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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 아침형 인간, 만성피로 그리고 생체시계

슬로 라이프 중간정리


저는 <슬로이스트 slowist>라는 브런치 매거진에서 '슬로 라이프-아침형 인간-만성피로' 이 세 가지 주제를 다루는 중입니다. 세 가지 이슈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아침형 인간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생체시계에 어긋나는 생활습관이 제2의 천성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자신이 저녁형 인간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침형 인간의 생체시계를 지닌 사람이 저녁형 인간의 습관을 유지하면 만성피로에 빠집니다. 아침형 인간에 맞춰진 사회 시스템에서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도 결국 번아웃됩니다. 따라서 내가 만성피로를 안고 산다면, '피로사회'를 비난하기에 앞서 내 생활습관을 면밀히 재검토해보는 편이 좋습니다. 사친 판다 박사에 따르면, 생활리듬은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바꿀수 있습니다.


한편 아침형 인간과 슬로 라이프의 관계도 생체시계이론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제대로 이해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늦게 일어나서 식사도 아무때나 하고, 밤늦게까지 뒹굴뒹굴거리다 불규칙하게 쓰러져자야만 슬로 라이프를 사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슬로 라이프는 불규칙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일할 때는 집중(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하고 쉴 때는 멍 때리며(letting-go), 업무집중을 통해 번 자유시간을 놀이(play)에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슬로 라이프입니다. 느린 삶을 산다는 핑계 하에 불규칙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자기혐오입니다.

불규칙한 생활습관은 건강을 해치고 만성피로를 부르기 때문에, 슬로 라이프로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업무효율이 떨어져서 남들이 2시간 만에 끝낼 일을 4시간 동안 붙들고 있는데, 어떻게 슬로(slow)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뒤에서 누가 채찍질해오듯 급하게 쫓기며 살 수밖에 없겠지요. 일에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형 인간은 생체시계에 따라 삽니다.  그리고 생체시계에 따라 규칙적으로 살 때, 삶에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 삶의 방식은 절대 급하지 않은 슬로 라이프(slow life)입니다. 슬로 라이프-아침형 인간-만성피로(번아웃증후군)은 '생체시계'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통합됩니다.


저는 슬로 라이프를 지탱하는 3개의 기둥은 '운동-영양-휴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트니스 클럽을 다니시는 분들에게 익숙한 세 단어입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야 할 마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 세 키워드를 제 나름대로 변형시켜 사용했습니다.

우선 저는 '영양'을 '식습관'으로 고쳤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지만, 사회 생활상 제가 먹고 싶은 식단만을 고집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식단은 세심하게 건강을 배려한 것입니다. 유별난 식단을 고집하며 사무실에서 혼자 밥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식사의 사회적 기능도 중요하니까요. 그 대신 저는 16:8 간헐적 단식으로 식사 패턴을 바꾸었습니다. 16시간 이상 공복기간을 가지고, 8시간 내에 음식물 섭취를 마칩니다. 8시간 동안의 제한기간 이외에는 가급적 감잎차를 마시고자 합니다. 8시간 내에도 커피가 아닌 둥굴레차 등 차 종류를 선호합니다.

한편 간헐적 단식을 소개하는 책자들은 '소식'을 강조합니다. 저도 무엇을 먹느냐보다 얼마만큼 먹느냐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양학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균형잡힌 식단'은 과식을 부릅니다. 일단 추천 식단 그대로 먹어도 양이 너무 많습니다. 몸에 좋은 것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지요. 몸에 좋은 것 먹겠다는 의지는 자칫 식단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이어집니다. 어느 식사자리를 가도 눈에 보이는 것은 '나쁜 음식'뿐이지요. 집에 와서는 몸에 좋다는 것들만 '잔뜩' 먹습니다. 16:8 간헐적 단식하되 가급적 소식하는 식습관이 가장 바람직한 솔루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향후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아침을 굶는 간헐적 단식을 할 경우 점심식사 이전 빈 속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친 판다의 <생체리듬의 과학>에 따르면, 커피는 공복을 깨뜨립니다. 우리의 몸은 한정식이나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칼로리가 있는 커피 한 잔조차도 공복을 깨뜨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서 '음식물 소화 모드'를 가동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카페인이 우리 몸을 완전히 빠져나가기까지 10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밤 11시에 잠드는 사람의 경우, 오후 1시 이후에 마시는 커피는 숙면을 방해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오후 늦게 커피를 마셔도 밤에 잘 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뇌피로 전문가인 이시형 박사는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에서 카페인을 섭취해도 잠을 잘 잔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카페인 중독을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커피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한 잔 마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이런 원칙에 딱딱하게 매달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 또한 그러지 않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오후 늦게, 또는 심지어 저녁에 커피 한 잔 하자고 해도 즐겁게 마십니다. 또 미치도록 마시고 싶을 때는 아침에도 마십니다. 하지만 미치도록 마시고 싶을 때는 매우 드물고, 친구들이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자고 할 일도 자주 없습니다. 이렇듯 원칙을 제대로 정한 뒤, 자기 나름대로 바꿔 쓰면 됩니다.


한편 '휴식'의 핵심은 '멍 때리기'입니다.이와 같은 결론은 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쉴 줄을 몰랐습니다. 놀기도 전투적으로 놀았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해외 여행을 갔다가 인천공항에 월요일 새벽에 떨어진 뒤 곧바로 출근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행위중독자였던 셈입니다. 대학원에 와서도 오후에 졸린다 싶으면 멍 때리며 쉬는 대신, 운동하러 갔습니다. 운동하고 나면 잠이 깼기 때문이죠.

30대까진 그런 삶의 방식이 통했습니다. 그런데 40줄에 들어서자, 운동을 하고 나니 더 피곤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운동을 하면 더 건강해져야 하는데, 어째서 하면 할수록 더 피곤하지? 아하, 운동을 적당히 해서 그렇구나. 더 격렬하게 해서 체력을 키워야지.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던지요. 저는 일과 운동 모두에서 번아웃 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한때 제가 암에 걸린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쉬어도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고 입맛이 없었습니다.

오랜 기간 방황하던 끝에, 제가 생리학에 역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10대 소년 시절에 이미 세계문학사상 불멸의 업적을 다 쌓았습니다. 이후에는 문학의 세계에 발을 끊고 장사하러 다녔지요. 그러다가 건강을 소홀히 한 탓에 결국 썩은 다리를 자르게 되었고,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그 때 그는 "학교에서 왜 건강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주지 않았던가."라며 분노하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랭보의 시에는 무지하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는 항상 관심을 가졌던 제가 어째서 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을까요?  


 '짧게 자주 멍 때리기'는 제 생활 신조입니다. 제 동양철학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양한 수양법이나 호흡법을 몸소 체험하기를 즐겼는데, 그 과정에서 집중(focus)이 휴식과 관련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가부좌를 틀건 물구나무를 서건, 의식적이고 육체적인 노력이 들어가는 모든 행위는 휴식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휴가가서 바나나보트를 타는 것은 긴장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휴식은 아닙니다. 업무 중에 틈틈이 유튜브를 보는 것은 휴식이 아닙니다. 템플스테이 가서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마음자리를 살피는 것은 휴식이 아닙니다. 비틀스의 'Let it be'처럼 완전히 풀어진 채 그대로 존재하는 것만이 진정한 휴식입니다.    


이제 운동-영양-휴식 가운데 '운동'이 남았습니다. 물론 하루 일과 가운데 미처 못 다룬 영역에 대해서도 글을 쓸 예정입니다만, 운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슬로 라이프에 어울리는 운동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슬로우 조깅(Slow jogging)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슬로우 조깅에 대한 글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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