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능동적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이 ‘남들이 명품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이유가 잘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남들이 좋다고 평가하는 ‘명품’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에게는 전혀 ‘명품’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타고난 기질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자신만의 명품’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세계 1위의 와인이나 세계 1위의 맥주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런 외부 기준으로 타인들을 설득하거나 무시하려 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명품이라고 해서 내게 명품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으며,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명품을 확정하는 보편타당한 기준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명품에 대해서 그토록 신경을 써야 한단 말인가.
앞선 예를 이어가자면, 2016년 1월 현재 일부 고등학생들은 60만 원대 아웃도어 브랜드도 성에 차지 않아,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아웃도어 브랜드를 넘본다 한다. 그것은 진정 비싼 브랜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고급’이거나 ‘명품’인가는 또 전혀 다른 문제이다. 타인의 평가를 일체 배제하고 오직 자신의 감각과 취향을 믿고서 그 브랜드를 평가하라. 그러고서도 그 브랜드가 정말 좋으면 그때는 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 경우의 소비는 마땅히 합리적 소비이자 능동적 소비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100만 원이 넘는 옷을 단순히 유행에 따라 산다는 것은 스티브 잡스 같은 세계적인 부자조차도 마땅치 않아할 일이다. 단 돈 한 푼이라도 쓸데없이 쓰면 그것이 곧 낭비이자 수동적 소비이다. 가격의 높고 낮음은 전혀 상관이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능동적 사고방식을 지닌 이라고 해서 루이비통이나 샤넬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고 필요로 한다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사토리 세대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일본의 20대 초반 젊은이가 단지 명품이라 불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루이비통이나 샤넬 제품을 도외시한다면, 그는 사실 또 다른 수동적 사고방식에 얽매어 버린 것이다. 즉 그는 ‘명품이면 다 꼴 보기 싫다’는 어떤 특정 집단의 기준을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받아들여 자신의 잣대로 삼은 것일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옷을 사 입는다.”와 관련해서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맞춤복 선호 현상에 대해서 언급하며 본 장을 끝맺고자 한다. 한국경제 TV 2014년 12월 22일 자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맞춤` 옷이 대세... 왜?」라는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자신을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각광받는 시대다. 휴대폰 케이스, 반지 등은 물론 가구까지 자기만의 개성을 넣어 D.I.Y로 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패션은 자신의 개성과 특징을 나타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다. 과거에는 커플룩, 트윈룩 등 쌍둥이처럼 똑같이 입는 패션이 유행했다면, 지금은 그러한 패션을 촌스럽게 여길뿐이다. SPA 브랜드들이 패션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맞춤 시장 또한 넓어지고 있다. 개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다채로워지고 있다.……기성복과 SPA로 대표되는 ‘패스트패션’의 강세가 계속되면서, 맞춤복 시장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소소하지만 존재감 있는 맞춤복 매장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옷’을 찾는 이들은 적지만 꾸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내가 유니클로 등을 선호한다고 해서 유니클로의 모든 옷들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정장의 경우, 자신의 기호나 체형에 꼭 맞는 옷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이에 따라 최근에 맞춤복 매장에 들러 정장을 하나 맞추었다. 나는 유행에 따라 양복을 수시로 바꿔 입을 생각이 전혀 없으며, 오직 내 마음에 꼭 드는 옷을 한 벌 장만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맞춤복 매장 또한 매장 나름이겠지만, 내가 방문한 곳은 기성양복에 비해 비싸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천을 고르고 내 체형에 맞게 옷을 재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옷을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옷은 내가 지금까지 샀던 어떤 정장보다도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삼성동이나 압구정동에서 약속이 잡혔는데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면, 백화점을 주로 둘러보곤 한다. 물론 소위 명품 매장도 부지런히 둘러본다. 그런데 내가 나 자신에 충실해지면 충실해질수록, 나는 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방을 보고서도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이 그 가방의 디자이너보다 더 멋진 가방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다. 사실 여러 매장을 둘러볼 때마다 내가 미처 상상도 못한 스타일의 아이템들이 진열되어 있어 내 눈을 즐겁게 해 주고, 그 때문에 나는 돈이 없으면서도 명품 매장을 찾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명품을 바라보면서도 내 취향에 따라 ‘튜닝’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손잡이는 요렇게 바꾸었으면 좋겠고, 안쪽 주머니는 좀 더 달았으면 좋을 것 같고, 너무 번쩍거리기보다는 좀 더 수수했으면 좋겠다.
나는 비록 가방에 별 관심이 없어서 눈으로 즐기는 데에만 그쳤지만, 가방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앞으로 가방 또한 ‘맞추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방면에 무지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방을 맞춰 들고 다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모든 이들이 똑같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획일화된 재미없는 분위기가 이내 톡톡 튀는 여러 아이템들로 어우러진 분위기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세상은 훨씬 다채롭고 재미있을 것만 같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