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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1 홍콩 비사지 원(Visage One) 방문

안녕하세요, 알이즈웰 전도사입니다. 오늘은 2021년 12월 11일 토요일입니다. 토요일은 저의 공식휴일이죠. 요즘 하이킹 멤버들이 연말 모임으로 바쁜지라, 홍콩 독거노인은 하이킹을 잠시 쉬고 시티 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전과 오후에 기말고사 채점을 마친 뒤, 교정을 나섭니다. 오늘은 지난 번 방문했었던 미용실 겸 라이브 바인 비사지 원(Visage one)을 다시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센터를 함께 쓰는 대학원생 및 홍콩 친구 등 총 세 명이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https://brunch.co.kr/@joogangl/341

<비사지 원>은 평일에는 미용실이지만, 토요일 밤에는 멋진 라이브 공연장으로 변신하는 곳입니다. 공연료 HKD100을 내면 입장 가능하며, 마실 술은 자신이 직접 들고 오면 됩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공연장은 찾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홍대나 이태원에 있는 라이브 공연장도 결국 '술장사'이기 때문이지요.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공연장이라면, 아티스트에게 돌아갈 공연료만 받고서 운영이 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비사지 원>은 공연으로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에게 연주 공간을 제공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소박한 목적을 지닌 장소일 따름입니다. 오늘은 와인 2병을 <테이스트>에서 사들고 출발합니다. 온종일 사무실에 있었더니 몸이 쑤셔서, 그냥 와인 두 병을 백에 넣은 채 한 시간을 걸어 침사추이까지 갑니다. 1시간을 걸어가니, 어깨가 묵직하네요. 


센트럴역 D2 출구에서 일행을 만나서 란콰이펑을 걸어 올라갑니다. 홍콩 친구의 이름은 재스민(Jasmine)인데, 한국 문화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어제 저녁에 란콰이펑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제가 어젯밤에 <아이언 페어리>에 재방문해서 흥을 내고 귀가하는데, 란콰이펑 전역이 경찰의 통제 하에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군요. 홍콩에 살면서도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모릅니다. 오늘은 예전보다 조금 일찍 <비사지 원>에 입장했습니다. 

손님이 한 명도 없었지요. 덕분에 제가 탐냈던 테이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4인 밴드가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왼쪽 아래에 제가 메고 온 와인 2병이 보이는군요.  

테이블을 세팅하고 나니 공연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2층에 올라가 봅니다. 

이 계단은 공연 2부쯤 되면 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2층에서 내려다 본 1층의 모습니다. 헤어샵 특유의 목욕탕 타일이 두드러집니다. 

함께 한 일행이 2층 선반에 놓인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2층의 천장이 매우 낮아서, 술에 취해 일어서다간 머리를 다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 음악 감상만 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하지만 제게 <비사지 원>은 재즈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면서 외부에서 가져온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홍콩은 알콜 도수 30도 미만의 술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가히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사지 원>은 토요일에만 라이브 공연장으로 바뀌며, 제 공식 휴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래도 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홍콩에 있는 동안 1주일에 와인 한 병은 마셔줘야지, 하는 생각이 최근 들었습니다. 

 

이 계단의 다양한 색조와 낡은 빈티지 분위기가 제가 평소에 상상했던 홍콩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나시 티에 청바지를 입은 저 서양 여자분은 공연 전부터 부지런히 곳곳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공연 1부까지 촬영한 뒤, 2부부터는 한 켠에 앉아 와인을 즐겼습니다. 카메라에 제 모습이 제법 담겼는데, 혹시 이러다가 홍콩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망상을 해봤습니다. 스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저 촬영물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저녁 8시 반부터 11시까지 공연이 진행됩니다. 10시 전후로 인터미션이 한 번 있고, 2부가 이어집니다. 오늘 4인조 밴드는 재즈 스탠다드와 제가 잘 모르는 곡들을 섞어서 연주했는데, 퍼커션과 베이스가 매우 좋았습니다. 농롱한 키보드 소리가 와인에 젖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잘 내주었죠. 지난번보다는 사람 수가 훨씬 적었습니다만, 저는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은밀하고 프라이빗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었으니까요. 제 뒤로는 홍콩인 커플이 자리했는데, 알고 보니 남성은 제가 근무하는 홍콩시티대학 졸업생이었습니다. 그는 파트타임 잡으로 디제잉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와 좀 더 소통해서 홍콩의 클럽들을 섭렵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를 못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빈센트라는 이름의 그 잘생긴 청년은 <비사지 원>과 같은 분위기를 내는 장소가 홍콩에서도 매우 드물다고 칭찬했습니다. 홍콩 DJ가 그렇게 말한다면, 신뢰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제 테이블 오른편에는 나이가 좀 있는 (그러나 저보다는 젊은) 수염을 멋지게 기른 홍콩 부부가 음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터미션 때, 제게 술을 한 잔 대접했는데요. '스웨덴 진'이었습니다. 소나무 향이 나는 매우 멋진 진이었습니다. 그는 에버딘(Aberdeen) 스트리트 주변에 스웨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구역이 있으며, 그곳에서 이 술을 구입했다고 말했습니다. 40도의 고도주였는데, 기회가 되면 구입할 용의가 있습니다.  


가운데 앉은 여성의 표정과 자세 때문인지, 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생각이 납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이탈리아에 방문해서 직접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홍콩'의 분위기가 잘 드러난 장면이었습니다. 11시 10분에 촬영된 사진이니, 거의 공연 끝무렵이었군요. 와인 2병을 깨끗이 비운 뒤였습니다. 


토요일 오후, 이를 악 물고 기말고사 채점을 마친 뒤 방문한 <비사지 원> 방문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일요일 아침은 숙취로 인해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습니다. 술이 덜 깨어서 그런지, 일요일 오후에 출근해서 채점을 이어갔지만 속도가 잘 나지 않았지요. 그래도 불쾌하거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비사지 원>은 앞으로도 제가 자주 방문할 보석같은 곳입니다. 그 곳에서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고 홍콩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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