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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4 케네디타운 및 홍콩대학교 방문기

2021년 11월 14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전날인 13일 토요일에는 산업은행 동기들과 함께 빅토리아피크 트래킹을 가서 야경을 만끽했지요. 본디 일요일은 출근해서 일하는 날이라고 스스로 정해놓았고, 그래서 14일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개인 업무를 처리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홍콩의 11월은 사무실에서 보내기에는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누군가가 홍콩에 여행오고자 한다면, 저는 11월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한 달 내내 거의 비가 오지 않으며, 공기는 맑고 놀랍게도 습도 또한 낮습니다. 8월 초에 홍콩에 와서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는 광경만 보았던 저는 습도가 낮은 홍콩이 가능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뭐, 겪어보니 그러합니다. 심지어 한국에 비해서 미세먼지 농도도 현저히 낮습니다. 물론 번잡한 도시이니만큼 미세먼지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만, 온종일 걸어다녀도 공기가 탁하다는 느낌은 딱히 받은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몇 년을 근무 중인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12월이 되면 중국 쪽에서 본격적으로 난방을 가동하면서 홍콩으로도 미세먼지가 넘어온다고 합니다. 결국 홍콩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때는 11월이라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끄는군요. 여하튼 그리하여 저는 오전까지만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이내 홍콩시티대학 교정을 박차고 나가 홍콩대학교 쪽으로 놀러가기로 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아니, 어째서 대학교 캠퍼스에 놀러가느냐고 말이지요. 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콩대학교는 여타 대학과는 달리 일반인들에게 교정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홍콩의 대학교에 외부인이 출입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하지만 홍콩대학교만큼은 예외입니다. 게다가 캠퍼스가 아주 넓고 접근성이 좋습니다. 다양한 메뉴를 가진 구내 식당 또한 외부인에게 개방되어 있지요. 끝으로 빅토리아피크 등 트래킹 코스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 사실 이것 이외에도 제 개인적인 취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은 서울대학교 캠퍼스입니다. 저는 젊은 학구열이 넘치는 곳을 사랑합니다. 대학교이지만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이 가득한 곳은 제게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또한 닳고 닳은 전문학자들이 케케묵은 소리나 늘어놓는 학계 또한 제 취향은 아닙니다. 비록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언정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과 꿈을 찾아서 열심히 배우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곳입니다. 적어도 제 학부생 시절 내내 머물렀던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그러헀습니다. 그리고 홍콩의 서울대학교인 홍콩대학교 또한 그런 분위기를 지니겠지요. 아울러 홍콩대학교 주변에는 "대학가"가 있습니다. 대학교 주변에 대학가가 있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일까요? 홍콩은 좁은 땅덩이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대학교 주변에 우리가 흔히 아는 대학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직 홍콩대학교만이 예외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가 분위기를 만끽해보고자 그곳을 찾고 싶습니다. 


오늘의 산책 목표가 상기한 바와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처음부터 홍콩대학교 역에 내리면 재미가 없습니다. 홍콩대학교 역은 홍콩지하철 파란색 아일랜드 라인의 끝에서 두번째에 있습니다. 왼쪽 맨 끝에는 "케네디타운"이 존재합니다. 원래는 홍콩대학교 역이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홍콩 하면 생각나는 이층 트램 상당수가 케네디타운을 종점으로 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케네디타운 역에 내려서 홍콩대학교까지 걸어가보기로 합니다. 

확실히 제가 사는 구룡반도와 케네디타운이 있는 홍콩섬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제 취향은 확실히 홍콩섬 쪽이지요. 케네디타운 역 주변은 상당히 깔끔하고, 내려서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곧바로 해변에 도달합니다. 

센트럴과 애드미럴티 등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여러 정차역을 거쳐서 마침내 가쁜 숨을 헐떡이며 트램 여럿이 모여듭니다. 주말이지만 보행자들이 적어 걷기에 매우 쾌적합니다. 

이렇게 보아도 어차피 똑같은 바다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침사추이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좀 더 탁 트인 느낌을 줍니다. 바닷가 주변에 잘 갖춰진 공터가 있고, 가족들이 나와서 노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습니다. 홍콩 독거노인은 함께 놀 사람이 없으니, 지체없이 홍콩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 사실은 블로그 검색을 통해 미리 보아둔 레스토랑이 한 곳 있습니다. 거기에 들러서 와인 한 잔만 땡기고 가야겠습니다.  

아주 멋진 분위기의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입니다. 해피아워 시간에 술값이 싸서 들어갔는데, 웨이터들까지 모두 이탈리아인이고 내부 인테리어가 아주 중후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열체크를 한 뒤에 와인을 한 잔 주문합니다. 

