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주제에 대해 궁금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뜻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실생활 속에서 나 자신이 과연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의외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 것 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외에 소비하는 것을 우리는 마땅히 과소비(過消費)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1년에 1000억을 버는 이가 그 가운데 900억을 매년 쓴다면 그것은 과소비에 해당하는가?
어떤 이들은 아마도 그것이 과소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득 범위 내에서 소비했으므로 그가 무엇에 돈을 쓰건 어떤 이유로 돈을 쓰건 그것은 낭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물 쓰듯이 돈을 뿌리는 미국의 영화배우나 운동선수들 또는 가수들의 소비행태를 일명 ‘돈지랄’이라고 부르며, 매년 900억 원을 그와 같이 쓴다면 과소비가 마땅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앞선 논의를 따르자면, 합리적 소비란 절대금액으로 따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니다. 예컨대 1000억 원의 수입 가운데 900억 원을 쓰면 과소비이고 850억을 쓰면 과소비가 아니라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와 같은 억지 논리는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한다.
또한 합리적 소비란 자신의 소득 범위 내에서 소비한다는 의미와도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앞선 논의를 따를 경우, 자신의 소득 범위 내에서 소비한다 하더라도 타인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물건을 구매한다면 그는 합리적으로 소비하지 않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도리어 사업을 개시하고자 하는 사람이 빚을 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면, 그는 합리적으로 소비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소비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처음 사업하는 사람이 돈을 빌리지 않고 자기 돈만으로 사업하는 경우는 드물며, 이를 비합리적 소비라고 비웃을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앞서 정의한 바와 같이, 소득 수준의 고하를 막론하고 본인이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소비하지 않고 타인이 좋다고 하는 것에 소비하는 모든 소비를 과시적 소비 또는 과소비라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자신의 소득 범위 안에서 소비하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기준으로 삼는 대신 타인의 성향이나 대중의 유행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욕구에 반하더라도 소비한다면, 그는 과시적 소비·과소비·낭비를 저질렀다고 보아야 한다. 제발 이렇게까지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설명 잘 듣고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그 설명을 따를 경우, 제가 매달 100만 원씩 버는데 그중 얼마를 써야 합리적 소비인가요?”라고 질문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논의를 좀 더 구체적인 예를 통해 살펴보자.
사토리군(さとり君)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는 매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물질적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아빠는 신사동의 소문난 대형 성형외과 원장이며, 외동아들인 사토리 군이 요구하는 것들을 그가 돈이 모자라 사주지 못했던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사토리 군은 얼마 전에 친구들과 함께 잠실 롯데월드에 놀러 갔다가 유니클로 매장에 들러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겨울 파카를 발견했다. 파카의 가격은 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귀가한 뒤 엄마에게 자신이 유니클로 매장에서 기가 막히게 예쁜 겨울 파카를 발견했으며, 마침 예전에 입던 옷의 팔꿈치 부분이 찢어져져 옷을 새로 사야 하니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사고 싶다 말한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숨쉬기 운동 및 수다 떨기 운동을 하고 온 뒤라 피곤해서 대꾸할 힘조차 없이 꾸벅꾸벅 졸던 엄마지만, ‘유니클로’라는 단어 하나에 심봉사가 개안(開眼)하듯 눈이 번쩍 뜨여 아들에게 소리친다.
“얘야, 동네 창피하게 유니클로가 뭐니? 네가 유니클로 입고 다니면 동네 아줌마들이 나를 무엇으로 보겠니? 아니, 없는 집 자식도 아니고 우리 외동아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엄마가 훨씬 비싼 옷도 사줄 수 있는데, 남들 보기 부끄럽게 유니클로가 다 뭐니? 같은 동네 다른 집 자식들 입고 다니는 것 좀 보렴. 누가 유니클로를 입니? 시끄러!”
하지만 사토리 군은 그 나름대로 고집이 어찌나 세었는지, 엄마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다음과 같이 퉁명스레 대답하고 말았다.
