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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송크란 인 카오산 (1)

1. 수안나품 공항(Suvarnabhumi Airport)에 도착하다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이동하는 단기 해외여행자에게 공항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 간 찬우가 40분이나 지나 헐레벌떡 달려오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는 바지의 지퍼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채 허겁지겁 달려와 사과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설명에 따르면, 그는 사정이 너무 급한 나머지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여자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실 양 옆 칸에서 각각 거사를 치르고 계신 여성분들의 분뇨에서부터 올라오는 똠양꿍 냄새로 인해, 자신이 진정 태국에 왔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세계 속에 스스로를 너무도 오래 가두었던 탓에 이와 같은 종류의 농담 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찬우의 넋두리를 다른 방향으로 트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찬우야, 그래서 옆 칸에 계셨던 여성분이랑 세면대에서 마주치기라도 한 건 아니고?” “아냐, 다행스럽게도 내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어. 운이 좋았지. 하지만, 나는 쪼그리고 앉아 칸막이 아래로 드러난 신발을 눈여겨보아 두었던 덕분에, 내 옆에서 무지막지한 사투를 벌였던 분이 내 뒤를 이어 화장실을 빠져나오자마자 이내 알아챌 수 있었지.” “예뻤나?” “아줌마야.” “그래, 그럼 됐어. 택시 타러 가자.” 

총각들의 대화가 ‘아줌마’에 이르자마자 그들이 돌연히 대화를 단절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광경은 어쩔 때는 소름 끼치기까지 한다. 물론 우리들이 총각 일반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 말을 바꾸어야겠다. 우리 둘은 대화가 아줌마에 미치면 즉시 말을 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거나 침묵한다. 그리고 매우 신사적 이게도, 우리는 유부녀에 대한 상스러운 잡담 또한 삼간다. 물론 정말로 자신을 잘 가꾼 유부녀들이 웬만한 미혼녀보다 아름답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실제로 유부녀들이 우리들을 유혹한다 해도 그녀들의 도발에 응할 생각이 없으므로, 자연히 유부녀들에 대한 잡담 또한 외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비 유부녀만큼은 아닌가 보다. 

인천 공항을 출발해서 수안나품 공항으로 향하는 여객기 내 옆자리에 예비 신부 둘이 앉았다. 이탈리아인처럼 생긴 내 외모에 놀라서 영어로 쭈뼛쭈뼛 말을 걸던 그녀들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자, 무안해하면서 자신들이 사 온 과자 일부를 내게도 권했다. 그리고 내가 과자봉지를 뜯느라 얼굴이 터질 듯 빨개지는 동안,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네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한 부모에서 난 듯 외모가 닮은 그들은-같은 의사에게 성형수술받은 이들을 남녀 구분 없이 의남매(醫男妹)라고 한다- 각각 올해 10월과 11월에 결혼 예정인데, 남편의 허락을 받고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를 태국에서 즐길 예정이라 했다.

브라이덜 샤워는 총각파티(bachelor party)만큼이나 내게는 생소했는데, 비록 그녀들이 신세대 예비신부를 대표하는 입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여하튼 그녀들의 결혼 전 행보는 내게 매우 놀라웠다. 그녀들은 평소에도 클럽을 같이 다니는 멤버였는데, 결혼 전에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없는 태국 클럽에서 마지막으로 신나게 불태워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초면인 내게 클럽에서 불태울 예정이라며 이내 자기 눈에서 불을 활활 태워 보이는 예비신부들의 기세에 나는 움찔했다. 클럽 다니는 것이 결코 죄는 아니지만, 처음 보는 남자에게 예비신부들이 그렇게 비행기가 떠나갈 듯이 신나게 외칠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이분들은 어찌 이리 거리낌이 없을까.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와 떨어져 앉아 있던 찬우가 내게 윙크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나는 그 손가락을 그대로 들어 윙크한 찬우의 눈을 쑤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이 아래를 뽕으로 단단히 받쳐 올려 영혼까지 끌어 모은 자신들의 가슴 위로 과자 부스러기를 연신 흘려댈 때마다, 그것을 대신 털어주고 싶은 남자다운 매너심도 덩달아 솟구쳤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자기 얘기만을 떠들고 내 얘기를 들을 의사가 전혀 없던 그녀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예비신랑과 여타 남자들을 비교·평가하는 자기들만의 긴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목 뒤에 쿠션을 단단히 받친 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깊이 잠든 덕분에, 옆자리의 예비신부들이 나를 깨우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식사를 받아서 먹다가, 맥주를 내 바지에 엎지른 뒤 놀라서 티슈로 내 바지를 닦아주는 과정에서 내 물건을 툭 건드릴 때까지 나는 깨지 못했다. 나는 디펜스 착용을 까먹고 외출했다 낭패를 본 요실금 환자처럼 엉거주춤 일어서서 젖은 바지를 내려다보았는데, 그녀들은 죄송한 마음에 정신없이 문질러 닦다가 문득 자기 손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알고 화들짝 놀라 거듭 사죄했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여성의 손길이 내 물건에 닿았으니 이번 태국여행에서는 여성들과의 즐거운 추억이 잔뜩 생길 것이라 한심한 상상을 이어가던 나는, 내 바지만 더럽힌 줄 알았던 맥주가 그녀들의 비싼 드레스에도 엎질러져 있는 광경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그녀들은 클럽 밀집 지역인 에까마이(Ekkamai) 근처 텅러(Thong Lo)역 주변에 호텔을 잡아 두었으며, 숙소에 짐을 던져놓자마자 곧바로 클럽으로 출격할 예정이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미 클럽 복장을 완벽히 갖추었는데, 거기에다 맥주를 쏟았으니 그녀들이 얼마나 분했겠는가.

스타일리시한 외모와 달리 쌍욕을 투덜투덜 늘어놓으며 치마를 닦던 그녀들은 이내 곯아떨어졌고, 이제껏 숙면을 취해 정신이 맑은 나는 앞좌석 수납 그물주머니 속에 꽂혀 있던 잡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이내 지겨워져 나는 그 책자를 무릎 위에 얹은 뒤 눈을 감고, 해결하지 못한 채 한국에 내버려 둔 여러 문제들 및 그와 관련된 내 개인적인 사정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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