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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1 란타우 섬 선셋 피크 트래킹

2021년 9월 30일, 저는 숙소를 침사추이에 소재한 <아틀라스 호스텔>로 옮겼습니다. 6인용 도미토리였는데, 저렴한 가격과 깨끗한 시설이 마음에 들었죠. 그리고 대체로 댓글 평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9월 30일 목요일에 첫밤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정말로 최악이었습니다. 남녀 혼숙이었는데, 라틴계 여학생 2명이서 어찌나 밤새도록 시끄럽게 떠드는지, 저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녀들의 잘못만은 아니었습니다. 배낭여행객이야 원래 밤새도록 놀고 점심때까지 쿨쿨 자는 것이 일상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설마 이 코로나 시국에 백팩커가 홍콩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물가 비싸고 갈 곳 없는 홍콩에서 왜 몇 달 동안 버티는 것일까? 게다가 10월 31일에 체크아웃하기까지, 그녀들은 제가 퇴근하여 게스트하우스에 오면 항상 있었습니다. 딱히 돌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셈이지요. 아, 그녀들에게 대한 불만 토로는 이쯤에서 멈추겠습니다. 저는 이 도미토리에서 한 달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바이오 리듬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홍콩시티대학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7월 초까지, 1인 실 예약을 모두 마쳤습니다. 10월 31일에 1인실로 체크인해서 혼자만의 시공간을 누리니 어찌나 기쁜지, 한동안 방 안에서 뒹굴거리면서 출근 시간을 늦추기까지 했지요. 물론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입니다. 그녀들은 제가 있는 동안 수시로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반복하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녀들 외에 저와 마지막까지 꾸준히 도미토리 룸을 같이 썼던 덩치 큰 50대 중국인과 30대 후반 중국인, 그리고 비쩍 마르고 개성 있는 옷차림의 일본인도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계속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솟는군요. 딱 한 달만 고생할 요량으로 들어갔다면, 그다지 나쁜 시간도 아니었군요. 적어도 11월 한 달 동안 1인실에서 지내다 보니, 숙소와 관련된 추억거리는 없으니 말이지요. 이들에 대한 여러 기억들은 앞으로 또 적어 내려가고자 하고, 오늘은 숙소를 옮기고 첫날밤을 꼴딱 세운 다음날 있었던 선셋 피크 트래킹에 대한 추억을 간단히 남기고자 합니다. 


홍콩 하이킹 멤버 세 명 중 한 명인 윤진 형이 화이자 백신 2차 후유증으로 쉼에 따라, 이번 주에는 희성과 주강 두 멤버만 하이킹을 나서기로 했습니다. 희성 형이 살고 있는 란타우 섬에 있는 유명한 선셋 피크가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선셋(sunset) 때 방문해야만 제맛이겠지만, 외지인이 일몰 때까지 산꼭대기에 남아 있는다는 것은 결코 현명한 판단이 못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아침 일찍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10월 1일은 홍콩 공휴일(중국 국경절)이었습니다. 이래서 금요일에 트래킹이 가능했지요. 

홍콩 지하철 노선도를 보시면 왼쪽 하단에 란타우 섬이 보이실 것입니다. 오늘 목적지인 선셋 피크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오렌지 라인의 종점인 둥청 역에서 내려야만 합니다. 이곳은 센트럴 등과 떨어진 "신도시"입니다. 란타우 섬은 센트럴이 소재한 홍콩섬이나 침사추이가 소재한 구룡반도보다 물가가 싸고 한적합니다. 실제로 택시요금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둥청 역 B출구에서 희성을 기다립니다. 아침부터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고 있습니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서 가방에 넣습니다. 그러면 이제 준비 완료입니다. 곧바로 버스를 타고 선셋 피크 트레일 코스의 출발지인 '팟 쿵 아우'로 향합니다. 공기는 더없이 맑고 향기롭습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즐겁게 대화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러다가 우리는 그만 내릴 곳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사실 긴장하고 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터입니다. 홍콩 버스는 하차 방송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어차피 걷자고 모였으니, 또 언덕길을 타고 오르며 출발지로 향합니다. 

