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사토리 세대는 필요 이상 소비하지 않는다?-3

하야리 양(はやり樣)은 사토리 군과 동갑인 고등학생이다. 집안이 크게 넉넉지는 않으나, 먹고살기에 어려움은 없다. 하야리 양의 부모는 그녀에게 물려줄 만큼 충분하지는 않으나, 그녀에게 손 벌리지 않고 평생 살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 그녀의 부모는 혹여 궁해지더라도,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 따위는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하야리 양의 부모는 ‘남들에 비해’ 넉넉지 못해서 하야리 양에게 대치동의 부모들처럼 고가의 사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데 대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야리 양도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감사하며 산다.

그런데 하야리 양은 얼마 전부터 겨울철에 고가의 아웃도어 브랜드의 겨울 파카를 아이들이 마치 교복처럼 입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가 보기에 그 브랜드의 제품들은 지나치게 비쌌으며, 실제로 그 아웃도어 브랜드는 본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을 타깃으로 삼지 않은 듯했다. 그 브랜드에서 내놓는 가장 저렴한 상품조차 50만 원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교복처럼 너 나할 것 없이 입고 다니는 제품은 제일 저렴한 축에도 속하지 않았다. 즉 60~70만 원은 지불해야 비로소 아이들이 너도나도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바로 그 제품을 살 수 있었다.

하야리 양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정 형편상 그와 같은 옷을 살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아빠는 유니클로에서 옷을 주로 사 입으셨으며, 엄마는 주말에 동대문에 나가서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옷을 저렴하게 구입하셨다. 하야리 양은 주말에 엄마와 같이 나들이하는 것이 매우 즐거웠으며, 엄마가 “패션의 기본은 돈이 아닌 시간이지!”라고 흥얼거리면서 몇 시간씩 자신의 맘에 드는 옷을 찾아 매장을 돌아다니고, 마침내 바로 ‘그놈 it item’을 찾게 되면 기뻐서 하야리 양에게도 옷 한 벌을 쾌척하거나 그도 아니면 맛있는 군것질거리를 사주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이제 그 아웃도어 브랜드의 옷을 사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날 조심스레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요새 xx의 겨울 파카를 입지 않으면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질 않아. 행여 같이 놀더라도 yy보다 더 싼 옷을 입으면 놀리기까지 한다고. 나, 다른 것 다 필요 없으니까 그 옷 하나만 사주면 안 돼? 그러면 내가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엄마 아빠에게 잘할게.”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의 이와 같은 요청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평소에 이와 같은 요구를 하지 않던 딸이 용기 내서 하는 말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 그래서 그 옷이 얼마인데?”

“60만 원인데, 노세일 브랜드라서 어차피 더 싸게 살 방법이 없어. 조금 비싸기는 한데, 한 번 사면 10년은 입을 수 있으니까 괜찮지 않아?”

평생 동안 60만 원짜리 옷을 사 본 적이 없던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인스턴트커피 믹스 봉지를 놓칠 뻔했다. 하지만 평소에 비싼 옷을 사달라는 말이 없던 딸이 이렇게 얘기할 정도라면, 정말로 이 옷을 입지 않을 경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마의 마음속을 엄습했다. 이제 엄마는 인스턴트커피 믹스 봉지로 이마를 쿡쿡 쑤시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 비싼 옷을 사 입지 않아도 지금까지 충분히 행복했는데, 요새 애들은 이제 그 정도로는 만족을 못한단 말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수입이 70만 원인데 10만 원의 옷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면 나머지 60만 원으로 또 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거니와, 60만 원짜리 옷을 사버리면 삶의 여타 영역에서 10만 원 만을 갖고서 어떻게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아니, 이건 돈의 액수 문제가 아니야. 정말로 애가 너무 그 옷이 갖고 싶다면, 부모가 자기 옷을 사지 않더라도 사 입혀야지. 우리 애가 학교에서 기죽고 다니면 어떻게 해. 그런데 나 어릴 적에는 옷 가지고 상대방을 기죽이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었는데, 요새 애들은 왜 옷 같은 것으로 상대방을 폄하할까?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 걸까? 그게 시대 문제 같지는 않은데. 정말 부모로서 미안하기 짝이 없네. 다 돈을 못 버는 나 같은 부모를 둔 탓이지,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못 버는 부모가 자식에게 죄인이지, 달리 죄인이겠어. 이놈의 썩은 자본주의 사회. 모든 걸 돈으로 평가하지. 아이고, 불쌍한 내 딸. 평소에 뭐 하나 사달란 말없이 항상 즐겁게 학교 다녔는데 어쩌자고 60만 원짜리 겨울 파카 하나 사는 데에도 손을 달달 떠는 부모를 만나서 이렇게 말 한마디 꺼내기가 힘들꼬.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도저히 말이 먹힐 것 같지 않은데. 어휴, 어쩌자고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가는고.’

