 세 단계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① 목표 수준을 현재 내 의지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없으실 것입니다. "내 의지 수준을 목표 수준으로 끌어올려라!"는 부담스러운 말만 우리들은 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언 들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냉정하게 점검해보는 대신 무조건 의지를 강화시키라는 허언에 불과합니다.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지요. 그보다는 현재 내 상태에 맞는 내 의지 수준으로 모든 목표를 끌어내려야 합니다. 위의 예시를 봅시다. 

"1달 안에 5kg을 뺄 거야." 자, 우선 내 현재 상태 점검에 들어갑시다. 내가 현재 너무 살이 쪄서 불편한 상태라면, 살을 빼는 것은 나의 타당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저 숫자들입니다. 어째서 나는 반드시  1달 내에 5kg을 빼야 하는 것입니까? 그 숫자에는 나 자신의 현재 의지를 설득시킬 수 있는 어떤 타당성도 없습니다. 살을 빼야 한다? OK! 1달 안에 살을 5kg 빼야 한다? Not OK!입니다. 

목표의 타당성을 확인했고, 목표 달성 계획과 내 현재 의지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② 내 현재 의지 수준에 맞게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가장 낮은 수준에서 수립한다. 

그렇습니다. 내 의지가 정말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목표를 낮추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천방안 또한 가장 낮은 수준에서 수립해야 합니다. 그 실천방안의 성격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A. 실천방안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한다. 

B. 실천방안은 실행 즉시 결과가 모 아니면 도로 판가름 나야 한다. 


"하루에 1시간씩 달리기를 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목표를 재점검해봅시다. 지금 제 의지로 하루에 1시간씩 운동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달리기는 더욱 터무니없습니다. 올림픽 나갈 일 있습니까? 왜 내가 1시간을 매일 달려야 한단 말입니까? 그보다 저는 가장 의지를 발휘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장소에 가서 다리가 힘들어하지 않을 정도만 끊어서 여러 번 걷다시피 뛰고 귀가하는 방법을 선택하겠습니다. 가령 저는 예전에 지하철 5호선 개롱역 입구에 살았습니다. 집에서 성내천 산책로까지 걸어 나가는데 3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 집에서 성내천으로 진입한 뒤 올림픽공원까지 걸어가는데 30분이 걸렸습니다. 저는 걷는 게 매우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성내천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가운데 미녀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올림픽공원에 도착하면 거기서부터 돌아올 때에는 슬로 조깅(slow jogging)을 합니다. 슬로 조깅이란 상대방과의 편안한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에서 달려가는 것이지요. 속근보다 지근을 쓰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정합니다. "나는 오늘 걷는 것보다 쪼금 더 빠르게 설렁설렁 100m 딱 5번만 뛰고 때려치운다." 현재 내 의지 수준에서 100m 5번 걷다시피 뛰기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실천방안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실행 결과는 모 아니면 도로 금세 판가름이 납니다. 5번을 못 뛰면 못 뛰는 거고, 100m를 못 채우면 못 채우는 것이지요. 의지를 써서 기억할 것도 머리를 쓸 것도 전혀 없습니다. 


③  내 현재 의지 수준으로 낮춘 실천방안을 습관으로 바꾼다.    

그렇습니다. 이제 의지는 습관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습관을 만든다"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습관으로 바꾼다"라고 썼지요. 제가 말하는 습관이란 "아무런 의지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를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면, 무언가를 습관으로 고정시키기 위해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합니다. 습관은 가장 낮은 수준의 의지가 아무런 노력할 필요 없이 반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습관이 "들고" 나면, 이제는 습관대로 하지 않는데 의지가 필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습관이 되어야 할 실천방안은 내 현재 의지의 수준으로 최대한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매일 운동하는 습관이 들지 않을까요? 운동 목표 수준이 내 현재 의지 수준을 한참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내 현재 의지 수준으로 운동 목표를 끌어내리면, 매일 반복해서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설렁설렁 뛰는 것조차 귀찮으면 걸으면 됩니다. 매일 의지가 귀찮아하지 않을 수준으로 걸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걷는 것조차 귀찮다면? 아직 건강 상태가 많이 심각하지는 않은 모양이지요. 운동을 해야겠다는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느니, 차라리 어느 정도 건강 상태를 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런 말이 책임감 없게 들려 화가 난다면  이제 운동하러 갈 "의지"가 생겨날 때가 되었겠지요. 그러면 나가서 걸으면 됩니다.


④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목표 수준을 의지 수준으로 끌어내리자. 

목표 수준을 의지 수준에 맞추는 작업을 이제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내 삶은 매우 다양한 일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일들에는 달성해야 할 지점이나 목표가 있습니다. 제가 온종일 운동만 하는 것도 아니고 살만 빼는 것도 아니지요. 제게 더욱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이 있고 그 일들은 어떤 수준의 목표를 요구할 것입니다. 저는 목표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면, 이왕 하는 거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하지만 목표가 1) 구체적이지 않고 2) 내 현재 의지 수준을 넘어선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 또한 실천 불가능하게 됩니다. 영어 같은 경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에 나오는 대화를 딱 2 문장만 매일 외우자고 마음먹는 것은 어떻습니까? 365일을 하면 730 문장이 됩니다. 의지를 발휘해서 억지로 외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배우에 빙의해서 손짓 발짓해가며 따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매일 15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하고 있어서 압니다. 요즘 유튜브에는 이런 학습이 가능하도록 영화와 드라마를 편집한 영상들이 수두룩합니다. 내가 편집하는 수고조차도 필요 없습니다. 지하철 타면 어차피 보는 유튜브, 15분만 제일 좋아하는 동영상 따라 해 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영어 공부 매일 1시간, 하루 단어 20개 외우기"이런 식으로 계획을 짜면 저 같은 의지박약아가 이걸 어떻게 매일 습관적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스피노자는 의지에 자유가 있다는 종래의 주장을 부정했습니다. 저는 의지, 의지를 계속 늘어놓는 모든 종류의 철학을 체질적으로 싫어합니다. 오늘날 "노오력을 해야지!"라는 꼰대들의 조언도 결국 "네 놈들은 의지가 부족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 자신의 의지를 탓하기보다, 의지에 맞지 않는 목표를 자꾸만 세우는 '헛된 꿈'을 재검토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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