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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6 홍콩 자가격리 9일 차

슬로 앤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제안

오늘은 2021년 8월 16일, 한국은 아마도 광복절을 대신한 공휴일이겠군요. 저는 예전부터 공휴일은 "11월 셋째 금요일" 등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추석이나 설날,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 등의 경우에는 날짜를 함부로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타 공휴일의 경우에는 금요일이나 월요일로 만들어서 연휴를 늘리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기계같이 일하는 직업"은 기계에게 대체됩니다. 불평해봐야 소용없습니다. 기계보다도 못한 상당수의 정치인들 또한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요. "The fruits of industrialization ought to be freedom"이라는 말이 매우 와닿습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미가 쏙 빠진 기계 문화나 다름없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자연과 함께 자유롭게 더불어 살면서도 고대의 원시인이나 20세기까지의 인간들이 그 과정에서 겪던 불편함을 IT기술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동양 철학 전공자인 저는 장자처럼 살면서도 거지처럼 살 이유가 없습니다. 장자는 친구들에게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면서 가슴 속에 분노가 많았던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연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휴식과 치유, 자연과 자유가 진정 소중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중고 캠핑카를 구입해서 산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월든에 들어가 몇 년 살다가 인간 사회로 복귀했습니다. 그가 살던 월든은 실상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월든>을 제대로 읽으면, 오히려 산 속에 기어들어가서 인간을 피하며 사는게 좋겠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다. 소로우야말로 <시민 불복종>이라는 불후의 명문을 남긴 사나이 아니겠습니까.   


2020년 미국 영화계는 <노마드랜드>라는 영화로 인해 뜨겁게 달궈졌습니다. 원작은 한국에도 이미 번역되어 나와 있지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830039 

https://www.youtube.com/watch?v=zICxsKAUO0k<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레베카 솔닛이 추천하기도 한 이 책은 주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길 위에서 사는 취약계층의 삶과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서 빈부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고, 미국 소외계층의 삶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이 책과 영화는 시의적절하면서도 올바른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외에 "길 위에서의 삶"이 왜 꼭 나쁜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비트 제네레이션 시인"들의 후계자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아래에 링크된 다큐멘터리에 소로우와 케루악의 후예들이 등장하는데요, 코로나 사태 이후에 촬영된 것이라 시의성도 있지만, 내용이 아주 흥미롭고 알찹니다. 주거 문제는 국가 시스템 개선이라는 방식을 통해 근본적으로 접근해야만 합니다.하지만 언제까지나 기득권들의 호의와 손아귀에 달린 사회 시스템 개선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형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의 형태에 알맞는 주거 형태는 무엇인가? 내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삶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주거 형태가 지닌 장단점은 무엇인가? 물론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구입"이란 주거뿐만이 아닌 투자의 목적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가상각이 이루어져 가격이 하락하는 자산을 주거 형태로 소유하기가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소유보다 경험"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에리히 프롬이 이미 20세기 초에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써서 이 문제를 잘 파헤쳤습니다. 이제는 <소유냐 경험이냐>로 누군가가 다시 써야 하겠지만요. 캠핑카에 3년 이상 살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빙홈 주자인 래춘씨의 경우에도 강연에서 자신은 캠핑카에서 평생 사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주택" 속 삶에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식주 가운데 의와 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노력으로 컨트롤이 가능합니다. 이제 대한민국 온 국민의 숨통을 부여잡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러한 시대 변화를 가속화시켰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참고로 캠핑카에서 사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유튜버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양한 견해들을 가급적 많이 접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Xu_PSWiQnM&t=1716s

https://www.youtube.com/watch?v=Lg37Cbx-kak

https://www.youtube.com/watch?v=KvOHjIGi30Y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은 오전 7시부터 밤 11시59분까지 배달 서비스를 허용합니다. 자가격리 호텔 가운데 배달을 허용하지 않는 호텔 또한 적지 않습니다. 호텔의 자가격리 조건을 꼼꼼히 읽어본 뒤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7시가 조금 넘어서 <푸드 판다> 앱을 켰습니다. 이렇게 삼 시 세 끼 간장 덩어리만 먹다간 몸을 망칠 것 같습니다. 하루 세 끼 식사가 나오는데 하나라도 먹지 않으면 아깝다는 생각이 일주일 동안 제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침식사만큼은 간장 식단을 피하고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기고자 합니다. 양배추 두 덩이와 4개 들이 식빵 4봉지를 주문하니, 정말로 총알같이 배송되었습니다.


식용 숯가루를 넣은 식빵이 시커먼 게 보기에 썩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구경한 적은 있습니다) 흥미가 일었습니다. 냉장고에 가득한 밀크 티와 잘 어울리는 음식은 다름 아닌 빵이겠지요. 양배추를 잘 씻어서 일부를 떼어 내어 아침 반찬으로 삼았습니다. 후지 사과도 하나 곁들였고요.  