“아니, 내가 입고 싶은 것 입겠다는데 가격이 무슨 상관이며 동네 아줌마들 평가가 무슨 상관이야? 나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사지 않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옷을 사 입는 것이 낭비 같은데? 내 맘에 들지 않는 옷은 어차피 사놓고 나서도 입지도 않을 것 아냐. 그런 의미에서 보면 원치 않는 옷 사는 것이 진정한 낭비 아닌가? 나는 엄마 친구 아들들이 자기 취향도 제대로 파악 못하면서 단지 요새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잔뜩 비싼 돈 주고 ‘트렌디한’ 옷들을 사 입는 짓거리들이 전부 돈지랄 같아 보이는데? 내가 걔들에게 물어봤어, 진짜 그 옷 좋아하느냐고. 걔들 말로는 아니래. 자기는 딱히 좋은 줄도 모르겠지만, 그냥 잡지에 실린 옷 입고 나가면 그 잡지를 즐겨 보는 여자애들의 환심을 사는데 수월 하대. 개들은 조금 유행 지나면 심지어 그 옷 입지도 않아. 나는 절대 걔들처럼 그러고 싶지 않아.”
“아니 얘가 어디서 남들 듣기 부끄럽게 ‘돈지랄’이란 표현을 써?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너 다른 데 가서도 돈지랄이란 말 쓰고 다니니? 엄마가 너 때문에 남들 보기 창피해서 얼굴 못 드는 꼴 보고 싶어?”
“돈지랄이란 표현을 쓴 건 미안해, 엄마. 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사과할게. 하지만 나는 거친 언어보다 잘못된 소비행태가 더 부끄럽다는 사실을 모르는 엄마가 더욱 낯설게만 느껴지네. 여하튼 나는 내가 점찍어 둔 유니클로 겨울 파카 사 입을 거야. 나는 동네 아줌마들의 평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그 아줌마들이야말로 항상 남들과 자신을 비교해가면서 오만해지거나 비굴해지니까. 아무리 돈을 많이 번들 그 아줌마가 스티브 잡스보다 부자가 될 수 있겠어? 하지만 잡스는 타인의 부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어. 그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해가면서 자신이나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았거든. 나는 그런 사람이 좋더라고. 그의 단출한 패션 또한 마음에 들고. 그가 입은 청바지나 티셔츠가 싸구려는 아니겠지만, 몇십 조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입기에는 다소 수수해 보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는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옷이 아닌 다른 더 비싼 옷을 사 입는 것을 쓸데없는 낭비라 생각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 얘는 어디서 이런 이야기들을 잔뜩 주워듣고 와서 엄마를 설득하려 들어? 내일 엄마랑 같이 XX매장에 가자. 네가 아직 그 매장을 구경해보지 않아서 그래. 하나를 사 입어도 제대로 된 걸 사 입어야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다 뭐니.”
“엄마, 말 잘했어. 패스트 패션 또한 사람들이 잘못 붙인 이름 가운데 하나이거든. 심지어 패스트 패션 회사를 운영하는 일부 사장들 또한 착각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옷이 마음에 들어서 살 생각이지, 결코 그것이 저렴하다고 해서 매 계절마다 입고 나서 버리려고 사려 하는 것이 아냐. 나와 롯데월드를 갔던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야.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옷의 품질이 나쁜 것은 아냐. 하물며 자기가 좋아서 샀는데 왜 그걸 금방 입고 버린단 말이야? 좋은 옷은 계속 입고 싶지 않나? 나는 패스트 패션이라는 말 자체가 유니클로나 자라 등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소비심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또한 그와 같이 잘못된 소비행태가 얼마나 큰 자원낭비와 환경오염 문제를 불러오는지 엄마도 잘 알 것 아냐.”
“우리 아들은 학교 공부는 영 시원찮으면서도 사회 현상에는 엄청 박식하시네. 하지만 학교 공부가 시원찮으면 아무리 사회 현상에 박식해도 결국 패스트 패션만 입다가 세상 하직하실걸? 아이고, 내가 왜 너랑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금지옥엽같이 키운 내 새끼가 거지근성이 들어서 싸구려 브랜드만 입으려 하니, 엄마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어휴, 내 취향을 이제 거지근성이라고 폄하하시니 내가 더 무슨 말을 하겠어. 나 학원 가요. 그리고 두 손 두 발 들었다는 상투적 표현 따윈 그만둬요. 실제로 두 손 두 발 들기는커녕 소파에 드러누워 있으면서 말이야.”
나는 엄마와 아들 간의 유감스러운 대화를 통해서, 능동적 사고방식과 수동적 사고방식의 차이 및 합리적 소비와 과시적 소비의 차이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패스트 패션’에 관한 능동적 사고방식과 수동적 사고방식의 차이가 대화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부연 설명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