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논의는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들은 결혼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신문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바, 그 기사들을 인용하면서 이 문제들을 지금까지의 논의와 관련해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조선일보 2014년 10월 28일 자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7부-1] 결혼 3大 악습… 집은 남자가, 예단 남들만큼, 賀客 많이」이라는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전국 신랑·신부와 혼주 1200명을 조사한 결과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남들처럼'이었다. 신혼집이건, 예물·예단이건, 결혼식이건 '관행대로 하는 게 좋다'는 심리가 뚜렷했다.
그에 따라 결혼 과정을 힘들게 만드는 '고정관념 3종 세트'가 나타났다. 응답자 열 명 중 여섯 명이 '신혼집은 남자가 해와야 한다'(62.8%)고 했다. 이어 응답자 열 명 중 네 명이 '예단은 남들만큼 주고받아야 한다'(44.6%)고 했다. '결혼식에 친척과 친구만 오면 초라해 보인다'(50.9%)는 사람이 과반수였다.
이 세 가지 고정관념은 따로따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추기면서 눈덩이처럼 일을 키웠다. 신랑 부모가 신혼집 구해주는 부담에 짓눌리고→신부 부모가 돈 많이 쓴 사돈댁 눈치를 보느라 무리해서 예단을 보내고→양가 모두 결혼 비용 부담에 짓눌리다 보니 그동안 축의금 낸 만큼 돌려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구도였다. 내년 3월 아들을 결혼시키는 박순덕(가명·56)씨는 ‘10을 주면 10을 받아야 하는 게 사람 심리 아니냐’고 했다.”]
나는 앞서 소비성향과 관련해서 능동적 사고방식을 지닌 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소비하는 반면, 수동적 사고방식을 지닌 이는 ‘나의 호불호에 관계없이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에 소비한다고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능동적 사고방식은 합리적 소비(rational consumption)를 추구하는 반면에, 수동적 사고방식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추구한다. 상기한 기사가 정확히 밝혀주듯이, 부모와 예비부부를 비롯한 모든 이들을 눈물 속으로 몰아넣는 3大 악습의 원인은 ‘남들처럼’ ‘관행대로 하는 편이 좋다’였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다루어왔던 전형적인 수동적 소비행태이자 과시적 소비에 해당한다. 일단 수동적 소비행태가 시작되면 악순환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즉 신랑 부모는 집을 구해주는 부담에 짓눌리고, 신부 부모는 집값에 맞추느라 무리한 예단을 해서 보내고, 양가 모두 축의금을 통해 결혼 비용 본전을 뽑으려 들고, 일단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축의금을 낸 이들은 낸 만큼 다시 자식 결혼을 통해 본전을 뽑으려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어째서 신랑이나 신부 측에 보내는 돈이 ‘축의금’이라 불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된다.
조선일보 2014년 10월 29일 자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7부-2] '남들만큼'에 허리 휘는 결혼」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석 달간 신혼부부 101쌍을 만나면서 취재팀이 자주 들은 얘기 중 하나가 ‘원래는 결혼식을 작게 하려고 했다’였다. 신랑이건 신부건 양가 부모건 ‘일이 자꾸 커지더라’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했다. 원인이 뭘까. 작년 10월 결혼한 이경미(가명·29)씨가 한마디로 요약했다. ‘비교하거든요.’ ‘상견례 때 양가 부모님이 '생략할 거 다 생략하자'라고 했어요. 그렇게 못 했죠. 우리 세대건 부모님 세대건 듣는 게 많다는 게 문제예요. '이 정도는 해가야 하나 보다' '그럼 나도 받아야지' 하는 심리가 자꾸 생겨요.’”
이와 같은 인터뷰 내용은 누구나 처음에는 능동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함을 알다가도, ‘남들과 비교’함에 따라서 점차 수동적인 과소비에 빠지게 되는 심리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일보의 다른 기사에서 취재팀이 101쌍을 만나보니, 양가 어머니들이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남들'은 어디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상당수 신랑·신부가 "고모, 이모, 엄마 친구가 제일 무섭다"라고 했다.
[2014년 2월 결혼한 최원규(가명·27·공기업 직원)씨는 원래 예단을 생략하려고 했다. 여섯 살 연상 여자 친구가 자신이 취업할 때까지 기다려준 것만도 고마웠다. 어머니도 처음엔 "그러자"라고 찬성했다. 고모 셋이 다녀간 뒤 어머니 의견이 변했다. "아예 안 받는 건 좀 그렇지 않니?"
고모들이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안 해오는 건 우리 집을 무시하는 처사다" "다른 집 며느리는 차도 해온다"라고 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결국 최씨의 신부는 친척들 한복에 현금까지 총 1200만 원 상당의 예단을 보냈다. 최씨는 "낭비하지 말자고 둘이 굳게 약속했는데…. 아내가 큰돈 쓴 게 미안해서, 할 수 없이 저도 300만 원짜리 프○○ 가방을 사줬다"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101쌍은 평균 742만 원을 예단 비용으로 썼다.
신부 집에서 신랑 집으로 보내는 예단 중에 필수 항목처럼 되어 버린 물건이 이불·반상기·은수저였다. 취재팀이 만난 어머니 중에 이 세 가지가 정말 필요해서 주고받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별 필요 없지만, 다 하는 거라니까 우리도 했다"라고 했다.]
예단이 별 필요 없지만 남들도 다 하는 것이라서 우리도 했다는 발언이야말로 본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수동적인 과소비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 얽힌 모든 이들의 감정을 불편하게 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취재팀이 만난 신랑·신부·혼주 101쌍 중에는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린 부부가 7쌍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평균 400명쯤 부를 때, 이들은 100~280명 청했다. 나머지 사람들이 평균 2264만 원을 들일 때, 이들은 500만~1000만 원 썼다. 하지만 돈을 덜 쓰고 하객이 적었다고 "내 결혼식은 초라했다"라고 후회하는 부부는 한 쌍도 없었다. 오히려 "뿌듯했다" "의미 있었다" "만족한다"라고 했다. 화려하고 큰 결혼식을 한 후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이 없었다"라고 말한 부부들과 정반대였다. 작은 결혼식을 올린 부부들은 애초부터 "결혼하며 빚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은 흔히 "쓰다 보니 예산을 초과했다"라고 한다. 작은 결혼식을 올린 7쌍은 각자 모아놓은 돈을 합쳐 '상한선'을 정해놓고, 그 아래서 결혼 비용을 절반씩 부담했다. 부모님께 기대지 않고 결혼비용 상한선을 정해놓고서 그 아래서 결혼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 7쌍의 합리적이고 능동적인 부부들은 자신들의 결혼식이 초라했다고 후회하지 않았다.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7년째 경희대에서 강의 중인 미국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50) 교수. "빚내서 자식 결혼시키는 한국 부모는 '불가사의'"라고 했다. "물론 미국에도 돈 많이 들여 결혼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다들 '그건 그 사람 얘기고, 나는 내 형편에 맞춰서 한다'라고 생각하지, 한국처럼 '남들이 이렇게 한다'면서 일률적인 기준을 따라가진 않아요. 돈 없으면 없는 대로 관공서에서 간단히 혼인신고하면 되지, 당사자도 아닌 부모가 빚을 얻다니요."
자식이 자기 돈도 아닌 부모 돈으로 결혼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부모는 심지어 자기 돈도 아닌 빚낸 돈으로 자식의 결혼비용을 부담하는 행태는 ‘미국은 저렇고 한국은 이러니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능동적 소비심리와 수동적 소비심리의 갈림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본인 괴롭고 남도 괴롭히는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7부 끝, 8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