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홍콩 자가격리 10일 차, 드디어 숫자가 한 자리에서 두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드디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실 힘들지는 않습니다. 홍콩 비자 문제가 막판까지 저를 괴롭혀서, 저는 홍콩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홍콩이란 멋진 도시에 대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죠. 이제 자가격리로 인해 호텔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다 보니, 홍콩에 대해 살펴볼 시간을 넉넉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넘나들며 자가격리 후에 놀러 갈 장소를 검색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습니다. 자가격리 시간을 때우기에 참으로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홍콩에 이처럼 많은 마라톤 대회와 트레일 러닝 코스와 트래킹 장소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몇 년 전에는 홍콩 핼로윈 축제와 세계 와인 축제를 즐기러 방문했었지요. 한국에서는 절대 구입할 수 없고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마카오에서만 구할 수 있는 구찌 립스틱을 사서 여자 친구에게 선물했던 때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사귄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때이지요. 이제 여기에 머무는 11개월 동안에는 홍콩의 대자연을 주말마다 만끽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3월 초에 홍콩의 대학 측과 접촉할 때에는 제 관심 분야가 감정과 정치의 관계라고 밝혔었습니다. 이는 사실이며, 저의 평생 연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공자와 맹자는 감정을 모든 행위의 기준으로 삼고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존중합니다. 노자와 장자는 감정이 마음 상태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판단하여, 감정을 무시하거나 흘려보냅니다. 손자와 한비자는 감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타인의 감정을 조작하고 휘두르고자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감정을 선동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스타일의 정치(real politik)에서 흑색선전은 매우 유용합니다. 진실 여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단 국민의 "감정"을 선거 기간 동안 선동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됩니다. 가령 상대편 후보가 "성희롱"을 저질렀다고 일단 헛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러면 국민들의 감정은 분노로 "선동"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 자체는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성희롱"이라는 것 자체는 악하니까요. 하지만 국민들이 "그래? 정말로 그 후보가 성희롱을 저질렀단 말이야?"라고 진실을 파헤치는 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거는 끝이 나버리고, 누군가는 선동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갔다가 뒤로는 후한 보상을 받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프로세스를 몇 번씩 경험한 국민들은 "감정" 자체가 나쁘다고 잘못 판단해 버립니다. 그리고 정치 행위에 있어서 감정은 중요치 않으며, 우리는 "무감정한" 기계처럼 정치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는 생각해도, 어차피 우리는 감정적으로 행동합니다. "성희롱"에 대한 "분노의 감정" 자체는 옳습니다. 선합니다. 하지만 그 성희롱이 실제로 있었느냐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것은 내 인식 오류입니다. 보통 내가 특정 정치 진영에 많이 기울어져 있을수록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우리 편의 성희롱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 보아야 한다면서, 상대편의 성희롱 혐의만 나와도 누구보다 뛸 듯이 기뻐하며 비난을 서슴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지요. 이 때문에 "내로남불"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이고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내로남불"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알지요. 내가 내로남불을 당하면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니까요. 왜냐하면 내 인간 본성에 "내로남불"이 어긋나기 때문이지요. 여하튼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제 공중파와 종편, 라디오 등에 서식하는 "정치 자영업자"들이 온갖 음모론을 들고 나와서 국민들의 감정을 "선동"할 것입니다. 정치인 및 그들과 엮인 정치 자영업자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감정을 사로잡고 휘둘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이럴 때에 현명한 유권자들은 감정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기를 힘써야 합니다. 상대편의 "부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다면? 첫째, 부정 그 자체는 진영을 막론하고 나쁘다는 사실을 우선 명심해야만 합니다. 우리 편의 부정은 "착한 부정"이고 상대편의 부정은 "나쁜 부정"이라는 내로남불을 시전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그 "부정"이 "사실"인가? 에 대해서 철저히 따져보아야만 합니다. 인터넷에서 여론몰이를 하는 정치 자영업자들과 댓글부대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되며, 일단은 "중립 기어를 넣고" 사실 관계 파악에 힘써야만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실 관계 파악에 힘쓰고 싶으면 자기가 속한 진영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이미 좌파와 우파의 대표적 선동꾼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주체적이지 못하고 선동당했다는 사실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내 "감정"이 내 어리석음을 용서하지 않지요. 그런데 "중립 기어"를 넣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시간 낭비가 아닐까요? 