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오전 4시 40분입니다. 밖은 아직 어둡습니다. 햇볕은 없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합니다. 이만하면 슬로 조깅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달리기 전에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므로, 책상 위에 놓아둔 물병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켭니다. 양말을 주섬주섬 꺼내 신고 신발을 발에 끼우자마자 문을 나섭니다. 일단 집 밖을 나서면 반 이상 성공한 셈입니다. 집 밖을 나가기가 어렵지, 나가고 나서 다시 들어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달리기 출발점으로 가는 데까지는 약 1.2.km가 걸립니다. 슬로 조깅은 스트레칭을 반드시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스트레칭해서 나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칭은 재미가 없으며, 나아가서 순수하게 달리는 즐거움을 빼앗아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기록 경신을 위해서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면 반드시 사전에 동적 스트레칭을 실시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슬로 조깅의 경우에는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를 따름이기 때문에 스트레칭을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참고로 조깅을 마친 뒤에는 가볍겍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은데, 이때에도 정적 스트레칭이 아닌 동적 스트레칭이 좋습니다. <본 투 런>에 나오는 울트라마라톤 종족인 타라우마라 족들은 밤새 술 마시고 떠들다가 갑자기 100km 넘게 달립니다. 그들은 심지어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도 스트레칭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수만 년 동안 인류는 달렸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스트레칭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현대 인류는 몸이 굳어져 버린 것일까요? 아니, 온종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도 스트레칭 한 번 하지 않지만 전혀 달리기 관련 부상을 겪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출발점에 서서 나이키 러닝 커뮤니티 앱(NRC)을 켭니다. 3! 2! 1!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양쪽 팔을 L자로 만들되, 좀 더 편안하게 늘어뜨립니다. 손목에 힘을 주지 않도록 엄지손가락을 살짝 든 채로 가볍게 주먹을 쥡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달리면서 수시로 풀어줍니다. 마치 뒤에 있는 방석을 때리듯이, 팔을 앞으로 치지 않고 뒤로 칩니다. 팔 뒤꿈치로 뒤에 오는 친구를 장난스레 가격하듯이 리듬을 주어 가볍게 탁탁 뒤를 칩니다. 물론 뒤에는 아무도 없지만 말이죠. 팔이 최대한 몸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팔이 옆구리를 스치듯이 가볍게 흔듭니다. 팔꿈치로 뒤를 치는 자세를 유지하면 상체가 곧게 펴진 상태로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FORE FOOT 또는 MIDDLE FOOT 주법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아마 둘 사이에 있는 듯합니다. 완벽한 전족부 착지는 분명히 아니지만, 뒤꿈치 착지는 전혀 아닙니다. 상체가 앞으로 약간 기울어지지 않고 똑바로 선다면 뒤꿈치 착지가 이루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슬로 조깅은 걷기보다 조금 빠른 정도이므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뒤꿈치 착지 주법이 되기 쉽습니다. 사실 이제 주법에 관해서는 어느 것이 옳으냐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어떤 주법이 자신에게 맞느냐가 더 중요한 듯합니다. 제게는 전족부 착지가 더 편하고 잘 나가는 듯합니다. 오늘은 지난주보다 아침해가 늦게 뜨는 듯합니다. 그래도 10km를 뛰는 대신 5km로 만족하기로 합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10km를 매일 뛰다가는 거덜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환점을 돌아서 타박타박 뛰어오는데, 평소에 자주 지나치던 러너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솟았는데. 제가 지난 목요일에 홍천 도보여행을 가고 어저께 홍대 도보여행을 가서 아침 슬로 조깅을 못했을 때, 그분들도 똑같이 느끼셨을까요?
어느덧 출발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 슬로 조깅 기준은 5km 30분, 10km 1시간보다 절대 더 빨리 뛰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속 10km도 사실 일반적인 슬로 조깅 권장 속도보다는 훨씬 빠릅니다. 이보다 무조건 더 늦게 뛰어야만 합니다. 특히 다이어트를 염두에 둔 분들께서는 빨리 뛰기보다는 "오래" 뛰기를 생각하셔야만 합니다. 동일한 거리를 작은 보폭으로 많이 뛰면 뛸수록 우리의 똥배는 그만큼 더 출렁이고 우리의 내장은 더 많이 자극받습니다. 개인적으로는 6~7km의 속도로 하루 4시간 정도 걷는 편이 아침 러닝보다 다이어트에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제 슬로 조깅의 최대 속도는 시속 10km입니다.
슬로 조깅을 마치고 제자리에 서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다 보니 온몸에서 샤워한 것처럼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뛸 때에는 땀이 나지 않다가 제자리에 서면 땀이 비 오듯 내리는지 항상 궁금합니다. 집까지 다시 1.2km를 걸어가다가 참지 못하고 편의점에 들러 1+1 초콜릿 우유를 구매합니다. 가끔씩은 이렇게 자신에게 선물도 주는 게 좋더라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초콜릿 우유가 좋은지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러닝 커뮤니티를 가보면 저 외에도 초콜릿 우유 예찬론자가 제법 있더군요. 이렇게 양손에 초콜릿 우유를 하나씩 들고 흠뻑 땀에 젖은 채 귀가합니다. 확실히 아침 슬로 조깅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좋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뛰는 중랑천 코스를 안철수 전 의원도 달리는 장면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제게 매력이 없는 분입니다만, 차라리 "안철수와 함께 아침에 5km 중랑천 달리기" 운동이라도 실시해 주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귀가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