지금까지 동대문에서 옷을 사 입고 다니면서도 너무나 행복했던 모녀는 난데없이 고가의 겨울 파카 하나로 끙끙 앓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난 갈등은 전혀 없다. 그녀의 엄마는 마음속으로만 이와 같이 고민하고 있으며, 심지어 남편에게는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선에서 어떻게든 이 문제를 끝내야겠어. 올 겨울 내 옷과 애 아빠 옷은 사지 말고, 다음 달에 잡혀 있는 부부동반 여행도 취소해야겠어. 그러면 대충 애 옷은 사줄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엄마의 속 깊은 고민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하야리 양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말한다. 그녀는 엄마의 기나긴 침묵 속에 흘러가는 생각을 모조리 읽기라도 한 듯 애써 쾌활함을 과장하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엄마,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고 제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매장에서 옷을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아. 중고 제품을 판매한다고 해서, 제품 자체가 후지거나 그렇지는 않아. 요새는 애들이 남의 새 옷을 몰래 훔쳐다가 인터넷 매장에 올리거든. 그래서 옷들이 다들 새로 산 것이나 다름없어. 자전거도 그렇더라고. 고급 MTB인데도 애들이 죄다 훔쳐서 팔기 때문에, 새 것 마냥 반짝반짝해. 뭐, 훔친 것이든 뭐든 내가 훔친 건 아니니까. 구입할 때는 그 옷이 훔친 건지 어쩐지도 모를 일이고. 어차피 겨울 파카 새로 사야 하니까, 원래 잡혀 있던 예산으로 구입할게요. 그 돈만 제게 주세요.”

하야리 양은 뭔가 이야기하려는 엄마에게 더 이상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학원을 간다는 핑계로 집을 나선다. 그리고 속으로 흐느낀다.

그녀는 훔친 옷을 살 생각도 없고, 더군다나 남들 입던 겨울 파카를 중고로 살 생각 또한 전혀 없다. 심지어 그 파카는 예쁘지도 않고 개성도 없으며 쓸데없이 두꺼워서, 그녀의 맘에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남들이 입기 때문에 그녀 또한 입어야 한다. 이제 그녀는 엄마와 마찬가지로 겨울 파카를 미워하기 시작했으며, 겨울 파카를 만든 회사 또한 미워하고 나아가서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이 사회 전체가 썩어빠진 것만 같고 친구들도 꼴 보기 싫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파카를 사야 하겠기에, 이제 그녀는 학원을 한 달만 쉬고 대신 그 시간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돈과 한 달 치 학원비,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합치면 파카를 사고 용돈까지 충당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을 것만 같다. 무한경쟁사회에서 도태되어서는 안 되며 옆에 앉은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라고 열변을 토하는 학원 선생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하야리 양은 생각한다. ‘내 주변 친구들의 가정도 살림살이가 우리 집보다 딱히 나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걔들 모두 저 파카를 입고 다닐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다들 돈을 마련하는 것일까.’ 그녀는 알지 못한다. 모든 가정들이 똑같이 고민하고 똑같이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들 그 파카를 꼭 입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의 필요가 아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 파카를 구매하고 그에 따라 등골이 휘어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모두들 탐탁잖은 일들을 모두들 하면서 서로를 괴롭히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행복한 이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낭비벽이 심한 사람은 결코 아니야. 다만 남들 입는 파카 하나 사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뿐이지. 물론 이제 남들 입는 파카를 억지로 사게 되었으니 앞으로 남들 하는 것들은 모두 다 맞춰야 할 판이고, 그러자면 돈이 더 필요하게 될지도 몰라. 여하튼 엄마를 속이고 학원을 나가지 않는 것은 미안하지만, 딱 한 번이니까. 죄송해요, 엄마.’

