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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한다

팀 페리스, <나는 4시간만 일한다>

제가 즐겨 듣는 유튜브 채널 <책그림>의 나레이터는 <나는 4시간만 일한다>는 책을 처음에는 듣고서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루에 4시간도 아니고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한다니, 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등장하셨네, 하는 심정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타이탄의 도구들>을 쓴 팀 페리스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고쳐먹었답니다. 결과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주제는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고 돈 버는 방법'이 아니었으니까요. 신사임당TV에 출연한 강주원 작가는 "책 판매의 50%는 표지와 제목이 결정하는 듯하다"라고 말했지요. 그는 물론 책 내용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나는 4시간만 일한다>는 낚시성 제목이지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 꽤 있습니다. 저 또한 슬로 라이프를 살아내는 습관과 관련해서 참고할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 책이 제안하는 주요 실천 방안 2개만 짚어본 뒤, 슬로 라이프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89쪽)


1. 80:20의 법칙: 근무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중요한 일로만 업무를 제한하라

2. 파킨슨의 법칙: 제한된 업무들에 마감시간을 부여하라. 


그는 두 법칙을 "수입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업무를 찾아내, 그 일들이 아주 짧고 분명한 마감시한을 갖도록 시간표를 짜는 것"으로 정리합니다.(90쪽)

우선 이제는 익숙한 80:20 파레토 법칙을 팀 페리스가 사용한 예를 살펴봅시다. 이 법칙을 알기 전의 그는 일주일에 7일, 하루 15시간씩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해외 각국에 거래처가 널려 있었기에, 새벽이나 한밤중에 자다 깨서 전화를 받는 경우는 예사였습니다. 그는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는 이때 파레토 법칙을 상기해낸 뒤, 사업의 수익이 몇 퍼센트의 고객에서 비롯되는가를 면밀히 따져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120 곳 이상의 도매 고객 중에서 단지 5곳 고객이 수익의 95%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이 5곳은 정기적으로 주문을 하는 고객이었고, 팀 페리스는 기껏해야 5%의 수익을 주는 나머지 고객들에게 98%의 시간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일을 위한 일(work for work, w4w)'이라고 부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5곳의 고객만을 남기고 거래를 끊음으로써, 자기 시간의 98%를 되찾았습니다. 행복과 정신적 평안은 덤이었습니다.


둘째, 마감시한까지 시간이 많이 남든 적게 남든, 우리는 마감시한을 채워서 일을 마칩니다. 시험 전날 밤에 벼락치기하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무한정 준다고 해서 충실히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일이 마음에 걸려 있으면서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마감시한이 닥쳐야만 발휘되는 놀라운 집중력도 경험하기 힘듭니다. 이 때문에, 마감시한을 반드시 정하되, 너무 시간을 넉넉하게 잡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팁 하나 더! 일거리를 줄이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고 나면 분명히 시간이 남습니다. 이때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팀 페리스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저 또한 이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시간관리법을 통해 절약된 시간을 쉬는 데 쓰는 대신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더욱 쉬질 못했지요.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에너지는 하루 분량이 정해져 있으므로, 시간을 절약한다고 해서 그만큼 에너지가 남아돌지는 않습니다. 시간관리법을 통해서 우리는 업무에 필요한 에너지를 번다기보다는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절약된 시간을 다시 새로운 일에 투입했고, 제대로 된 결과도 내지 못한 채 번아웃 상태로 빠졌습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주인공 모모는 "시간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하고 고민합니다. 내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요? 사회로부터 약탈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예도 적지 않습니다. 팀 페리스는 2가지 법칙을 통해 시간을 벌게 된 이들이 겪게 될 당황스러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항상 원하던 것이다! 어떻게 지루해질 수 있지?' 너무 겁먹지도 말고 이런 생각을 부채질하지도 마라. 이것은 오랫동안 열심히 일한 후 삶의 속도를 늦춘 모든 성과 지향 주의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당신이 더 똑똑하고 더 목표 지향적일수록 이런 고통은 훨씬 더 심할 것이다. 매일 시간이 부족해 동동거리며 살다가 넘치도록 많은 시간을 제대로 음미하며 지내기란 3배 진한 트리플 에스프레소를 마시다 무카페인 커피로 바꾸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274쪽)

무카페인 커피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속도 사회에서 슬로 라이프에서 넘어가는 과정과도 닮았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제 삶의 속도를 되찾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팀 페리스의 열정적인 태도가 슬로 라이프와 어긋나는 듯도 합니다. 그러나 "속도를 줄이는 법을 배우자. 일부러라도 길을 잃어보자. 당신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관찰해 보라. 이렇게 해 본 지 한참 됐을 가능성이 크다. 돌아갈 날짜가 점점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적어도 두 달 동안은 오래된 습관을 끊고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라."고도 말하는 그는 슬로 라이프의 참맛을 살짝 엿본 듯도 합니다.(253쪽)  


