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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8 팔당역에서 대성리역까지 걷기

슬로 앤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제안

일요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10km 슬로 조깅을 마치고 들어왔습니다. 샤워를 하고 소변을 보는데 혈뇨가 나왔습니다. 장거리 러닝을 하는 이들에게는 가끔 발생하는 일입니다. 사전 정보가 없을 경우 매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면 해소되는 일입니다. 월요일 새벽 슬로 조깅은 건너뛰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샤워를 끝내고 나서도 7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녁 7시 약속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기에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풀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팔당역에 가서 능내역(폐역)까지 걷고 오자고 결심했습니다.

http://100marathonsclub.com/bbs/board.php?bo_table=study&wr_id=148&page=2


일단 모자는 카모 무늬가 조야하게 박혀 있는 사파리 모자입니다. 윗부분의 통기성이 좋아 시원하기도 하고 챙이 넓어 얼굴을 잘 가려주며, 무엇보다 목덜미까지 충분히 덮어줘서 살이 타는 것을 예방해줍니다. 이 모자의 기능은 매우 뛰어나지만 사실 그다지 예쁜 모양은 아닙니다(제게 있어서). 하지만 40대 아재가 뭔 남의 눈치를 보면서 패셔너블하게 다니겠습니까. 낮 기온이 35도를 넘어서는 뙤약볕에 몇 시간 걷기로 마음먹었으면 저 모자가 딱입니다. 마트에 가면 가끔 2개에 1만 원에 팔기도 합니다. 저는 작년에 그렇게 샀습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moduwa2/products/5453415661?NaPm=ct%3Dkr9zitd4%7Cci%3D7e5ea7fdb75b959327af8e52a5dd9e031a11270e%7Ctr%3Dslsl%7Csn%3D1918768%7Chk%3De4fd05b713daeba7990208ee5595bf8a58dfd42a

장거리 러닝을 하는 분들께서 여름에 가장 염려하시는 신체 부위 중의 하나가 바로 손등입니다. 암 슬리브 등을 어렵게 갖춰 입어도 손등은 여지없이 타게 되지요. 그래서 팔뚝은 하얀데 손등만 시커먼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도 이 때문에 고민이 많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는데, 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서 구입한 장갑이 딱 좋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RGzw7W53io

바로 골프 캐디 장갑입니다. 쿨 소재로 되어 있어 몇 시간 동안 끼고 땡볕 속을 걸어 다녀도 더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맨손보다야 덥지요. 하지만 통풍이 잘 되고 땀띠가 생길 위험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제품 광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좋은 것은 공유해야죠.

그 외 유니클로 바람막이 점퍼와 반바지, 낡은 운동화와 신용카드, 스마트폰 등을 갖추니 이제 준비 완료!

아 장거리를 걷거나 뛰는 분들에게 정말로 유용한 정보 하나 더 제공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해파랑길 속초-양양 코스를 도보 여행하다가 양말에 구멍이 나서 물집이 잡히는 바람에 일찌감치 귀경했던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장거리 걷기나 달리기를 할 때 의외로 중요한 장비가 양말입니다. 하지만 나이키나 CEP 등 손꼽히는 양말 회사들의 제품은 너무도 비쌉니다. 이 때문에 가성비와 성능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양말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데요. 배드민턴 양말 회사로 유명한 키모니의 중목 양말을 추천합니다. 가격은 한 켤레 1000원대 중반이며 발목을 잘 잡아주고 미끄러지지 않으며 바닥도 튼튼합니다. 배드민턴 경기를 상상해보시면, 양말의 기능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겠죠. (저는 키모니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catalog/27534848523?query=%ED%82%A4%EB%AA%A8%EB%8B%88%20%EC%96%91%EB%A7%90&NaPm=ct%3Dkr9zv84g%7Cci%3D71210abd1a051eb889fb2996a798c14a6ace5e46%7Ctr%3Dslsl%7Csn%3D95694%7Chk%3Dc8c687d286a98bdc365b2f71b5802b4262199878