하야리 양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려 들지 않고, 타인의 기준에 따라 소비하고자 한다. 나는 앞서 이를 ‘과시적 소비’라고 명명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베블런이 지적한 유산계급의 소비행태만을 과시적 소비로 보지 않는다. 자기만족을 도외시하고 오직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소비는 모두 과시적 소비로 간주된다. 그리고 과시적 소비가 곧 과소비이며 낭비이다. 이는 상기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적으로 과소비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 가족의 소득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비싼 옷을 그것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 따라서 구매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급생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전까지는, 자기 엄마가 동대문에서 사주는 옷에 충분히 만족했다. 그녀는 자기가 사고 싶은 옷을 세심하게 골랐으며, 오직 자기 마음에 드는 옷만 자기 필요에 의해서 구입했다. 그녀는 행복했으며 어떤 불만도 없었고, 그녀 가정이 유복하지는 않지만 행복을 누리는 데에는 전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불행의 나락으로 끊임없이 추락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이 때로 겪을 수 있는 가장 미묘한 착각을 여기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주로 어릴 때부터 자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지 못하고 항상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서 행동했던 ‘어른들이 보기에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그들은 하야리 양의 경우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남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서 저 파카를 샀어요. 그러니까 제가 저 파카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사실 아닌가요?”

이 논리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간단하다. 저와 같은 아이들은 남들이 좋아하니까 자기도 따라 좋아하며, 동시에 남들이 싫어하면 따라서 싫어한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모든 고등학생들이 입고 다니던 비싼 아웃도어 브랜드의 제품을 ‘유행이 지나자마자’ 다시 아무도 입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옷을 여전히 입고 다니는 아이들은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받는다. 유행에 뒤떨어졌거나 새로운 옷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예전에 유행하던 옷을 여전히 입고 다닌다면서 말이다.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진정 자신이 좋아해서 그 옷을 입었다면, 남들이 싫어하거나 더 이상 입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 또한 그 옷이 싫어질 이유가 없다는 점을 말이다. 만약 자신이 유행에 따라 그 옷이 좋아지고 싫어진다면, 자신은 적어도 그 옷에 대해서는 전혀 주체적인 선호를 갖고 있지 않는 수동적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2014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신해철은 1999년 발표한 󰡔모노크롬 Monocrom이라는 솔로 앨범에 실린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곡에서 끊임없이 사자후를 토해낸다. “그냥 되는 대로 사네. 사는 대로 사네. 가는 대로 사네. 그냥 되는대로 사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먹었도록 그걸 하나 몰라. 그 나이를 먹었도록 그걸 하나 몰라.”

어른이 된다고 해서 수동적 사고방식이 능동적 사고방식으로 변하진 않는다. 도리어 어른들은 자신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강화하는 경우가 잦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쓴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 목사는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항상 타인이 원하는 대로 삶에 따라서,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가짜를 진짜로 알고 지낸다.

평소 자신의 내적 욕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은 제아무리 학벌이 좋고 재산이 많아도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당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요? 당신이 혹시 하지 않게 되더라도 진짜로 원하는 일이 뭐요?”라고 하면 의외로 쉽게 대답하지를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분명히 아는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 같은 천재들이며, 보통 사람들은 평생토록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다만 자기 스스로 타인의 견해를 좇느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할 따름이다. 이제 다음으로 사토리 세대가 명품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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