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대학 축제 가다 (2)
저는 2014년부터 3년을 내리 달아 태국의 송끄란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홀로 떠나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에 묵었는데, 거기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 지금도 한국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잠자리가 예민하신 분들이 아니시라면, 저는 도미토리 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곳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2015년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동생들이 오랜만에 술 한 잔 하자고 단톡 방에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래서 동국대학교 축제에 가서 주점에서 한 잔 하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째서 굳이 그곳까지 가서 술을 마셔야 할까요? 혹시 여대생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징그러운 아재의 본능이 발동하기라도 한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 여의도에 소재한 국책은행에서 근무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의도란 곳은 얼마나 칙칙하고 팍팍하며,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는지... 저는 여의도에 있었던 몇 년 동안 사람들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기분은 변함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일부러 다리 하나 건너 홍대로 넘어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도 좋아하죠. 왜냐하면 젊음이 넘치는 거리에는 생기 또한 활발하니까요. 저는 마찬가지의 이유로 대학 축제에서 술 마시면서 젊음의 에너지를 가득 받고 감사한 기분에 충만해서 귀가하기를 즐깁니다.
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앞에서 동생 2명을 만나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예전에는 계단 오르기가 귀찮았는데, 요즘에는 하체 단련을 위해 일부러 계단을 찾아 걷습니다. 좌식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가급적 허벅지를 강화하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필수인 것만 같습니다.
저녁 7시이지만 아직 훤한 대낮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경험상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는 금세 자리가 차 버린다는 것을 안 저는 동생들의 손을 이끌고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주점에 자리 잡고서 주문에 들어갑니다.
참으로 볼품없는 사진이기는 합니다만, 저희는 너무나 흥겨웠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여행이나 그 무엇도 누구랑 함께인지가 핵심인 것만 같습니다. 함께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서 장소 또한 바뀌지요. 여행과 축제를 즐기는 두 동생과 함께 하니, 자연히 약속 장소 또한 대학 축제로 결정되었으니 말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여행과 축제에 관련된,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주변에는 어둠이 내렸습니다만, 우리들의 대화는 갈수록 깊어져만 갑니다. 이미 1인당 소주 2병을 마셨으니, 적게 들이킨 것도 아닙니다. 주점의 분위기 또한 달아오르고, 가끔씩 누군가 컨센트를 걷어차서 조명이 나갈 때면 사람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집니다. 서빙을 담당하고 있는 신입생들은 새벽 3시까지 주점에서 일해야 한다며 한숨을 푹푹 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은 감출 수 없습니다.
제 후배 중의 한 명은 아직도 태국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년에는 그들을 초청해서 반드시 대학 축제에 데려가자 다짐했습니다. 아마,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한 태국인들도 대학 축제에 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로수길이나 명동은 이미 한국 고유의 맛을 잃었습니다. 아무런 개성 없는 쇼핑센터가 어찌 재방문하고자 하는 마음을 촉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업로드한 사진에 보이는 대학 주점의 풍경들이 정이 넘치고 흥이 가득하면서도 상대방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외국인들을 감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팔아주기 위해 방문한 친구들을 상대하는 주점 운영자들의 손길이 갈수록 바빠지는 밤, 아재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귀가할 채비를 합니다. 아무리 불금이라고는 하지만, 밤새워 술 마실 생각을 한 아재들은 아닙니다. 기분 좋게 마셨으니, 들어가 푹 자고 내일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해야죠.
태국의 송끄란 축제가 부처님의 은덕으로 평화로이 치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동국대 축제 또한 부처님의 은덕으로 무사히 끝나는 듯합니다. 폭력과 놀이는 결코 함께 할 수 없고 오직 평화만이 진정한 놀이문화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감사히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귀가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