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끄란 인 루트 66 (3)

Songkran in Route 66 (3)

카오산 로드 끝자락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47번 버스를 타면, 마분콩 센터와 싸얌 센터가 있는 중심가까지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이동할 경우에는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좋지만, 홀로 이동할 때에는 버스를 택하는 편이 저렴하겠지요. 저는 그렇게 방콕의 매연을 마음껏 마시며, 신나게 싸얌 센터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카오산 로드에서는 금요일이 되자, 이미 물놀이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낮 시간에 물놀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도심 쪽으로 나가는 편이 좋죠.


잠깐, 도심에서 물놀이를 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한국의 명동과 같은 곳에서 물싸움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야? 물론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짓궂은 젊은이들은 택시나 버스 안에다 대고 물총을 쏘기도 하니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을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에 젖기를 꺼리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가 없겠지만, 물에 젖기를 각오한 사람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본격적으로 흠뻑 젖기 전에, 방콕 아트 앤 컬처센터(BACC)를 먼저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예술 작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1층의 아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20150411_131122.jpg


저는 그 카페를 너무도 사랑합니다. 피카소와 고갱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멋들어진 벽화는 빈티지 풍의 갖가지 소품들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카페의 아메리카노를 저는 사랑합니다. 이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거품이 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마 거품을 낸 아메리카노를 접해보지 못하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저 또한 이 가게 외에는 접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저는 입맛이 초딩이라, 달콤한 시럽을 추가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텁수룩한 바리스타는 따뜻하게 웃으며 제 주문을 일일이 확인합니다.


20150411_131039.jpg

이 카페에 앉아서 제가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또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면, 독서광으로 오해받을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희한하게 한국에서는 책을 그리 많이 보지 않다가도, 여행만 오면 어찌 이리 책을 찾는지요! 이것도 나름 개성이라면 개성입니다. 자, 릴케 양반과 적당히 대화했으니, 이제 물 좀 맞으러 가야겠지요.



도심에서는 흔히 물놀이 구역을 미리 구획해 놓습니다. 물론 안전 상의 이유이겠지요. 그곳에는 카오산 로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서양인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태국 젊은이들이 신이 나서 물총을 쏩니다. 물론 저도 흠뻑 젖고, 예상치 못했지만 릴케의 시집도 흠뻑 젖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너덜너덜해진 시집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이제 좀 더 마음 편하게 여행지에 들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아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불어 터진 책장 하나하나가 송끄란의 추억을 담고 있으니,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요.

녹색과 주황색, 파란색과 빨간색 등 온갖 원색들로 어우러진 물총들이 어지러이 섞이며 사람들을 적셔댑니다. 외국인인 저는 외모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좋은 표적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얼굴에 대고 물총을 쏘기보다는 주로 몸통을 겨낭해서 쏘기 때문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적셔주는 물은 사실 일종의 세례와도 같습니다. 송끄란 축제는 태국의 신년 명절 행사이며, 부처님의 은총으로 묵은 생각을 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한 미소의 태국인들이 제게 뿌려주는 물은 제게 감사한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는 한 밤의 클럽 물축제와는 사뭇 다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평화'라는 코드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송끄란 인 루트 66 (2)