이제 슬로 라이프 하루 일과표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이 책에서 발굴해 보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사업을 벌인 이 답지 않게, 그는 이메일을 1주일에 단 하루 1시간만 확인한다고 합니다.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약 1시간 동안 사업 관련 이메일을 확인하고, 해외에 있을 때는 절대로 음성 사서함을 확인하지 않는다. 절대로! 하지만 누군가 급하게 연락할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연락책들은 이제 내가 긴급한 상황에도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긴급한 일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 당신이 정보 병목이 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면, 모든 문제는 대개 저절로 해결되거나 사라진다."(95-96쪽)

저는 팀 페리스의 이와 같은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출근하자마자 이메일을 확인하고,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지메일을 체크했기 때문입니다. 카톡이나 전화, 문자 메시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집중해서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시간을 스스로 끊어먹었습니다. 남은 것은 산만한 정신과 부실한 결과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삼성이나 SK에 다니는 분들처럼 급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제 업무 관련 이메일은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내용이 거의 없고, 카톡이나 전화 또한 몇 시간 뒤 체크해도 별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면 어쩌지?'라고 핑계를 만들어내서 일부러 제 집중력을 깎아먹고 있었던 겁니다. 당연히 멍 때리거나 푹 쉴 시간도 스스로 날려버렸지요.


이제 저는 팀 페리스가 쓰는 방법을 제 나름대로 변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침에 출근하면 스마트폰을 꺼서 깊숙한 데 넣어놓고, 이메일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점심 약속은 전날 잡고, 회의 시간도 미리 확인해 놓습니다. 오전에는 부족한 제 힘을 다해서 연구에 집중하려 합니다.

그러면 이메일은 언제 확인할까요? 저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제 일터에 돌아온 오후 1시 이후에 이메일함을 열어봅니다. 저는 뉴스도 그때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날씨 뉴스가 아니면 굳이 분초를 다퉈 읽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철학하는 사람이 세상사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아침부터 알 필요는 없습니다. 점심 식사 및 양치질을 마친 뒤, 느긋하게 이메일과 뉴스를 읽어보아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중요한 뉴스의 경우에는, 점심 식사 때 다른 분들이 해주시는 것을 듣는 편이 오히려 나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뉴스를 많이 알거나 드라마에 박식하다고 해서 먹여 살려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와 같은 동양철학자에게 원하는 것은 동양철학이겠지요. 그 외의 것들은 전부 부차적이고, 일종의 양념입니다. 


참고로, 저는 제 경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정은 제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을 2개씩 들고 다니며 쉴 새 없이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스마트폰을 구입하지 않고서도 잘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있겠지요. 다만 팀 페리스가 제안하는 일괄처리 방식은 매우 유용합니다. 일괄처리(batching)란 "비슷한 일을 모아 한꺼번에 처리하기 처리하기"입니다.(117쪽) 제게는 이메일 점검과 뉴스 확인이 모두 점심시간 이후 나른해질 때 해치울 수 있는 성격의 업무입니다. 정신이 맑고 창의적일 때 해서는 안 될 일이지요. 

팀 페리스는 말합니다. "'나는 이 정보를 당장 중요한 일에 확실히 쓸 건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라. '당장'과 '중요한'이라는 두 가지 중에 어느 한쪽이라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 정보를 소비하지 말라."(101쪽) 이메일과 인터넷 뉴스는 '당장'과 '중요한'이라는 두 원칙에 따르면 결격 대상입니다. 특히 '당장'의 원칙에 어긋나죠. "대부분의 정보는 시간만 많이 잡아먹고, 부정적이며, 당신의 목표와 관련이 없고, 당신의 영향권 밖에 있다. 당신이 오늘 읽거나 본 것 네 가지 중에 적어도 반은 그럴 거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97쪽) 분하지만, 팀 페리스의 말에 틀린 것이 없습니다. 내가 진정 사랑하고 즐기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에 충분히 쉬는 슬로 라이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들이 형편없었다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리가 없었겠지요.


이제 우리의 북리뷰는 종착점에 다가왔습니다. 팀 페리스의 책은 디지털 노마드 붐을 전 세계에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1년에 몇 번씩 은퇴하는 '미니 은퇴'를 권하기도 했지요. 안정된 평생직장 개념에 익숙한 이들에게 "은퇴는 자주 하는 게 좋다"는 말은 낯설고도 신기합니다. 대단한 모험심을 지닌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일까요? 팀 페리스는 이제 투 잡, 쓰리 잡이나 미니 은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여전히 안정적인 직장들이 남아 있을 것이고, 인기를 끌 것입니다.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 유동성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평생직장 개념 또한 점점 희박해질 것입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디지털 노마드 방식으로 할 수는 없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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