큼직한 잔에 와인을 제법 많이 따라주는 것이 인심이 후합니다. 보통 하우스와인을 주문하면 아주 감질나게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젯밤에 지나치게 매운 음삭을 많이 먹어서인지, 맥주를 마시면 탈이 날 것 같아 와인을 주문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동양인은 오직 저 하나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의자에 기대고 앉아 얼근히 취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와중에 아주 멋지게 차려 입은 노년의 이탈리아 신사가 입장했습니다. 그는 내게 윙크한 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웨이터는 곧바로 물을 한 잔 내주며 신나게 이탈리아어로 대화했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한참을 앉아있다가 물만 마시고 자리를 떴습니다. 전혀 단골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웨이터가 통수를 맞은 것일까요? 모든 상황이 이탈리아스럽습니다. 


이 멋진 와인바만으로도 다시 방문하고 싶은 케네디타운이지만, 오늘 제가 목표한 곳은 아니기에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고 다시 홍콩대학교로 향합니다. 요즘 운동을 하지 않아 체력이 떨어지니, 술도 빨리 취합니다. 적게 마시고 빨리 취하면, 좋죠 뭐.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홍콩대학교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교정에 발을 들이자마자 배가 고파져서 구내 식당부터 찾습니다. 

오호라, 종류가 매우 많은데, 해장 겸 일본 라멘을 좀 먹어야 쓰겠습니다. 

키오스크에서 영수증을 뽑아서 가면 이렇게 이쁘게 생긴 푸드코트에서 제게 일본 라멘을 내주더군요. 

요렇게 생긴 야외 카페테리아에 나와서 자리를 잡고 라면을 먹기 시작합니다. 

사진 상의 비쥬얼은 별로지만, 저는 꽤나 맛있게 먹었습니다. 양이 푸짐했고, 건더기가 많아서 배가 불렀습니다. 와인을 마셔서 달아올랐던 얼굴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습니다. 앞선 사진의 여대생들은 모여 앉아서 매우 진지하게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이제 식사를 충분히 했으니 소화도 시킬 겸 해서 교내를 둘러봅니다. 

어라, 걷다 보니 홍콩대학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이 11월 22일에 시청에서 있습니다. 제가 끔찍히 애정하는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과 피아노협주곡이 레파토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머, 이건 반드시 가야 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이니만큼, 아마 연주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홍콩 시청 콘서트홀을 구경해보고 싶고, 또 이런저런 콘서트를 홍콩에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카메라로 찍어둡니다. 

뭐, 쭉쭉 걸어다닙니다만 건물들의 역사나 내용 등이 제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냥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마냥 걷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졸업식 사진을 찍는 친구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한국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네요. 이밖에 건물 여러 곳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놀랍게도 사진이 남아 있지 않네요. 무슨 조화일까요. 꽤 많이 찍었었는데....에라, 모르겠다. 란콰이펑에서 술이나 마시렵니다. 


홍콩대학교에서 센트럴까지 걸어오는 길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느라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지만, 홍콩은 의외로 길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시가 워낙 조그만해서 빤하거든요. 결국 란콰이펑에서 제가 가장 애정하는 태국 레스토랑 <반타이>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 매니저가 반갑게 인사해줍니다. 

이렇게 길쪽으로 열려 있는 곳에 저와 같이 쿠션을 등에 대고 저는 가부좌를 튼 채 앉습니다. 지금 앞에 보이는 좌석배치가 제 쪽에도 그대로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해피아워 시간이 8시까지라서 두 잔은 마실 수 있을 듯합니다. 참고로 8시까지라 함은 해피아워 주문시간을 말하지요. 저는 9시가 넘게까지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페리를 타고 귀가하곤 합니다. 

어느덧 란콰이펑 뒷골목에 어둠이 내리고 행인들의 발걸음도 뜸해집니다. 하지만 반타이에서 흘러나오는 80년대 90년대 팝 음악은 저를 그 좋았던 IMF 외환위기사태 이전으로 데리고 갑니다. 물론 그 뒤에도 나쁠 이유야 없지요. 21세기는 아주 멋진 시대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십 대에 불과한 저는 어째서 이렇게 20세기 음악을 들으며 상념에 잠기는 것일까요? 상념이래봐야 대수롭지 않지만 말이지요. 금요일과 토요일, 반타이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주로 평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이곳을 찾아서 바로 저 자리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있습니다. 홍콩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저곳을 지날때면 빡빡이 하나가 아사히 맥주 잔을 앞에 두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광경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넘어와 집 쪽으로 가자니 홍콩은 벌써 크리스마스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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