30분 이상을 헉헉대며 걷다 보니, 비로소 선셋 피크로 가는 길이 나타납니다. 필리핀 헬퍼들과 함께 이 길을 따라서 올라가다 보니, 곧바로 공터가 나오는데, 와우, 젊은 대학생들이 이미 하산 중이었습니다. 성인 남성의 등산 속도로 올라가도 2시간은 걸리는데, 8시 20분에 하산을 끝냈다니 도대체 몇 시에 올라간 것일까요? 참으로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남성 반 여성 반이어서 더욱 놀랐습니다. 

여하튼 우리 중년 남성 팀은 청년들이 내려온 코스를 그대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와, 이거 경사가 제법 되고 도중에 쉴만한 곳도 없습니다. 그냥 감각을 잃은 채 무작정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성 형의 단단한 종아리가 돋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만, 여하튼 코스가 언제 끝날 지를 모르는 것이 가장 답답한 노릇이었지요. 도중에 비도 살짝 왔습니다. 

중간쉼터가 나오지 않으니, 결국 계단에 앉아 목을 축여봅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속도가 빨랐던 것일까요? 어느 정도 더 올라가자, 비로소 산허리를 둘러싼 안개를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나왔습니다. 또 물 한 잔 마시고 가야죠. 

저의 대머리에 솟은 핏줄이 속도 조절을 잘못한 하이커들의 애환을 잘 보여줍니다. 급할 게 전혀 없지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 딸이 함께 하는 4인 가족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즐겁게 산을 타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속도를 내어 봅니다. 홍콩의 산길은 마치 아이스크림 콘처럼 빙빙 둘러가며 천천히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도 좀처럼 도착할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한국의 산길과는 많이 비교가 됩니다.

그래도 마침내 정상에 도달하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너무 평범해서, 여기가 정상인지도 제대로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풍경을 촬영하고 있던 중년의 홍콩 남성에게 묻고 나서야 여기가 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희성 형은 항상 뭔가 고독하면서도 멋진 분위기를 많이 냅니다. 워낙 잘생기기도 했습니다. 유부남이 아니었다면 홍콩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을 법하다고, 여성들의 시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중년 아재들끼리 합의를 봅니다. 

그래도 정상에 왔으니, 또 두 사람의 얼굴이 박힌 사진은 하나쯤 남겨야 하겠습니다. 

이제 안개가 자욱한 산을 타고 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봅니다.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른 탓입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블로그에는 잘 안 나오지만, 홍콩인들에게는 필수 사진 촬영 코스인 한 바위에 다다릅니다. 

저 바위 밑은 완전히 낭떠러지입니다. 제가 간이 제법 크지만, 이번에는 살짝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덕분에 제 마음에 딱 드는 사진을 하나 건질 수 있었습니다. 선셋 피크 정상에서도 찍지 못한 사진이었습니다. 언젠가 홍콩에서 선셋 피크 사진 콘테스트가 있다면 거기 한 번 제출해 볼 생각입니다. 


이리하여 선셋 피크 트래킹을 모두 마쳤습니다. 원래 한국 사람은 등산하고 나면 또 맛난 것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둥청 역에 소재한 거대한 몰(mall)에 가서 한국 식당을 방문합니다.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를 주문했는데, 정말로 맛났습니다. 침사추이에 있는 한인 식당보다 퀄리티가 좋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랜차이즈 점이라고 해도 결국 주방장의 솜씨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겠지요. 평소 학교 구내식당에서 먹는 음식에 전혀 불만이 없지만, 이렇게 하이킹 나와서 먹는 "외식"(제게 한식은 외식입니다)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이제 갓 점심시간이 지났기에 곧바로 귀가하기가 망설여져서 센터로 출근했습니다. 과연 센터 지박령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그래도 즐겁게 금요일 공휴일을 보낼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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