휴, 지금까지 내용은 마라톤 유튜버들이 러닝화나 기타 장비 리뷰를 하는 것과 비슷하구나 정도로 이해해 주십시오. 아무튼 저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 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근질근질하여 참지 못해 집 근처 마들역(7호선)에서 지하철을 잡아 타고 팔당역에서 하차했습니다. 오전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는데, 벌써부터 신나게 걸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16:8 간헐적 단식을 제1원칙으로 삼고 있기에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에는 오전에 식사하는 일이 없지만, 오늘은 10km 조깅을 한 뒤에 다시 땡볕 아래 걸어야 할 것 같아서 팔당 초계국수에서 과감하게 브런치를 하기로 합니다. 영차영차 팔당 초계국수까지 걸어갔는데, 9시 30분에 오픈이더군요. 일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팔당역에서부터 걸어가려는 괴짜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주말 라이더들은 복장에서부터 벌써 남다르거든요. 자전거를 빡빡하게 세워놓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라이더들은 가게문이 열리자마자 썰물처럼 밀려들어갑니다. 저 또한 그들 사이에 떠밀려서 들어가 테이블에 자리 잡고서 초계국수를 주문합니다. 빈 속에 차가운 냉국수를 먹으면 나중에 속이 불편해질까 걱정도 되었지만, 북한강 자전거길 코스에는 화장실이 곳곳에 꽤나 많이 있습니다. 티슈만 넉넉히 가지고 있으면 염려할 것이 없겠지요.(간혹 휴지를 갖춰놓지 않은 곳도 있으니까요) 우사인 볼트마냥 슬로~ 슬로~ 우걱우걱 꼭꼭 면과 채소, 그리고 닭고기를 씹습니다. 많이 씹어서 넘겨야만 섭취와 흡수를 담당하는 제 내장 기관들이 에너지를 덜 쓸 것이고, 그 남는 에너지를 걷는 데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식사를 마치고 티슈를 주머니 속에 넉넉히 챙긴 뒤, 손에 500ml 물병을 하나 들고 본격적으로 도보여행에 나섭니다. 저는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갔더랬습니다. 그때 이탈리아 로마에서 볕에 포로 로마노를 비롯한 고대 유적들을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땡볕 아래 걷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피부가 타는 것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정없이 내려쬐는 태양 아래서 걷는 것이 너무도 좋습니다. 그렇게 걷고 나서 시원하게 샤워할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주말에 팔당역에서 능내역으로 걸어가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자전거들과 라이더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전거 전문가가 아니라, 수많은 형태의 자전거들을 일일이 다 구별하여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보다도 장애를 지니신 분들이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 뚱뚱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투덜거리며 자전거를 몰고 가는 초등학생 딸의 모습, 자전거 경력이 최소한 40년은 되어 보이는 비쩍 마르신 어르신들이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전거를 몰고 가는 그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습니다. 주말 팔당역 주변은 정말로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띄엄띄엄 나타나는 난데없이 푸근한 카페들도 보기 좋고요.

장거리 달리기를 즐겨하다 보면, 거리 개념이 점차 바뀌게 됩니다. 가령 목적지까지 5km 정도 남았다고 카카오 맵이 알려주면, "아, 1시간 조금 안 되게 걸으면 도착하겠구나."라고 별 고민 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거리 걷기나 달리기를 즐기지 않을 경우, 한여름 뙤약볕 아래  5km 걷기는 정신 나간 짓입니다. 저는 한여름 대낮에 장거리 달리기는 추천하지 않고, 제 스스로도 절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걷기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충분한 수분 공급만 이루어진다면, 저는 한여름 낮에 걷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능내역에 도착해서 다시 팔당역으로 돌아가려니, 괜히 뭔가 아쉽습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대성리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자고 마음먹습니다. 18km 남짓 더 걸으면 되니까, 평균 시속 5km로 걷다 보면 4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다. 걷는 도중에 사람이 없어서 마스크를 귀에 걸치고 있다가 그만 강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운길산역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가서 1500원짜리 대형 마스크를 하나 삽니다. 제가 장갑으로 입을 가리면서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으니,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이 마스크 포장을 뜯어서 제게 건넵니다. 이미 더위로 말이 아닌 몰골을 한 제게 베푼 작은 친절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운길산역을 지나 대성리역까지는 그냥 외길입니다. 길을 잘못들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이래서 저는 진격의 거인처럼 땡볕을 즐기며 마냥 걸어갑니다. 운길산역 근처 물의 정원에는 더위를 잊은 커플들이 북한강을 바라보며 그늘 밑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땡볕 아래에서 싸우는 커플도 있네요. 대성리역으로 가는 길에는 딸기라떼를 판매하는 농장이 여럿 나옵니다만, 오늘은 거기에서 시간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녁 약속이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제 오른편으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북한강 모습을 정신없이 즐기며 걷고 또 걷습니다.

