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토리 세대 안의 두 사고방식에 대해 알아보자-4

그런데 나는 이쯤에서 ‘세대’라는 표현을 쓰는데 적잖은 불편함을 느낀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 왜냐하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어떤 세대를 이야기하더라도 그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지니고 살고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통일성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2016년 현재 60년대에 태어나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40대에 속하는 이들을 흔히 486 세대라고 부르지만-그들은 이미 486과 586에 걸쳐 있다- 486 세대 안에서 얼마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했는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또한 1990년대에 ‘X 세대’라는 용어가 유행했지만, “부모들이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탈권위주의적이고 자유로운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설명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X 세대는 특정 연대에 태어났거나 살았던 사람들을 지칭하기보다는 특정 사고방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사토리 세대 안에서도 능동적 사고방식과 수동적 사고방식이 혼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사실 이는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문제에 해당한다. 오늘날 10대와 20대가 죄다 아사히신문에서 지적한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나타낸다는 주장만큼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능동적 사고와 수동적 사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사토리 세대를 인터뷰하는 기자조차도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서글픈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자.

조선일보 2015년 2월 23일 「['달관 세대'가 사는 법]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행복하다는 그들… 불황이 낳은 '達觀(달관) 세대'」라는 기사에 따르면 “경희대를 졸업한 박샘(25)씨는 경기도 일산에서 디자인 관련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 80만 원을 번다. 박씨는 ‘일하고 싶을 때 일하면서 꼭 필요한 만큼만 벌어 취미생활하며 산다. 정규직이라고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는 끝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용어는 ‘덜 일한다’의 개념이다. ‘덜 일한다’는 것이 만약 자신의 정신노동 및 육체노동에 대한 절대 시간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짚은 것이다. 박샘 씨는 디자인 관련 업무를 하는데, 이에 따라 사실상 그의 취미생활 또한 자신의 디자인 업무를 확고히 하는 자료수집의 시간이라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 덜 일해서 즐겁다면, 우리는 사실 그 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덜 할수록 즐겁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필요와 선호에 따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좋다고 하는 직장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기한 기사의 박샘 씨가 사무실에 앉아서 있는 시간보다 재택근무 시간이 짧다고 해도 그녀가 덜 일한다고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녀의 노동생산성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몇 배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박샘 씨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기사에 실린 그녀의 인터뷰 내용만을 불 때, 그녀는 업무 시에 능동적 사고로 임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상기한 기사에서 “연세대를 졸업한 조모(26)씨는 지난해 대형 가구 회사에 입사해 연봉 3200만 원을 받았지만 입사 5개월 만에 퇴사했다. 조씨는 “회사가 희생을 강요했다.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이렇게 일해서 뭘 얻는 건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가구를 파는 좀비였다”고 했다.”

사실 조씨는 일의 절대 시간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보다는 가구를 파는 일 자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옳다.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나 살바도르 달리 등이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24/7의 노동을 몇 달 동안이나 계속했다는 사실을 그들의 전기(傳記)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또한 나는 가구를 파는 일이나 은행의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알고 있다. 내가 국책은행에 근무했을 때 나는 그 업무의 기계적이고 단순한 면이 싫었다. 하지만 내 동기들 중에서는 그와 같은 업무를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누가 잘못되었는가? 당연히 내가 잘못되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이,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기꺼이 그 직업을 떠나야 한다.

