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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9 홍콩 차찬텡의 성지, 미도 카페

야마우테이 역 근처 미도 카페를 가다

8월 29일 일요일 오전에 자가격리 호텔에서 나온 뒤, 글을 쓰는 지금은 9월 16일입니다. 그 동안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생각만큼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인문학 전공자들에게는 고전 공부 자체가 또 하나의 즐거운 여행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제게 어울리는 홍콩 여행의 두 축은 '음식'과 '하이킹'인데, 제 근무지인 홍콩시티대학의 구내식당은 음식 종류도 많거니와, 가격과 위생 그리고 맛 세 가지가 모두 합격점입니다. 그래서 맛집 기행에 대한 의욕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차찬텡 문화에 대한 글들을 검색하다 보니, 아래와 같이 잘 정리된 포스트를 발견했습니다. "찬텡(茶餐廳)은 홍콩만의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홍콩스타일의 분식점을 말합니다. 茶餐廳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차와 음식이 있는 점포'로 간단하게 한끼를 해결 할 수 있는 한국의 김밥천국과 비슷한 홍콩식 분식점입니다."라고 간단하고 명료한 설명이 올라와 있네요.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751644&memberNo=913295

링크된 포스트에는 5개의 차찬텡이 소개되어 있는데, 저도 모르는 새 이미 세 곳을 다녀왔습니다. 순위를 매기는 작업은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1위인 <호주우유공사>와 2위인 <란퐁유엔>을 방문했네요(<호주우유공사>는 거기가 차찬텡인지도 모르고 갔습니다). 오늘 간단히 포스팅할 <미도카페>까지 포함해서 말하자면, 유명 차찬텡에 나오는 메뉴들은 큰 쇼핑몰에 있는 차찬텡에 가서 아주 조금만 더 금액을 들여서 주문해 드시는 편이 낫습니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매장들은 일단 위생 면에서 믿을 만 하며,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는 맛도 더 뛰어납니다. 게다가 넓고 편한 좌석이 제공되어, 좁은 테이블에 타인과 합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지요. 요즘 저는 홍콩시티대학과 연결되어 있는 대형 쇼핑몰인 <페스티벌 워크>의 푸드 코트를 자주 이용하고 있는데요. 몽콕이나 침사추이에 소재한 유명한 맛집들의 메뉴와 맛이나 가격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쇼핑몰 가운데에서도 침사추이에 있는 <하버 시티>나 센트럴의 IFC몰은 관광명소라서 매우 혼잡합니다. 상대적으로 투어리스트들에게 덜 알려진 대형 쇼핑몰을 방문하면 상당히 여유 있게 로컬 젊은이들의 라이프를 접할 수도 있고 경험해 볼 수도 있는 듯합니다. 


1950년에 처음 문을 연 <미도 카페>는 차찬텡의 성지라고 불립니다.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의 한 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지요. 제 숙소에서는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히 도착합니다.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제게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은 쇠락한 과거의 느낌을 줍니다. 유동인구가 매우 적은 데다가, 거리에 활력이 없습니다. <미도 카페> 주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카페와 마주하고 있는 틴 하우 템플은 저녁 시간이면 항상 음산한 느낌을 줍니다. 늦은 밤까지 활기가 넘치는 유일한 근접 장소는 농구장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미도 카페 주변을 항상 밤에만 서성거렸군요. 낮에는 근무하는 직장인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커플 여럿을 지나쳐 들어간 <미도 카페> 1층에는 손님이 없었습니다. 8시 반이 넘어서일까요? 체온 체크를 한 뒤 올라간 2층에도 나이 든 노인 한 분과 제 또래의 커플 등 두 팀만 보였습니다. 노인께서는 신문을 읽고 계셨고, 커플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2층에서 주문을 담당하고 있는 중년 남성은 매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에 거동이 민첩하면서도 우아했습니다. 홍콩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듯한 몸가짐이었죠.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저는 <중경삼림> <천장지구> <아비정전><화양연화> 등을 통해서 홍콩을 접했습니다. 나른하면서도 어둡고 암울한, 좁고 텁텁하면서도 뭔가 은근하고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많은 이들에게 홍콩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막상 홍콩에 여행오면, 그런 분위기는 제쳐 두고 고급 쇼핑몰과 세련된 레스토랑 및 펍을 섭렵하곤 하지요. 백 개의 얼굴, 천 개의 표정을 지닌 홍콩이라지만, 어쩌면 홍콩은 홍콩 그대로인데 우리들의 마음이 수 천개로 갈라져 홍콩을 단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도 카페>의 밀크 티는 단 맛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연유에 푹 적신 듯한 프렌치 토스트는 극강의 단 맛을 선사합니다. 이 때문에 밀크 티에 굳이 단 맛을 첨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프렌치 토스트나 크리스피 번이 바삭하기를 원하신다면, 차찬텡에서 주문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눅눅한 홍콩 특유의 공기만큼이나 토스트 또한 뭔가에 흠뻑 젖어 있으니까요. <란퐁유엔>에 관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유명 차찬텡은 맛이 아닌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방문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 방문을 마치고 나서 귀가한 뒤 <미도 카페>와 관련된 블로그들을 하나씩 읽다 보니, 그래, 이 곳에 와서 이런 생각과 경험을 하고 가는 분들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게는 이제 차찬텡을 더 이상 자발적으로 방문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약속이 잡힌다면 기꺼이 갈 것이고, 코로나 시국이 완화되어 홍콩에 친구가 놀러 온다면 함께 방문할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과 분위기는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긴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하이킹은 <성문 저수지>와 <라마 섬> 등 두 군데를 다녀왔는데, 둘 다 매우 흡족했습니다. 재즈 바와 펍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홍콩에 머문 지도 벌써 1달이 넘어가고, 이제 저는 관광객에서 생활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행은 일상이 되었고, 저는 잔뜩 지친 표정의 직장인만큼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점점 제 취향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세상에 틀린 취향은 없습니다. 다른 취향만이 존재할 따름이지요. 누군가가 차찬텡 문화를 사랑하여 1년 동안 차찬텡 기행 특집을 꿈꾼다면, 저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응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의 관심사는 하이킹과 재즈, 수제맥주에 좀 더 쏠려 있네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많은 인디 밴드 공연장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에 따라 제 관심사는 하이킹과 맥주 등 두 주제에 좀 더 집중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맥주 자체보다 낮술을 즐기는 분위기 자체를 더 사랑하는 편입니다. 당장 돌아오는 주말에 하이킹과 펍의 세계로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하루입니다. 

https://youtu.be/1MkWUDJE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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