걷다가 덥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면, 국토종주를 다룬 유튜브 방송을 아무것이나 찾아서 들으며 걸어갑니다. 개인 사정상 1년 이상은 국토종주 도보여행을 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지금 제 버킷리스트 1번이 바로 도보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를 이미 성공리에 마친 유튜버들의 후기를 듣다 보면, 가슴이 끓어오릅니다. 걷기도 좀 더 수월해집니다. 12시를 넘기자 서울로 돌아오는 라이더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저는 그들과는 반대편으로 걷고 있지요. 라이딩의 목적은 여러 가지이며, 어느 것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령 서울-부산 국토종주를 하루 만에 마치는 분도 있으시고, 일주일 이상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슬로 라이프의 입장에서는 최소한 6일 이상은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상실하고 자기 비하에 빠졌을 경우, 뭔가 작은 성취라도 필요할 경우, 용감하게 나서서 서울-부산을 뒤돌아보지 않고 최고의 힘을 다해 달려 내려가는 것도 좋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이니까요.   


대성리역으로 접근할수록 점점 편의점이 늘어납니다. 저는 물을 이미 다 마신지라, CU 한 곳을 방문해서 500ml 물병을 2+1으로 구입하고 내친김에 닭가슴살 샌드위치도 하나 추가했습니다. 편의점 밖에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서 물을 마시면서 샌드위치를 뜯자니, 정말 천국도 이런 천국이 없습니다. 대성리역까지는 7km 정도 남았습니다. 연료를 가득 채웠으니, 이제 또 신나게 걸어가면 됩니다. 자전거길을 따라서 걷다 보니 도보 코스보다 약간 더 걸었지만, 본디 걷자고 시작한 일인데 구태여 단거리를 갈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자전거길이 훨씬 예쁘거든요. 여차저차 걷다 보니 제가 자주 방문하는 "히든 플랜트"가 나오고 어느새 대성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자주 마주쳤던 라이더 한 분이 그늘에서 땀을 씻고 계십니다. 사실 한여름에 자전거를 빡세게 타다 보면, 힘이 들어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걷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업힐이 많을 경우 그렇겠지요.

오늘 물을 몇 리터 마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성리역 화장실에서 작은 일을 보니, 혈뇨는 없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리는 꽤 묵직해졌습니다.


저는 다이어트의 경우에는 10km 달리기보다 한여름 땡볕에서 아침 공복 상태에서 40km 도보 여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시속 5km로 걷는다고 하면, 8시간 걸으면 충분합니다. 아침 첫 지하철을 타고 나서서 7시경부터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출발하여 4시간가량 걷고 점심 먹고(간식은 금지) 다시 4시간 정도 걷고 귀가하면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가급적 멈춰 쉬지 말고 풍경을 보면서 걷다 보면 정말로 놀랄 정도로 살이 빠질 것입니다. 달리기와 걷기는 보폭 면에서 2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이 10km를 이동해도 발걸음 수는 2배 이상 차이가 나겠지요. 다소 빠르게 걸을 경우, 특히나 40km 정도 걸을 경우 다이어트의 효과는 달리기보다 부상의 위험이 적으면서도 무척이나 뛰어납니다.

 


걷는 시간보다는 자주 다니지 않는 경춘선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지루합니다. 저는 이렇게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합니다. 귀가해서는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물이나 간식을 먹은 뒤에 다시 저녁 약속을 나가야 하겠지요. 묵직한 종아리를 만지면서, 여름 땡볕에 뭐하는 짓인지 끌끌 혀를 차면서도, 그래도 오늘 하루는 벌써 충분히 즐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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