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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사면하야가(四面下野歌)

사면초가(四面楚歌)는 도저히 빠져나갈 길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뜻하는 고사성어이다. 하지만 이 유명한 사자성어에 얽힌 고사는 지난 11월 12일에 있었던 광화문의 비폭력 평화집회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사마천 <사기-본기>에 있는 고사를 직접 살펴보자. 한신이라는 명장을 앞세운 한나라 유방의 군대는 초나라 항우(항왕)의 군대를 해하(垓下)라는 지역에서 포위했고 항우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었다.


- [본문] 항왕(항우)의 군대는 해하에 방벽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군사는 적고 군량은 다 떨어진 데다 한군과 제후의 군대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밤에 한군이 사방에서 모두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니 항왕이 이에 크게 놀라서 말하기를 "한군이 이미 초나라 땅을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하여 초나라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가?"라고 하였다. 하오앙은 한밤중에 일어나서 장중에서 술을 마셨다...그날밤 항왕의 무리들은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나가 질주하였다. 날이 밝자 한군은 비로소 이 사실을 알고 기장 과영으로 하여금 5,000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도록 하였다.(사마천 <사기-본기>, 까치, 247-248쪽)-


항우는 결국 바로 이 날 죽음을 맞이한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항우는 강동 지역으로 탈주가 가능했으며 그럴 경우 다시 세력을 구축해서 유방에 맞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항우가 죽음을 맞이하던 전날 밤 성 안에서 사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초나라 노랫소리를 듣고 침묵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역발산기개세의 항우를 꺾은 최후의 일격은 칼이나 창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하나 된 목소리였다. 물론 유방은 일종의 꼼수를 썼다. 초나라 말을 모르는 한나라 병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가르쳐서 부르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만큼 천하장사 항우의 기개를 꺾은 신의 한 수는 없었다.

아마 사면초가의 상황을 겪은 뒤, 항우는 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고 나는 본다. 그의 군사적 재기는 결코 불가능하지 않았으나, 그는 포기했다. 나는 전 날의 사면초가(四面楚歌)가 그의 군사적 재기를 꺾은 결정적인 비폭력의 한 수였다고 본다.

폭력시위를 옹호하는 이들은 11월 12일에 청와대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울려 퍼졌던 하야송(下野song)의 실질적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듯하다. 응원가로 유명한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송은 항우를 사면에서 압박하던 초나라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대통령의 사면을 둘러싸고 앞으로도 물려 펴질 사면하야가((四面下野歌)가 어떤 평화적 귀결을 이끌어낼지 주목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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