간장이 테이블에서 사라지니,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저는 시커먼 식빵에서 뭔가 새로운 맛을 기대했는데,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식감이 매우 부드럽고 촉촉하며, 생각보다 양이 많았습니다. 저 테이블에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다 먹지를 못하고, 1시간 뒤에 마무리했습니다. 후지 사과는 지나치게 달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뭐랄까요,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과일은 너무도 개량이 잘 되어서 제게는 "지나치게" 달달합니다. 당도가 좀 낮았으면 좋겠어요. 오죽하면 당뇨 환자들에게 과일 섭취를 권장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을까요.


한편 양배추를 날것으로 씹어먹으니, 다소 쓴 맛이 났습니다. 많이 먹었다간 속이 쓰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이버 검색을 해보았는데, 다행히 독성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데치거나 삶아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객실에는 전자레인지나 밥솥 등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커피 포트에 양배추를 삶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호텔에 놓인 커피 포트에는 손도 대지 않습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저는 호텔 도착 첫 날에 커피 포트를 미친 듯이 세척했습니다. 그 뒤에 감잎차를 끓여 마셨지요. 이제는 뭐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일단 커피 포트에 물을 2/3쯤 붓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양배추를 칼로 잘라서 쪼갠 뒤 이파리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씻어서 쌓아놓았습니다. 물이 다 끓은 뒤에 이파리를 곧바로 커피 포트 안에 투척합니다. 5분 이상 그대로 놓아둡니다. 충분히 이파리가 말랑말랑해졌다고 판단되면, 플라스틱 포크로 하나씩 건져내어 용기에 담습니다.

채소를 다루는 과정은 말끔한 결과물에 비해 항상 어수선해 보이기 마련이지요. 일단 양배추 두 포기 가운데 하나를 이런 식으로 처리했습니다.

데친 양배추를 베어 무니, 달콤한 즙이 배어 나옵니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플라스틱 용기 2개에 꽉꽉 눌러 담아서 냉장고에 넣고, 그래도 남는 것은 있다가 점심 때 먹기로 합니다. 사실 당근과 양배추는 매일 소량이 흰밥과 함께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배추를 따로 먹는 것은 느낌이 다릅니다.

제 간식인 당근이 "나를 언제 드시렵니까?"라는 느낌으로 뾰족하니 저를 겨냥하고 있네요. 이 작업을 모두 마치니, 아침 식사가 배달됩니다. 꽃빵 두 개에 유동식 죽입니다. 저는 그래도 간장 범벅 식단보다는 이 쪽이 낫습니다. 점심 때 먹기로 합니다.


아침을 평소보다 일찍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평소보다 양이 적어서 그런가, 11시 반이 되자 벌써 배가 고픕니다. 아침 요리를 먹지 않고 보관해두니까, 제가 먹고 싶은 때에 점심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호텔 측에서는 12시에 식사를 줬다가 1시 반에 줬다가 들쑥날쑥해서 좀 불편했거든요. 저는 1시 전에 아침에 받아놓았던 요리에다가 양배추, 밀크 티를 곁들여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쳤습니다. 느끼하지 않으니까 확실히 속이 편하네요. 저 흰 빵은 밀크 티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식사 중에 한국의 친구에게서 카톡이 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미혼남인데, 겨울 방학 때 홍콩에 놀러 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겨울 방학 때 코로나 이슈가 좀 잦아들까요? 저는 일주일 휴가를 내서 태국을 방문하고 싶지만, 8월 14일자 뉴스를 보니 현재 태국은 하루 확진자 수가 2만 명을 넘겼습니다. 관광산업이 GDP의 1/5을 차지하는 태국인데요. 수많은 서민들이 문자 그대로 직업을 잃고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2Q6OVDIPV 

홍콩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일상생활회복지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대한민국은 18위입니다. 8월 9일부터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한국인은 "비자 없이" 홍콩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물론 14일 자가격리에 7일 능동감시를 해야 하지만 말이죠. 8월 8일까지는 아예 비자 발급이 금지되었었습니다. 이제 무비자 여행이 다시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에어비앤비의 숙소 가격들이 상당히 올랐습니다. 홍콩에서 장기간 숙소를 계약하려면, 대부분 최소 1년 단위로 해야만 합니다. 저는 11개월 동안 연구원으로 근무 예정이기 때문에 아파트 등을 계약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홍콩 숙박 상황이 어려워서 1년 미만 계약도 받는 호스트들이 있다고 하니, 자가격리 해제 후에는 부동산 투어를 좀 해야겠습니다. "홍콩에서 미니멀 라이프 살기" 테마로 글을 계속 쓰겠습니다. 저는 극단적인 소비 도시인 홍콩에서 소비를 최소화하고도 즐기는 삶을 추구해볼까 합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10811140215941


오늘은 홍콩에 와서 가장 날씨가 좋았던 날입니다. 물론 간간이 소나기가 오기는 했지만, 햇볕이 매우 짱짱한 게 보기 좋습니다. 저는 여기에 갖혀 있으니, 자외선을 맞지 않아서 피부가 좋아지겠네요. 한국에서 땡볕에 몇 십 킬로미터씩 걸어다니면서 새카맣게 탔는데, 이제 눈에 띄게 회복중입니다. 출근할 때에는 야만인같던 외모가 다소 나아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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