이어서 박샘 씨와 똑같이 삼포 세대에 속하지만 그녀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보이는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조선일보 2015년 2월 25일 「['달관 세대'가 사는 법] "昇進(승진)보다 저녁 있는 삶… 일 적은 부서로 갈래요"」라는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서울 모 대학을 졸업하고 한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채용된 J(25)씨의 좌우명은 ‘매일 삶의 소소한 재미를 얻는 것’이다. 그는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저 '돈벌이 수단'일뿐’이라고 말했다. J 씨는 오후 6시 반 퇴근을 위해 일하고 회식 자리는 대부분 참석하지 않는다. 그는 ‘욕만 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J 씨는 월급 280만 원으로 삶을 즐기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의 취미는 스티커·공책·볼펜 수집이다. 그는 ‘나는 정규직이지만 거대한 조직 속 한 부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J 씨가 매일 삶의 소소한 재미를 얻고 사는 생활방식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거대한 조직 속 한 부품’이라고 여기는 수동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럼으로써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싫어하지만 정년 보장 등의 ‘조건’들이 마음에 들어 그 직장에 머무는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 자체를 좋아하기보다 그 일터가 제공하는 조건들에 구미가 당겨 그 일을 찾게 될 경우,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에 따라 갈수록 업무에 흥미를 잃어가는 직장인들을 자극하는 방법은 일이 아닌 ‘조건’을 강화하는 것이다. 경영학 이론에서는 이를 ‘인센티브’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보기에는 경영학에서 불필요한 이론이다. 하지만 많은 경영학과 교수들이 인센티브 이론을 중시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상기한 기사에 따르면, “연세대 경영학과 정동일 교수는 ‘기업의 성장 동력은 기업 구성원들에게 연봉 인센티브, 승진 기회 등을 주며 최대 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정규직 달관 세대가 증가하는 것은 기업들을 넘어 저성장에 봉착한 우리 사회 전체의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며 ‘젊은 직장인들에게 연봉, 승진 이외에 다른 동기 부여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자,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연봉이나 승진 이외에 다른 ‘조건’을 덧붙임으로써 다른 ‘동기 부여’를 하는 방식은 결국 수동적으로 사고하는 직장인들의 거지근성을 키울 따름이다. 어떤 이가 자신의 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리 조건을 세게 붙여도 그가 결국 그 일 자체를 사랑할 리는 없다. 기업의 성장 동력은 인센티브나 승진 기회를 주며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일을 진정 좋아하는 직원들을 선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업무 자체를 사랑하지 않고 오직 조건만을 보고 일하는 이는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상황 속에서 조건이 조금이라도 약화될 경우 분노를 금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회사에도 결국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욕만 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일이 재미있을 리 없으며, 그를 바라보는 상사들의 눈길 또한 고울 리가 없다.

내가 J 씨에게 이렇게 모진 까닭은 나 또한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저와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살다가 결국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안해서 그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J 씨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에 해당한다.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지만, 나는 사토리 세대, 삼포 세대, 달관 세대 등 그 무엇이 되더라도 그 안에는 능동적 사고와 수동적 사고가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문제이다.

향후 논의에서 나는 아사히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사토리 세대의 7가지 특징을 앞서 나열된 순서에 따라 능동적 사고와 수동적 사고의 관점에서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을 언급한다는 것을 깜빡한 나 자신을 나무라며,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좋아서 소비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소비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으며 동일하다고 본다. 무엇인가를 진정 필요로 한다면 나는 그것을 진정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말하는 필요(needs)는 결코 생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내가 음악을 너무나 사랑해서 기타를 꼭 사고 싶다면 나는 기타를 필요로 하며, 그에 따른 기타 구매는 합리적 소비이다.

하지만 혹자는 만약 좋아하는 것들이 넘쳐날 경우, 결국 낭비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는 이에 대해 무언가에 진정으로 빠져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하겠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문학을 좋아하고 철학을 좋아하며,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은 동양 및 서양철학 고전들을 읽고 공부하고 글 쓰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여러 고전들을 구매하는데 기꺼이 내 돈을 쓰며, 비록 내 벌이가 시원찮지만 이와 같은 소비가 합리적임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들면 들수록 나는 다른 일들에 시간과 집중력을 뺏기는 것을 원치 않게 되었다. 주자(朱子)나 퇴계(退溪)의 저서는 결코 최신 유행이 무엇인가 잡지를 기웃거리고 요즘 어떤 탤런트가 잘 나가는가 뒤적거리면서 짬짬이 시간 내어 읽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물론 그와 같은 저서들을 읽고 나아가서 2차 문헌들을 독파하는 것은 매우 시간과 정력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것이 가장 즐겁다. 그리고 나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면 벤츠나 람보르기니를 좋아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벤츠나 람보르기니가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니며, 그것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을 폄하할 생각 또한 없다. 하지만 저작에 몰두하는 스피노자나 그림에 미친 고흐가 과연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만들어서 그것에 돈을 낭비할 꿈을 과연 꾸었겠는가?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 드는 대신, 자기 자신을 잃고서 남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거니와 합리적 소비를 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자신의 저술을 위해 종이와 펜을 구입하거나 고흐가 자신의 그림을 위해 붓과 물감을 구입하는 것이 어찌 합리적 소비가 아닐 것이며, 그것 이외에 그들이 과연 무슨 낭비를 했단 말인가. 그들의 전기를 샅샅이 읽어보아도 나는 이른바 ‘과시적 소비’나 낭비를 찾을 수 없었다.

이로써 나는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소비한다는 것’이 서로 다른 뜻이 아님을 밝혔다. 이 논의를 다음 장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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