그러다가 상대편 후보의 악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선거가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적어도 2021년 대한민국에서 그런 리스크는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보수와 진보 양측의 댓글부대 선동은 만천하에 드러났으며, 관련 인물들이 법적 처분을 받고 실형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거짓 선동은 상대편의 반격을 받아 시간을 오래 지체하지 않고 대부분 정체를 드러내고 맙니다. 사실 거짓 선동 자체가 거짓말이기 때문에, 자기변명을 하다 보면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결국 탄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정치 자영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자신의 음모론이 탄로가 나게 생겼으면 새로운 음모론을 터뜨립니다. 음모를 음모로 덮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지요. 그렇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치 자영업자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로 인해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국민들이 영리하면 그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지요. 오늘날 정치 자영업자들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힐링 전문가"입니다. 진실은 관계없이, 우리 진영의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만 해 주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거짓말이 탄로 나도 사과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치 자영업자들에게 열광하여 매일매일 그들의 방송을 시청하거나 청취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들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 오히려 정치인들을 좌지우지하는 지위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모두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우리는 인간이며 동일한 실수를 영원히 반복할 터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라고 범위를 넓혀가며 실망할 필요는 없지요. "내"가 잘하기를 힘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타인에게 정치적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니까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및 정치 자영업자 그리고 그들의 광적 지지자들은 모두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에 따라 움직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학계에서도 "순자가 어때서? 한비자가 어때서? 마키아벨리가 어때서"라고 말하며 오히려 그들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학계는 참으로 재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맞지 않거든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을 보다 나은 곳으로 개선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릇된 방향으로 끌고 가거든요. 저는 "슬로 라이프, " "미니멀 라이프, " "심플 라이프"에 입각한 새로운 정치에 관심이 있습니다. 결국 개개인의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어야만 정치 또한 바뀝니다. 저런 "개인적인 모토"가 어떻게 현실 정치와 연관될까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슬로 라이프>의 저자인 쓰지 신이치가 이미 기본적인 아우트라인을 그려놓았습니다. 저는 동양철학 전공자로서 이를 과거의 지혜와 잘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감정과 정치"라는 제 일생의 주제는 잠시 미뤄두고, 당분간은 "심플 라이프(단순한 삶)의 사회철학"을 다루고자 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매우 시의적절한 이슈이기도 합니다. 철학자로는 알프레드 대학교의 교수인 "엠리스 웨스타콧"이 몇 년 전에 이 작업을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시작했습니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원서 제목은 <검소의 지혜 the wisdom of frugality>입니다. 강단의 철학계는 이런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검소"나 "절약"이나 "단순한 삶" "미니멀 라이프" 등은 거대한 철학 담론의 주제가 되기에는 너무 사소하고 보잘것없으며 너무 실생활과 밀착된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전 세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사인데도 말입니다. "검소함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면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리기 어렵지요. 그래서 학자들이 더욱 연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참 흥미롭습니다.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홍콩아이디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도 본인이 홍콩에 합법적으로 체류 중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만 하면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네요. 홍콩아이디카드를 신청하면 대략 10일 후에 발급이 된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백신 접종 신청을 하면 2차 접종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요. 홍콩의 현재 접종률은 31%인데, 홍콩 정부는 9월 말까지 70% 접종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 말은 채찍과 당근을 가능한 한 동원하여, 특히 채찍이라는 불이익을 통해 백신 접종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지요. 이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입니다. 까라면 까는 곳이지요. 홍콩에서는 화이자 백신과 시노백 중 하나를 골라서 맞을 수 있습니다. 1차 접종을 마치고 3주 뒤에 2차 접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8월 30일에 백신 접종 신청을 하면 9월 말까지 2차 접종 완료가 가능할까요? 10월이 되면 백신 미접종자에 대해 불이익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일들이 순리대로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