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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5 홍콩 자가격리 8일 차

오늘은 2021년 8월 15일 광복절,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 자가격리 8일 차 입니다. 21일 자가격리 기간을 를 고려하면 1/3 이상 지나왔네요. 자가격리가 지겹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들지 않습니다. 호캉스 같은 느낌도 나고,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 휴식이 되는 시간 같습니다. 혼자 있게 될 때 능동적으로 찾아보게 되는 유튜브 영상의 종류가 곧 저의 현재 최대 관심사를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변함없이 슬로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채널들을 살펴보고 있지만, 아무래도 갇혀 있어서인지 여행 유튜브 영상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제주 밴 라이프> 채널을 보면서, 레이 중고 하나 사서 캠핑카로 개조해서 1년 동안 제주도에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요즘 많이 합니다. 홍콩에서의 제 근무 기간은 내년 7월 31일까지입니다. 내년에 코로나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면 강의를 딱 1년만 쉬고 그 시간 동안 캠핑카에서 생활해 본다면.... 운동과 샤워는 피트니스 클럽(그때쯤이면 샤워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을 장기로 끊어서 해결하고, 크고 작은 자연의 부름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계절 별로 각각 두 벌 신사가 되어 매일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캠핑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루프 위에 올라앉아 와인도 마시고 테이블에 앉아 글도 쓰고.... 나중에 중고로 팔면 돈 몇 백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주행 거리가 이미 꽤 되겠지만, 제주도에서 험하게 장거리 달릴 일도 없고....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다 보니 더욱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홍콩 캠핑"을 검색해 보니, 뜻밖에 홍콩에 사시거나 놀러 오신 많은 한국분들이 캠핑을 즐기고 계시더군요. 자가격리가 해제되고 제 삶이 안정을 찾으면, 우선 홍콩에서부터 소소한 캠핑 또는 트래킹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IOIOffw20wc

https://www.youtube.com/watch?v=CjTKREMXxJ4


아무런 기대 없이 받아 든 아침 식사에 저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닭가슴살 샌드위치? 머선 129? 머선 129?!!!!! 옥수수콘과 달걀 또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달달한 음료를 적당히 마시라던 동생의 소중한 충고를 까먹고 아침부터 홀짝거리던 홍콩 밀크티 잔을 엎을 뻔했지요. 사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식빵이나 크루아상, 모닝롤 등이 몹시 당기던 터라, 이번 세트 구성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요? 제가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빵 사이에 두툼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저 간장 범벅 닭가슴살을 빼버리고 빵과 옥수수콘과 달걀과 밀크 티로만 식사해야 했었습니다. 그러면 나름대로 완벽한 서양식 브랙퍼스트가 될 수도 있었지요. 저 간장 범벅 닭가슴살 덩어리가 다른 식재료들의 풍미를 모조리 집어삼켜버렸습니다. 결국 식사를 마치고 제 입 안에 감도는 향은 간장이었습니다. 아, 제가 많이 어리석었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호텔에 머물 예정이신 분이라면, 저와 같은 모닝 세트를 받아 들자마자 과감히 간장 범벅 닭가슴살을 빼버리시기 바랍니다.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냉장고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점심때 반찬으로 드시면 됩니다. 제 냉장고에는 토마토와 사과가 있는데, 그 친구들을 빵 사이에 끼워서 먹었다면 얼마나 완벽했을까요. 닭가슴살을 잘 씻어서 간장 냄새를 빼버리기만 해도 먹음직한 패티로 거듭났을 터인데요. 남은 자가격리 기간 동안 반드시 한 번은 더 제공될 터이니, 그때만큼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갈수록 몸이 축나는 것 같아서, 오후에는 예전에 읽었던 <죄수 운동법>을 떠올리며 좁은 공간에서 홈트레이닝을 좀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겨워서 호텔 방 안에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즐거운 방법을 찾다가 김계란과 심으뜸 두 사람이 시행하는 슬로우 버피 100회 동영상을 보고 흥미가 생겨 따라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y8jUuscOw

이거 끝낸 다음에 땀범벅이 되어 샤워하고 침대에 드러누웠습니다. 이 루틴을 자가격리 끝나는 날까지 날마다 하기만 해도 체력 저하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내일은 허벅지가 쑤셔서 못할 게 분명합니다. 내친김에 심으뜸과 김계란의 하루 스쿼트 1000개도 따라 해 봐야겠습니다. 의욕이 과하면 망하는데, 일단 링크라도 걸어놓아야 제가 들여다볼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YJ7w1-9BFI


그래도 오랜만에 운동을 했다 보니 급격하게 배가 고파져서 저녁은 좀 든든하게 먹기로 합니다. 몸에 좋은 것을 챙겨 먹으면 참으로 바람직했을 터인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라면밖에 없어서 호텔 식단과 크램 차우더 즉석라면, 그리고 상추를 해치우기로 합니다. 

보시다시피 이 호텔은 날마다 똑같은 맛의 식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일관성이 있고 의리도 있습니다그려. 상추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크램 차우더 라면은 지나치게 짰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진수성찬에서 흰쌀밥은 딱 반만 먹고 나머지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습니다. 이제는 기계처럼 능숙하게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끝냅니다. 식사 전후로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음악을 틀고, 식사 중에는 캠핑 동영상을 주로 봅니다. 미국에서는 스쿨버스를 개조해서 집으로 삼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꽤나 있군요. 미국에는 스쿨버스 주행 거리가 얼마 이상 되면 의무적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스쿨버스는 다른 차종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집으로 삼기에 좋다는군요. 코로나 이슈 이후로 한국에서도 "차박" 열풍이 불고 캠핑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DIY 방식으로 버스를 개조해서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지금게르>라는 채널을 운영 중인 한국인 커플 또한 그 사례에 해당되겠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2QEWUBJcIdI

https://www.youtube.com/watch?v=9dBb1VyxipA


저녁 식사량이 지나치게 많았는지, 초저녁부터 몸이 늘어집니다. 캠핑 관련 영상을 이리 처리 찾아보다가, 보석 같은 채널을 하나 찾았네요. Hobo Ahle이라는 미국 유튜버인데, 4년 전 미성년자일 때부터 자동차 안에서 살기를 꿈꾸며 준비하고 실제로 산 기간도 3년 이상 됩니다. 맑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믿을 수 없을 만큼 긍정적인 태도로 여러 난관을 헤쳐나갑니다. 미국에서 몇 년째 차 안에서 살며 대륙 횡단을 하는 캠퍼들은 대부분 목소리가 매우 차분하면서도 눈이 맑네요. 정말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N7QlpKP1yM&t=406s

오늘 저녁은 운동 유튜버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계란의 제로투 댄스를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로투 댄스가 뭔지를 몰랐지만, 뭔지 알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의 댄스 동영상에는 별로 눈길이 가질 않네요. 비록 안 본 눈을 사고 싶은 심정이지만, 혼자서 당할 수는 없습니다. 100kg 역기를 어깨에 얹고 제로투 댄스를 해내는 괴력이 놀랍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GDwnHZut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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