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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3 빅토리아 피크 하이킹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오후, 윤진과 희성 그리고 저 이렇게 산업은행 동기 3명은 빅토리아 피크 하이킹을 가기로 했습니다. 빅토리아 피크 하이킹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다만 지난 2번은 새벽부터 이동했던 반면에, 이번에는 사정상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지요. 홍콩섬에 소재한 애드미럴티 역에서 오후 3시 넘어 만나기로 합니다. 팔자 좋은 거북이들이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홍콩 공원에서 희성 형을 먼저 만나서 기다립니다. 

홍콩은 도심 속에 이렇듯 멋진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윽고 화이자 백신의 후폭풍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윤진 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람에 따라서 부작용이 다른 모양입니다. 한 달째 소화불량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바짝 여윈 몸을 이끌고 등산길에 나섰습니다. 물론 40대 중년의 입장에서 강제 다이어트의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애드미럴티 역에서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가는 길에는 조류 동물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새들이 많이 있고, 새만큼이나 조잘조잘 말이 많은 연인들 또한 가득합니다. 홍콩 젊은이들은 대체적으로 한국 젊은이들보다 애정 표현에 적극적인 듯합니다. 엄청나게 경사진 동물원을 가로질러 좁은 길을 따라 낑낑거리며 올라가는 우리 중년들로서는 시선을 따로 둘 방법이 없습니다.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저도 이제 늙은 모양입니다. 


빅토리아 피크에 도착했을 때는 5시가 조금 안 되었습니다. 아직 석양을 보기에는 시간이 일러서, 스타벅스에 입장했습니다. 모든 기운이 입에 몰려 있는 중년 아재들이야 다리 꼬고 앉아서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이죠. 지난번 아침에 왔을 때에는 엄청나게 큰 견공들이 어슬렁거리더니, 확실히 저녁때에 오니 강아지들은 사라지고 닌겐들로 가득했습니다. 

저와 같이 한 동행들은 홍콩에서 몇 년씩 살았지만, 빅토리아 피크 야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미 빅토리아 피크에는 석양을 보기 위해 군중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그것만 해도 장관이었지요. 이제 태양이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비루한 샤오미 카메라가 이 황홀한 광경을 충분히 담지 못하네요. 생각보다 해가 빨리 집니다. 그래서 동영상으로 촬영해 두었습니다. 

아! 제 머리 뒤로 휘향 찬란한 광배(후광)가 보이십니까? 저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깨달았느냐? 제가 오늘 홍콩 달러 현금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세계 어디를 가든 현금은 항상 얼마 정도 소지하는 편이 옳습니다. 

 아이폰으로 보다 나은 화질의 사진을 남긴 뒤, 우리는 하산합니다. 하산길에 철봉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서양 처자를 보았습니다. 온몸이 근육질이었는데, 턱걸이는 기본이요 체조를 전공한 이만이 할 수 있는 고난도의 동작을 시연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해운대에서 세계 비치 발리볼 대회에서 강력하게 스파이크를 구사하는 근육질의 서양 여성을 본 뒤로 참으로 오랜만에 운동하는 여성이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똥송한 우리들은 맛있게 저녁식사나 해야겠다며 서둘러 홍콩대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부드러운 외모의 독실한 기독교인인 희성 형은 홍콩에 5년 이상 거주하면서 맛집을 제법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가 홍콩대학교 대학가 근처에서 소개한 맛집은 중국 호남성 스타일 레스토랑인 <Jiang's Hunan Chef>입니다. 

https://www.scmp.com/lifestyle/food-drink/article/1774401/restaurant-review-jiangs-hunan-chef

한국 유학생에게도 꽤나 알려져 있는 이 레스토랑에 저는 대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무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말이죠. 왜냐? 대학가 주변에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고급지며 그러면서도 오직 대학가 주변에서만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예전에 와 본 멤버가 메뉴를 고르는 편이 옳겠지요. 

과연 음식에 눈이 먼 아재가 아무런 정성 없이 찍은 사진답습니다. 실제로 이 요리들은 무척이나 맛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일단 중국 전통차가 무상으로 제공되고, 땅콩과 저 앞의 해산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짭조름한 땅콩을 먹고 있자면, 굉장히 스파이시한 돼지고기볶음과 감자조림, 그리고 오징어볶음이 나옵니다. 말 그대로 밥도둑입니다. 저는 16:8 간헐적 단식을 하기 때문에(요즘은 좀 흐트러졌지만) 식사량이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무려 밥을 세 공기 먹었습니다. 그야말로 맥주 안주였지만, 그래도 간신히 참았습니다. 왜 참았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여하튼 맥주를 마셨다면 금세 배가 불러 저기 나온 음식을 상당수 남겼을 터입니다. 대학가답게 양이 아주 많거든요. 참고로 홍콩대학교 앞 레스토랑이라고는 하지만, 가족 단위로 식사를 많이 왔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과식을 마친 뒤 배를 두드리며 레스토랑을 나왔습니다. 이제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지하철역으로 향할 차례입니다. 따지고 보면, 대학교 안에 갇혀 생활하는 편이 오히려 제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홍콩대학교에 근무했다면, 이와 같은 맛집을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방문했을 터이고, 여기 런닝만 입고 다니는 아저씨들처럼 남산만 한 배를 안고서 귀국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여하튼 홍콩대학교에 저녁 방문할 일이 있다면, 저는 이곳을 꼭 다시 찾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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