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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5-2 홍콩 타이퀀 & 비사지원

홍콩의 옛 경찰서와 라이브 재즈바를 방문하다 

홍콩대학교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다, 우리는 다시 센트럴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에버딘 스트리트 쪽으로 한참을 올라갔다가 다시 할리우드 로드 쪽으로 내려오는데, 저녁 약속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홍콩 센트럴의 복합 문화공간인 <타이퀀>에 가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방문하여 감옥 체험 등을 잠시 즐겼더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옥에 갈 일은 없을 듯합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53268&cid=67006&categoryId=67014

<타이퀀> 정문은 입장 불가이기에, 경찰의 안내에 따라 다른 쪽으로 들어섭니다. <타이퀀> 뒤쪽으로 입장하는데, 근처에 멋진 레스토랑과 바가 많이 보입니다. 역시 도시는 저녁이 되어야 제맛입니다. 조만간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저녁을 즐겨야겠습니다. 

<타이퀀>에 입장하니, 세상에나, 크리스마스 인파가 보통이 아닙니다. 중앙광장을 꽉 메웠는데, 3층과 4층에도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무대에서는 <호두까기 인형> 일부를 뮤지컬 형식으로 공연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호두까기 인형>까지 라이브로 즐길 수 있다니요! 


약속 시간까지 30분이 남았는데, 아무래도 이곳을 곧바로 뜨기가 아쉬웠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보니 멋진 바에서 해피 아워가 진행 중이기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입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홍콩중문대에서 이쪽으로 향하는 대학원생은 초행길이라서 분명히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층에 속한 이름 모를 바에 입장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을 주문합니다.  

남자 둘이서 크리스마스에 칵테일을 마시고 있으려니, 함께 온 대학원생에게 미안합니다. 저야 결혼하고 싶은 여자 친구가 한국에 있으니까 강제 독거노인 생활에 들어갔지만, 키 크고 멋진 대학원생이 제게 붙잡혀서 무슨 고생입니까. 뭐, 일단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제 사진이나 한 장 찍어주면 좋겠지요. 

나잇값 못하고 즐겁게 잘 놀기는 합니다. 셋째 멤버 합류 시간은 저녁 6시였지만, 역시나 그는 다소 늦는다고 연락했습니다. 덕분에 멋진 바 분위기를 좀 더 즐길 수가 있었지요. 이제 어리바리한 후배를 챙기기 위해 레스토랑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사진이 매우 흔들렸습니다만, 목발을 짚고서라도 기어코 크리스마스를 여자 친구와 즐기겠다는 남자 친구의 결기가 가상해서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타이퀀에서 센트럴로 넘어가는 다리입니다. 이 다리에서 또 다른 대학원생 B를 만났습니다. 홍콩중문대는 유달리 공부를 많이 시키는 듯합니다. 홍콩의 대학들은 겨울 방학이 1달도 채 되지 않는데, B의 경우 12월 31일 자정까지 리포트를 쓰고 1월 10일에 1학기가 개강한다고 합니다. 공부에 미친 사람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인 듯합니다. 

그런데 저와 대학원생 A의 경우 점심을 정말 배꼽이 튀어나올 정도로 많이 먹은 데다가 스타벅스 커피에 칵테일까지 마신 상태라, 도저히 저녁식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B를 피자 레스토랑에 남겨둔 채, A와 저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어디쯤에 위치한 케밥 집 골목에 들어가 캔맥주를 마셨습니다. 칼스버스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니 정말로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오늘 칵테일과 맥주를 섞어 마시고 조금 뒤에 와인을 2종류 섞어 마실 것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내일 오전에 편치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을 미리 사서 할 필요는 없겠지요. 맥주 4캔을 둘이서 해치운 뒤 피자 가게로 가니, 핵인싸인 B는 그새 서양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쉽게 끝날 자리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우리 둘은 제가 몇 번 소개해 드렸던 <비사지 원>에 입장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날에는 테이블 잡기가 쉽지 않으니 빨리 가야 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벌써 홍콩인 3명이 메인테이블을 선점했습니다. 하지만 본디 이곳의 테이블은 공유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여, 성당에서 받아온 로제 와인 2병과 A가 들고 온 레드 와인 한 병이 준비됩니다. 

8시 반 공연인데 다소 일찍 왔지요? 제게는 공연장이자 술집이어서 그렇습니다.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대화가 어렵기 때문에 일찌감치 와서 판을 깔았습니다. 덕분에 8시 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이미 얼근하게 취해 있었습니다.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바닥까지 사람들이 빽빽하니 앉았습니다. 

관악기와 현악기의 조화가 멋졌고, 보컬도 뛰어났습니다. 제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인 듯합니다. A는 테이블을 공유한 홍콩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술 한 방울 마시지 않는 제 과 후배 B는 분석적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행복한 세상으로 가 있어서 공연의 세부 내용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한 멋진 퍼포먼스였습니다. 한국인들이 우리 외에도 꽤 있었으니, 아마 어딘가에 후기를 남겼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성당에서 받아온 쿠키를 주인에게 선물했는데, 그는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저야 홍콩을 떠날 그날까지 이곳을 자주 찾을 테니, 이렇게 멋진 장소를 제공하는 주인과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없지요. 

공연이 모두 끝나고 11시가 넘어서 이제는 귀가해야 할 때입니다. 이 이후에는 별 다른 스토리가 없고, 저로서는 당황스럽게도 일부 기억이 지워졌습니다. 쉽게 말해 필름이 끊긴 것이지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새벽 2시에 어딘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위치가 가늠이 되지 않았지요. 이것은 분명히 좋지 못한 징조입니다. 물론 고주망태가 되어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연말연시라 택시 잡기도 어렵고 해서 결국 걷고 또 걸어 새벽 3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뭐,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라면 추억이지요. 이렇게 좌충우돌 2021년 홍콩 크리스마스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숙취로 제법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즐겁고 후회 없는 하루였습니다. 저는 또 다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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