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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6 홍콩 청차우 섬 여행기

https://blog.naver.com/hktb1/221990595717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저는 홍콩에서 많이 사랑받는 섬 가운데 하나인 청차우 섬에 하이킹 가기로 하였습니다. 청차우 섬의 경우, 침사추이 피어에서 페리를 타고 센트럴 피어로 이동한 뒤, 다시 센트럴 피어에서 페리로 이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하철에 실려가는 기분과 페리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기분은 사뭇 다릅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페리를 타면서 지겨움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5번 선착장에서 10시 15분 ordinary ferry를 타야 하는데, 시간을 잘못 맞추어서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별 수 없이 블랙핑크 음악에 맞춰 열심히 틱톡 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소녀 군무단을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뽕이 차오르더군요. 

일찌감치 배에 올라타서 흔들흔들 파도를 즐기며, 출항을 기다립니다. 한 시간 가량 배를 타고 가니, 청차우 항에 도착합니다. 

항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맥도날드와 웰컴 마트, 서클K 등이 저를 맞이합니다. 생각보다 매우 번화한 광경에 저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적어도 도심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왼쪽으로는 해변이, 오른쪽에는 산책로가 자리하고 있군요. 사실 섬이 크지 않아서, 어느 쪽으로 가든지 하루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잔잔한 바다 풍경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단 가볍게 트래킹을 한 뒤에 마을을 돌기로 합니다. 

이름도 모를 트래킹 코스를 혼자서 돕니다. 사실 길이 하나이기 때문에, 헷갈릴 위험이 없습니다. 

낑낑대며 경사면을 올라갔더니, 이번에는 다시 내리막길로 저를 안내합니다. 이 길을 걸어내려 갔다가는 올라올 때 장딴지가 터져나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안 갈 이유도 없지요. 다시 내려갑니다. 

저 멀리 멋진 해변 마을이 보입니다. 사실 풍경으로 보면 강원도를 중심으로 한 동해안 종주가 생각났습니다. 다만 공기의 향내가 조금 달랐을 따름입니다. 

내리막길을 쭉 따라 내려가니, 다음과 같은 조그마한 해변이 나타났습니다. 중국인 관광객 한 무리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저는 20분가량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낑낑대며 올라가서 이제 마을 어귀에 접어듭니다. 햇볕이 너무도 따가워, 대낮 트래킹은 삼가기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홍콩에서 유명한 청포차이 동굴에 가봅니다. 저곳에 기어들어가기 위해서는 면장갑을 착용해야 하는데,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꼬맹이들 외에는 들어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별 것 없어 보여서, 홍콩 독거노인은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제 청차우 섬의 자연은 대략 즐긴 듯 하니, 다시 인간 문명으로 복귀해야 하겠습니다. 

팍타이 사원을 비롯해 소규모의 사원들이 여럿 보입니다만, 패스! 해변가에 죽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치며 걷다 보니, 짠! 수박주스를 파는 상점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방콕에서는 "땡모반"이라고 불리는 그 친구입니다. 냉큼 사서 한 모금 빨아 당겼습니다. 

우와,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오후 2시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트래킹을 했으니, 당이 떨어질 만도 합니다. 달착지근한 수박 주스가 제 몸 구석구석까지 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합격! 당을 충전하고 나니 또 배가 고파져서, 주변에서 가장 붐비는 가게를 찾아 완탕면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사실 저는 완탕면 맛집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든, 완탕면의 맛은 비슷하고 죄다 맛있기 때문입니다. 완탕면 한 젓가락, 수박 주스 한 모금 이렇게 번갈아가며 입에 담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여유롭게 등을 기대고 앉아 천천히 흡입합니다. 

식사를 마친 뒤, 이번에는 트래킹 코스와 반대로 섬을 돌아봅니다. 홍콩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해변 산책로가 아주 잘 갖추어져 있으며, 조깅을 하는 구릿빛 서양인들이 유독 눈에 띱니다. 

이렇게 여자 친구를 태우고 수레를 끌며 섬을 도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청차우 섬의 햇살이 점점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어머니, 친척들,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하면서 벤치에 앉아 뉘엿뉘엿 지는 석양을 바라봅니다. 오렌지주스 1리터를 사서 저녁 식사 대신 벌컥벌컥 들이켭니다. 옆 벤치에 앉은 홍콩 노인이 신기하다는 듯 저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 홍콩의 젊은이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주말 데이트를 즐기는지를 말입니다. 물론 몽콕이나 센트럴에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는 홍콩의 연인들이 늦은 밤까지 청차우나 펭차우 섬에서 데이트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청차우 섬은 정말로 멋진 데이트 코스입니다. 왜냐하면 청차우 섬에서 출항하는 페리가 11시 넘게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11시 배를 잡아타고 1시간 바다 위에 있다가 12시에 센트럴 페리에 도착해서, 새벽 1시까지 있는 지하철을 타면 완벽합니다. 물론 배가 끊기면, 청차우 섬에 있는 아기자기한 호텔에서 머물면 그만입니다. 낮에 거리를 걷다가 생각보다 골목골목에 호텔들이 있는 것을 보고 흥미로웠는데, 이제 이유를 알았습니다. 사실 저조차도 너무 청차우 섬의 밤이 아름다워서, 하룻밤 자고 갈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결혼하고자 하는 처자를 한국에 두고 이역만리에서 홍콩 독거노인 신세인 저는 이런 로맨틱한 광경을 보면 슬퍼집니다. 할 수 없이 맥도날드에 가서 시름을 달랩니다. 하지만 맥도날드에도 어린 커플 천지입니다. 독거노인은 감자튀김을 다 먹지도 못하고 테이크 아웃해서 나옵니다. 울적하지만 혼자 걸으면서 먹어야겠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청차우 섬의 진정한 데이트 코스는 바로 해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랑이 넘쳐나는 해변의 광경은 동영상으로 담아두고 나니, 사진 속에는 텅 빈 해변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역시 사진은 진실을 담기 어려운가 봅니다. 저녁 7시가 되어도 바닷물이 따뜻해서인지, 연인들은 해수욕을 즐겼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안 경비대가 없는 상태인데 저렇게 수영을 하니 위험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11월(!) 청차우 섬의 밤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참고로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캠핑장이 청차우 섬 내에 있습니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곳입니다. 저도 다음에는 캠핑을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riley12/222549298374

자, 아이들과 함께 사랑의 자물쇠가 가득 달린 공간에서 놀다가 이제는 다시 항구 주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과 같은 장면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광경을 봅니다.  

청차우섬은 해산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놀러 온 가족들이 크게 한 상 차리고 술과 함께 해산물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썰렁하던 이곳이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테이블을 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뭐, 1인 테이블이 없으니 제가 끼어들고 싶어도 불가능하긴 했습니다. 역시 홍콩에서 무언가를 즐기려면 여럿이 와야 한다는 점을 사무치게 깨달았습니다. 

대신 새카만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을 보며 마음을 달랩니다. 코로나 분위기를 보니, 어차피 내년에 제가 홍콩을 뜰 때까지 가족이나 친구가 놀러 올 확률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속에 이 모든 것들을 가득 담아두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섬을 나섭니다. 가급적 막차(?)를 타고 싶었지만, 독거노인의 사무친 외로움은 더 이상 섬에 머물지 말라고 저를 재촉하더군요.

안녕, 청차우 섬! 하루 동안 즐거웠다. 정말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섬도 가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청차우 섬이 가장 좋았습니다. 다만 다음번에는 아예 오후 4시가 넘어 도착하여 석양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마음껏 섬을 산책하다가 마지막 페리를 타고 홍콩 아일랜드에 복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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