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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아름다워 잠이 오지 않아

김우태, <소소하게, 독서중독>

임백천이 1990년에 발표한 <마음에 쓰는 편지>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가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밤이 아름다워 잠이 오지 않아...그대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 불을 끄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 마음에 접어놓은 수많은 얘기 속에. 그대에게 하고픈 말, 사랑합니다."

삶의 크고 작은 고민과 여러 상념들 때문에 잠을 못 이룬 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밤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때가 언제였던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제가 각박하고 정신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약간 슬픕니다. 밤이 너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꼬박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생물이 인간 외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면, 너무 오만한 인간중심주의일까요?  호랑이와 낙타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까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아침형 인간으로 삶의 리듬을 정한 뒤, 밤이 아름다워 잠이 오지 않은 때는 드뭅니다. 다만, 오늘은 "너무 일찍 깨어~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에 글을 써 봅니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가 생각나는 새벽이네요.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새벽 편지가 아닌, '아침형 인간의 저녁 독서'입니다. 


퇴근한 뒤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한 뒤 귀가했습니다. 꿈나라 입장시간인 11시까지는 2시간가량 남았습니다. 이때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운동을 더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청도 가능하지요.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마 개인적인 취미를 즐기기보다는, 귀여운 아이들과 노는 편을 택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생체리듬 연구에 따르면, 취침을 2시간 앞둔 운동이나 전자기기 사용, 음식 섭취는 숙면을 방해합니다.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과격한 유희도 권장사항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이 어찌 생체리듬만 따라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번아웃이나 만성피로가 지긋지긋하다면, 생활 습관을 바꿔보는 것도 좋습니다. 운동은 저녁식사 후에 마치고, 전자기기 사용은 가급적 출퇴근 시간에 하는 것은 어떨까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쓰거나 글을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출퇴근 시간마저 뭔가를 굳이 해야 한다는 것에 염증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 나는 출퇴근 길이 아니겠습니까. 자가운전자가 아니라면, 이럴 때가 동영상 보고 놀기 좋은 타이밍입니다. 저도 자주 그렇게 놉니다. 


저는 저녁 독서를 잠들기 전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철학하는 이의 본업이 독서인데, 저녁까지 책을 읽느냐고 질겁하실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사정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전과 오후에는 제 본업인 철학과 관련된 읽고 쓰기를 한다면-그나마 요즘은 글쓰기 주제가 다양하기는 합니다만-, 저녁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과거에는 문학을 매우 좋아했습니다만, 최근에는 자기계발 서적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이러다가 몇 년 뒤에는 문학으로 회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김우태 작가는 <소소하게, 독서중독>에서 독서를 편식하라고 말합니다. 발칙한 발언처럼 들리지요. 하지만 그의 본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푹 빠져들어 독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다 보면, 실존주의에 대해 관심이 생깁니다. 실존주의를 파다 보면, 알베르 카뮈와 함께 활동했던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 및 철학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사르트르가 온종일 앉아 글을 쓰던 파리 카페 <카페 드 플로르>를 찾게 됩니다. 그곳을 자주 방문했던 당시 여러 문인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이런 식으로 관심사는 사방으로 확장됩니다. 말하자면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세계여행이지요. 물리적으로 그렇게 여행할 시간이 우리에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적 도보여행은 가능합니다.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또 그러다 보면, 제 전공에 대한 흥미가 더욱 솟구치기도 합니다. 특히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쓴 철학 서적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도 하고, 공부에 대한 열의를 솟구치게 하기도 하니까요. 


<소소하게 독서중독>의 작가인 김우태 씨는 저와 연배가 비슷한 듯합니다. 양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본인을 '양계장 김 씨'라고 칭합니다. 문체가 장난스럽고 자신을 낮춰서 이야기하지만, 독서 내공이 상당하신 분입니다. 이 책은 독서광인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를 망라합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독서에 빠져 가정 및 사회생활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조언은 매우 와 닿습니다. 김우태 씨 본인이 그런 경우를 겪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스무 살이 넘도록, 책을 멀리했습니다. 술을 좋아했고, 게임에도 재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지요. 이런저런 취미들에 도통했지만, 결국 남는 게 없다는 뼈 때리는 진실을 말입니다. 그는 TV를 처남에게 줘 버리고 스마트폰도 없앤 뒤, 독서에 매진합니다. 


김우태 씨의 독서는 주로 퇴근 후에 이루어집니다. 그의 어린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독서를 취미로 삼았습니다. 이제 아빠와 아들은 권학상장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홀수 쪽은 아빠가, 짝수 쪽은 아들이 그런 식으로 번갈아 가며 읽어보기도 합니다. 아빠가 미처 읽지 못한 책을 아들이 먼저 읽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상상만 해도 흐뭇합니다. 

한편, 김우태 씨는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가 너무 좋답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장난스럽게 외칩니다. "세상이 갈수록 무식해져 갈 때 나 혼자만 똑똑해져서 좋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독서다. 이런 비밀을 나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이나 명예가 높은 이는 전혀 부럽지 않답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은 무섭답니다. 저 놈들이 내 밥그릇을 뺏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물론 이 모든 말들은 장난스럽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는 결코 돈을 벌기 위해 독서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책 많이 읽은 것을 자랑으로 삼아서 돈을 버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말이죠. 그도 한 때 1일 1권을 목표로 맹렬히 책을 읽어댔습니다. 하지만 그런 독서 방식은 결국 그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렇습니다. 저도 한 때 그런 식으로 독서했는데, 몇 년 지나고 나니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1일 1권을 목표로 하면, 심오하고 내용이 풍부한 책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됩니다. 한두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자기계발 서적이나 얇은 대중서에 집착하게 되지요. 저도 자기계발서를 즐깁니다만, 1일 1권을 달성하기 위해 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책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없습니다. 김우태 씨는 말합니다. 누가 책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면, 속으로 씩 비웃어주라고 말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일합니다. 김우태 씨는 양계장에서 일합니다. 저는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은 미혼입니다. 김우태 씨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둘은 저녁 독서를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책을 읽고 있을 저녁 시간에 그 또한 아들과 함께 독서 중이겠지요. 그는 자신의 책이 많이 팔려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물론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겠지요. 그의 책이 많이 팔리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뜻에서 <소소하게, 독서중독>을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쓰는 편지> 동영상 및 가사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즐감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6kJ4SqZHcUc 

밤이 아름다워 잠이 오지 않아  창을 열고 가만히 벽에 기대어 창가에 흐르는 별들을 바라보며 갈수 없는 내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대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 불을 끄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 마음에 접어놓은 수많은  얘기 속에 그대에게 하고픈 말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귀를 기울여 봐요   이밤은 이렇게 당신을 부르는데    사랑하는 사람아 마음을 열어봐요   그리움이 가득한 이밤을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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